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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나는 '충분히' 즐거운가?

by 심심

긍정정서를 적절한 수준에서 많이 경험할수록 고통을 더 잘 견딥니다. 그렇다면 나의 긍정정서 경험은 고통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는 수준일까요? 이제부터 그 내용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본격적인 탐색에 앞서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긍정정서를 경험할 때 '강도'가 중요할까요, 아니면 '빈도'가 중요할까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아주 강렬한 긍정정서를 경험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중간 정도 혹은 약한 정도의 긍정정서를 매일 경험하는 것이 나은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심리학자들도 많은 관심을 가졌던 질문입니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던 에드 디너(Ed Diener)와 동료들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삶의 질 관점에서 볼 때 긍정정서의 강도보다는 '빈도'가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강렬한 긍정정서를 경험하는지, 혹은 약한 긍정정서를 경험하는지의 여부는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얼마나 잦은 빈도로 긍정정서를 경험하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긍정정서 경험을 측정할 때 빈도를 파악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특히 부정정서와 긍정정서의 비율을 중요하게 고려합니다.



watson_clark_ad.jpg 클락과 왓슨 부부


다음에 제시된 측정도구는 미국 노트르담 대학의 부부 교수인 데이비드 왓슨(David Watson)과 리 클락(Lee Clark)이 그들의 스승인 미네소타 대학 교수 아우크 텔레겐(Auke Tellegen)과 함께 개발한 정적 정서 및 부적 정서 척도(Positive Affect and Negative Affect Schedule)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제시된 감정을 어느 정도로 느꼈는지 0 점(전혀 그렇지 않다), 1점(약간 그렇다), 2점(보통 정도이다), 3점(많이 그렇다), 4점(매우 많이 그렇다) 사이에서 평정해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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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를 모두 매겼다면 *표를 한 문항들 중 2점 이상인 문항의 수를 모두 더하고, 그 외의 문항들 중 2점 이상인 문항의 수를 모두 더하기 바랍니다. 예상했겠지만 *표 문항은 긍정정서를 측정하고, 그 외의 문항은 부정정서를 측정합니다.


긍정정서 경험을 인정하는 정도는 연령마다, 문화마다 다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미국 문화권에서는 긍정정서를 인정하는 경향성이 강하기 때문에 3점 이상인 문항을 세서 점수를 비교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동일한 2점을 이용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긍정정서 점수가 부정정서 점수보다 더 높은가요? 아니면 반대로 부정정서 점수가 더 높은가요? 연구에 따르면, 긍정정서 경험이 부정정서 경험보다 더 많을 때 삶의 질이 더 좋아집니다. 당연한 말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더 많아야 할까요?


놀랍게도 긍정 정서가 부정 정서보다 대략 '3배 정도' 더 많을 때 삶의 질 및 정신건강 상태가 최적으로 유지된다고 합니다. 물론 연령이나 문화에 따라 차이는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긍정정서가 '훨씬 더 많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정정서의 영향이 그만큼 더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긍정정서가 부정정서보다 3배 이상 많지 않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살면서 3배 근처에 간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살아왔습니다. ‘최적’의 상태가 그렇다는 것이지 그 정도가 안 되면 우리의 삶에 큰일이 일어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대부분 ‘최적’의 상태로만 살아가지 않습니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그런 상태에서 잠깐 머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최적’보다 조금 못한 수준에 머뭅니다. 그러다 ‘최악’의 순간으로 잠깐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 말기 바랍니다.


다만 긍정정서 점수가 부정정서 점수보다 상당히 낮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상태가 오래 유지될 경우 부정정서의 효과를 충분히 약화하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나는 왜 다른 사람들보다 긍정정서 점수가 낮은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긍정정서보다 부정정서를 더 많이 경험하며 보낸 시간이 길었습니다. 다행히도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긍정정서 점수가 낮은 편입니다. 저도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공부를 좀 더 깊이 해 보았습니다.


공부한 결과에 따르면, 다른 성격적 특징이 그런 것처럼 긍정정서를 경험하는 경향성도 타고나는 것의 영향이 대략 절반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논문을 읽으면서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은 채로 태어나고, 또 다른 사람은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은 채로 태어난다는 의미이니까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 노릇인데요.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나머지 절반이 후천적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후천적 경험도 유전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은 일단 무시하고, 그냥 절반은 내가 어찌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정신건강에 유리하니까요. 어차피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며 사는 동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쨌든 그 이후로 저는 긍정정서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런 주제를 다루는 연구들이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렇게 알게 된 다양한 방법을 여러분들께 소개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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