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톺아보기 Sep 20. 2023

엄살

코로나로 인해 그만두게 된 그 일은 아쉽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다시 하루가 지나며 슬슬 마음이 갈피를 못 잡는다. 

시간, 그 시간이 문제다. 


그래도 규칙적으로 일을 하던 그 시간에서 놓여나버린 내 생활, 

갑자기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공황의 상태에 빠져 버렸다. 


어차피 올해까지만 하자고 나 자신에게 말했었다.  

그런데, 늘 인생이 그렇듯 그 시간은 나를 위해 기다려주지 않았다. 


늘 살아오던 시간 속에서 겨우 하루 몇 시간의 규칙적인 배분이었을 뿐인데, 

나머지 시간들마저 풍치 걸린 이처럼 흔들린다. 


흔들리는 마음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그러니까 그게 벌써 몇 년 째인가, 내가 쳇바퀴 돌듯 

하루를 쪼개어 몇 사람처럼 참 경황없이 살아왔었구나 실감이 비로소 들었다. 

그래서 그 정신없이 돌리던 쳇바퀴의 속도감에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그 쳇바퀴에서 튕겨져 나온 일상의 느려진 속도를 견디지 못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쁘게 살았으니 좀 느긋하게 쉬어도 되련만 마음은 외려 더 조급하다. 

살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 같기도 하고, 

삶의 레이스에서 방출된 거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그냥 스쳐 넘겼던 주변 사람들의 처지가 다가온다. 

남편이 아픈 바람에 하루아침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귀농했던 아줌마는 죽고 싶을 정도로 변화된 환경이 힘들다고 했다. 

그래요, 힘들지요 했지만, 돌이켜보니 말뿐인 위로가 아니었나 반성이 된다. 

매일매일 정신없이 자신의 일을 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그 속도전에서 놓여나 누군가의 수발을 들며 일상을 보내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와 짚어진다. 

정년퇴직을 한 후 여행을 다니고, 밤을 새워 책을 읽었다던 선배는, 그저 참 시간을 잘 보내시는구나 라고 감탄만 했다. 대단하다만 했다. 하지만, 그 불면의 밤은 헤아리지 못했다. 


사람이 이렇다. 

내가 그 비슷한 처지가 돼보지 않고서는 남의 처지를 '역지사지'할 깜냥이 좀처럼 되지 못한다. 

비슷한 처지라기도 무색하다. 

지금이야 '사회적 격리'의 시대,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일자리를 잃었을 것이며, 삶의 리듬을 놓쳤을 것이다. 

거기에 나 하나 더 보태서 어렵다고 한들, '엄살' 밖에 안 되는 시절이다. 

나의 실존은 개별이지만, 그 실존의 체감은 '공용'이다.

공용이 된 '방출된 실존', 그 '엄살'이 가슴에 얹혀 쉬이 내려가지 않는다. 


매일 아침, 어제와 다르지 않은 아침을 맞이하는 일은 버겁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보낼까. 

마치 세상 살아오던 법을 잊은 사람 같을 때가 있다. 

여태 잘 살아오고, 오늘도 잘 살아갈 거면서도 아침이 힘들다. 

오늘 하루를 잘 보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까. 

엄살 부리지 말고 보내야 한다는 다짐 때문일까. 

아니면 여기서 널브러지면 나를 놓아버릴까 싶은 두려움 때문일까. 

정신줄 놓지 말라는 그 말을 매일 아침 새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전 06화 꽃이 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