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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Sep 20. 2023

코로나 시대의 욕망

메르스나 사스 때는 이러지 않았던 거 같다. 

여기서 '이러지'라는 건 나도 죽을까봐 불안하고 공포에 떠는 마음을 뜻한다. 


친구에게 나도 고위험군이라 걱정이 된다했더니, 니가 왜? 

음..... 우선 나이가 많고, 최근 살도 많이 빠지고, 요즘 목이 간질간질하고 기침도 하고 등등 구구절절 이유를 대는데, 정작 반문을 한 친구는 신종 플루에 걸려 죽을 뻔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민망하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셈이다. 

그런 나의 민망함을 알기라도 한 듯이, 친구가 덧붙인다. 

아마도 너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유독 코로나에 공포심을 느끼는 이유는 발원지였던 이웃 나라에서 실제 사람들이 많이 전염되고 죽어나가는 '실재'를 목격했기  때문아니겠냐고 덧붙인다. 

시작은 중국이었지만 이제는 어디 중국 뿐이겠는가. 정부의 안이한 대처 그리고 한 종교의 맹목적인 행태로 인해 한 도시 전체, 그리고 이제 전국이 무방비한 상태에 놓여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누군들 불안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이유만은 아니다. 

혹시라도 내가 죽을까봐 불안해 하는 마음의 깊은 저 편을 들여다 보니 거기에는 살고자 하는, 극렬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번뜩거린다. 


젊어 한 때  '인생은 고해(苦海)'라며 쿨한척 하며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물론 스물 다섯 살의 내가 견뎌내기에 세상이 버거웠기에 했던 말이다. 하지만, 그 나이만큼, 그리고 또 몇 년을 사는 게 힘든지 뭔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삶의 바다를 헤쳐오고 보니 그 시절 '고해'라 주절거렸던 그 시절은 그저 꽃과 같다. 이제 늦가을 붉다 못해 거무스레해지는 잎을 떨굴 일만 남은 나이가 되고 보니 사는 거에 시쿤둥해졌다 싶었다. 메르스가 돌고, 신종 플루가 돌아도 당장 호구지책에 시달리다 보니 각종 전염병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고 지나가 버렸다. 그러다 보니 얘들도 다 크고 이제 살면서 할 일은 다 한 거 아닌가 라는 즈음에 이르렀다. 


오산이었다. 지난 겨울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가슴이 답답했다. 숨이 쉬이 쉬어지지 않았다.  청심환을 먹고,  가슴 답답함을 달래주는 약을 먹고, 진정 효과가 있다는 국화차를 마셨다. 그러다 문득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는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다 산 것처럼, 이제 뭐 할 일이 있겠나 싶었는데, 그래도 이렇게는 죽고 싶지 않더라는 것이다. 


손에 쥐고 놓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낼 모레 환갑인데 여전히 마음이 뜨거웠다. 할 일은 없는데 하고자 하는 욕망은 컸다. 나이에 따라 마음도 늙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늙지 않은 마음이 견디지 못하고 나를 들볶으니 가슴이 답답했던 거였다. 욕망은 있는데 욕망을 풀어놓을 길을 찾지 못하니 가슴 속에서 솟구쳐 끓어오를 밖에. 


그렇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여전한 삶에 대한 욕망,  새삼 세상을 덮친 코로나가 두려워졌다. 부쩍 약해진 체력도 자신이 없어졌고, 환절기마다 단골 손님처럼 찾아든 기침도, 간간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미열도 이게 혹시? 하는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겁이 나니 약을 찾았다.  비타민 c에, d에, 홍삼에, 약들이 그득히 쌓여간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수록 그분들의 늘어나는 약봉지들을 삶에 대한 악다구니처럼 여겼다. 그런데 나라고 뭐 다를까 싶다. 이렇게 죽지 않고 싶다고 주섬주섬 챙겨먹기 시작한 약들을 보니. 얼마나 살아야 하나 하던 얼마 전의 마음이 무색하다. 스물 다섯 꽃다운 시절의 고해나, 늦가을 떨굴 낙엽만 가진 시절의 시쿤둥함이나 결국 '똥폼'이다 싶다. 결국 그 한꺼풀을 벗기고 보면 삶에 대한 욕망이 지치치도 않고 샘솟고 있다. 단지 안타까운 건 이제 그 '욕망'을 쓸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다 키웠고, 할 일도 예전같지 않고, 터져나올 것 같은 짐가방을 짖누르듯 눌러 닫는 데도 한계가 있다. 결국 이게 나이듦의 과제다. 늙지 않는 삶의 욕구와, 늙어가는 세월의 조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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