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검은 색이다 !
이게 무슨 말이냐구요? 어젯밤 앱에서 확인한 오늘의 '컬러테라피'가 검은색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검은 색 플라스틱 반지를 끼고, 검은 색 티에, 검은 색 줄무늬가 있는 속옷을 입었다. 좀 심하다고?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내 마음을 달래려 하다보니 이렇게까지 되었다.
친구가 올해 들어서며 그랬다. 우리가 이제 삼재가 끝났으니 힘든 일은 끝났다고. 그런데 웬걸 마음이 쿵하니 내려앉았다. 세상 다 산 거 같았다. 아이들도 다 자라고 더는 내가 할 일이 없는 거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가 우리 사회를 덮쳤다. 규칙적으로 수업을 나가던 도서관이 문을 닫았다. 당연히 도서관에서 하던 수업도 멈췄다. 재개를 기약할 수 없었다. 안그래도 그닥 좋지 않던 기관지는 매일 매일 '코로난가?'하는 의심을 불러 일으켰다. '사회적 격리'로 인해 단절된 시간과 관계들이 나를 불안과 초조로 밀어넣었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코로나 환자들에 대한 뉴스에 숨이 막혔다.
흔히들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사람들은 그렇게 방구석에 있지 말고 나가서 햇빛도 쬐고, 걷기도 하라고 충고를 한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마음에서 오는 병,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떨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던가.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무서웠다.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게 두려웠다. 늘 해오던 일상이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매일 처음 해보는 것인 양 하나하나 나를 힘들게 했다. 당연히 밥맛도 없었다. 그러니 몸무게도 줄었다. 다이어트를 한다 어쩐다 해도 500g 빼기도 힘들던 몸무게가 하루가 다르게 줄어갔다. 순식간에 5kg가 빠졌다. 그러고도 계속 체중계의 눈금은 왼쪽으로 향했다. 정신줄을 놓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매 순간 내 정신이 경계를 오갔다. 체력이 안되니 더욱 마음이 주저앉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놓을 거 같던 시절에 우연찮게 고모님을 뵙게 되었다. 정년을 하시고 사주 명리학을 공부하셨다던 고모님이 내 사주를 봐주겠다 하시더니, 몸조심을 하라 당부하셨다. 올해가 나에게 아주 고단한 한 해가 될 거라고.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로도 힘든 한 해라고.
이상하게도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코로나로 힘든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부대끼던 상황에서 그저 그럴 때라 그런 거라는 말이 묘하게도 나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이게 끝이 없는 게 아니구나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끝이 없는 게 아니라도 일년을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 다 키우고 더 살 이유가 없다 했는데 돌아보니 아직 살아야 할 날이 남아있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해서 심지어 그 살아야 할 날이 살아온 날 못지 않았다. 저 멀리 펼쳐진 길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아직 가야만 하는 길이었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남아있었다.
우선은 10kg 가까이 빠진 체력을 추스리는 게 먼저였다. 형제들과 만나기로 한 여름날, 전철역에서 한 10분 쯤 걸었을까 했는데, 들어간 식당에서 형제들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내 얼굴이 백짓장 같아졌다고 걱정하던 언니가 형부와 함께 먹는다는 건강기능 식품을 주었다. 그걸 먹으니 잠시 뒤에 혈색이 돌아오고 어지러운 게 사라졌다.
집에 돌아와서 당장 언니가 준 그 건강 기능식품을 시켰다. 거금 7만원 여,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내가 살고 보자는 생각이 앞섰다. 귀농하여 대추 농사를 짓는 지인에게 대추즙도 꾸준히 시켰다. 오전, 오후, 밤까지 몸에 좋다는 걸 시시때때로 챙겨 먹었다. 몇 십 만원짜리 필라테스 회원권도 끊었다. 코로나로 인해 나갈 수 없는 시간이 더 많은 듯했지만, 그래도 모범 회원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꾸준히 나갔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매일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내 맘을 달래는데는 부족했다. 고모님처럼 사주 명리학을 공부할 깜냥은 안되고, 대신 그 비슷한 걸 알려준다는 앱을 깔았다. 처음엔 내 사주 오행에 부족한 걸 채운다는 명목으로 외출할 때면 꼬박꼬박 은색 시계를 챙겨 끼었다. 다음엔 이번 달에 좋다는 '호안석' 팔찌를 인터넷으로 시켰다. 거기서 한 술 더 떠 이제는 매일 매일 나에게 좋다는 색깔을 찾아 챙기게 되었다. 그런데 그 오늘 좋다는 색이 나에게 없었다. 옷들도 거의 다 무채색, 반지를 사고, 속옷도 새로 사고, 자꾸 자꾸 지갑을 열게 되었다. 번거로워 시계도 안차고 다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제는 시계에, 팔찌에, 반지까지 주렁주렁 차고 끼고 다닌다.
그런데 그 색이 재밌다. 무채색의 세계에서 살던 내가 다양한 '컬러'의 세계를 영접하고 나니 탐닉하게 된다. 반지만으로 만족이 안되서가 아니라, 내가 막연하게 그었던 색의 경계를 스스로 무너뜨리게 된 것이다. 파란 색 치마를 사고, 오트밀 색 코트를 사는데 주저함이 없어졌다. 치마든 코트든 다 검은 색만 입었던 내가.
어디 그뿐인가. 그런 사주 앱을 보면 제일 자주 나오는 말이 오늘 재물의 손실이 있을 수 있다 뭐 이런 문구들이다. 처음엔 그런 말이 나오면 가슴이 철렁했다. 내게 또 무슨 나쁜 일이 생기나 하고, 지난 가을의 어느 날인가도 그랬다. 공부하던 수업의 시험을 치던 날이었다. 코로나로 퐁당퐁당 거의 1년 여를 끌어 온 수업, 다들 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재물의 손실, 우리가 지나온 1년에 비하면, 내가 먼저 풀지 뭐, 하는 생각에 드링크제 한 박스를 사들고 들어갔다.
그 하루 걸러 찾아오는 재물의 손실을 그냥 내가 먼저 맞기로 했다. 사람 한 번 만나기 힘든 시절 어렵게라도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먼저 사고, 사고싶은 것들이 있으면 샀다. 덕분에 무채색으로 가득했던 내 옷걸이는 화려해졌고, 거리에서 만난 꽃다발로 인해 일주일의 행복을 즐겼다.
그렇게 1년 여를 보냈다. 객관적으로 내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수입은 작년에 비해 반토막이 났고, 다시 급증하는 확진자로 인해 약속들은 취소되고 다시 '칩거'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몸무게는 쉽사리 늘지 않는다.
그래도 나를 지켜 본 사람들은 한결 얼굴이 나아졌다고 한다. 돈을 많이 써서? 물론 돈을 많이 썼다. 돌아보면 예전에도 돈을 안쓰고 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올 한 해 코로나를 겪으며 돈을 쓰는 주체와 대상이 명확해 졌다. 예전에는 나를 위해 한 철에 옷을 하나 사도 주저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런 돈을 나를 위해서 써도 되나 했다. 하지만 이젠 파산할 정도가 아니면 나를 위한 것들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들을 위해 내가 조금 더 쓰는 것에 아까워하지 않는다.
단돈 9000 원을 주고 산 플라스틱 반지가 오늘 하루 나를 위로한다면 그걸 아낄 필요가 뭐 있겠나 싶다. 어렵게 만나 같이 차를 마시면서 내가 산 한 조각의 케잌에 모처럼의 시간이 풍성해진다면 그걸 마다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꼭 돈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마음 속에서 주판을 튕기던 관계들에 내가 먼저 다가서게 되었다. 다시 올 초의 불안하고 처절했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의 발버둥이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나를 둘러쌌던 경계를 무너뜨리며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