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학창 시절 나는 무척 부끄럼이 많았다.
국민학교시절 반에서 장기자랑 대표를 뽑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매일 아침 반에서 1,2등으로 등교하던 나와 지훈이는 그 아침을 기다렸더랬다.
지훈이는 노래를 잘했다. 아침마다 그 친구가 들려주던 노래를 들으려 나의 아침은 늘 분주했다.
“엄마 빨리빨리~ 나 학교 간다!!!”
아침마다 흥얼거리며 들려주던 지훈이의 노래를 듣다가 내게도 불러보라기에 수줍게 노래를 불렀었다.
“오 너 노래 잘하네!!”
그 친구의 칭찬에
나와 지훈이는 매일 아침 그렇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장기자랑 대표를 뽑는다고 했다.
당연히 우리 반은 지훈이가 나가서 멋드러지게 노래를 불렀다. 모두가 환호하던 그때, 담임선생님의
“ 여자친구들 중엔 누가 없니?” 하셨고
지훈이가 내 이름을 불렀다.
붉어진 얼굴로 아니라고 나는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고 엎드려버린 내게 선생님은 괜찮으니 나와보라고 하셨고, 그 옆의 지훈이가 바삐 손짓하며 부르는 통에 어느새 난 교탁 앞에 서게되었다.
그 순간의 향기를 기억한다.
빨개진 얼굴만큼 온통 붉은색의 향기.
너무 부끄러웠지만 지훈이의 말에 용기를 내본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노래를 시작했다.
박선주의 ‘귀로’였다.
국민학교 5학년이 부르는 ‘귀로’라니,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노래가 끝나고 박수가 쏟아졌다.
그렇게 나는 거의 매년 노래로 장기자랑에 나갔다.
수줍음이 많던 나는 장기자랑 나갈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두근대는 가슴을 감추지 못했고, 작년에 나갔던 사람이 나가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심지어 대학에서도 말이다.
대학시절 학교 축제에서는 매년 장기자랑 순서가 가장 기대되는 순서였다. 그러한 장기자랑은 매년 연극영화과가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어느해 우리과에서 장기자랑을 ‘나와 언니들’이 나가게 되었다. 그날의 연극영화과는 꽁트를 준비했고, 무척 반응이 좋았다. 우리는 기대없이 잘해보자고 서로를 격려하고 무대에 올랐다.
’나와 언니들‘은 그 해 디자인과인 우리과에서
처음으로 장기자랑 1위를 탈환한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고, 감격스러움에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내 안에 있던 부끄럼쟁이 ‘나’는 장기자랑에 나가면 늘 상을 타던 당당하던 ‘나’로 바뀌어 갔다.
혼밥도 그랬다.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다니.
‘난 못해 너무 부끄러!!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
하던 내가
아들을 셋이나 낳고 엄마로 살다보니,
이제는 혼자 김치찌개에 반찬 추가를
당당히 말하는 나로 자라 있듯이.
어느새 나는,
많은 청중을 바라보며 강단에 서는 강사로 자라 있다.
부끄럼 많던 국민학교 5학년의 ‘나’는
이제
아들을 셋이나 씩씩하게 길러내는
인생나이 4학년의 ‘귀로’ 를 다시 부른다.
비바람이 부는 길가에 홀로 애태우지 않고
아들셋과 함께 인생 비바람을 함께 해쳐나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