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톺아보기 Sep 20. 2023

새우깡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우깡이 드시고 싶다고 우신다.  

말인즉슨 그거다. 

엄마가 사시는 집에서 즐겨 다니시던 마트는 10분 여, 나이가 드시고 이제는 거기조차 갈 엄두가 나시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아쉬우나마 집 앞에 있는 슈퍼라도 다니셨는데, 그 슈퍼가 얼마 전에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엄마 세대 분들에게 편의점의 새우깡 가격은 그냥 비싼 정도가 아니라 도저히 사 먹을 수 없는 불가능한 수준이다. 


아마도 몇 번은 그래도 뭔가를 사보려 편의점 문턱을 넘으셨나 보다, 하지만 매번 그 놀라운 가격에 들었다 놨다 하시다 나오시니, 그리고 그런 분들이 엄마뿐만이 아니라, 예전 그 슈퍼를 이용하셨던 엄마 연배분들도 자주 그러셨는지 편의점 주인은 엄마 연배분들이 들어오시면 대번에 할머니들 찾으시는 건 여기 없어요 하신단다.  

편의점 그 얼마나 한다고 그냥 사드 시라 해도 결국은 못 사드시는 세대, 그런데 새우깡은 드시고 싶고, 그러니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늙은 딸년한테 우는 소리를 하신다. 새우깡이 떨어졌다고. 새우깡이 드시고 싶다고.  


정말 맘 같아선 버럭버럭 소리소리를 지르고 싶다. 새우깡이 뭐라고, 새우깡이 뭐라고.

하지만 꾸욱 눌러 담고 차근차근 달랠 밖에.. 편의점 못 가시겠다는 분한테 편의점 가라 해봐야 내 입만 아프고. 

며칠만 기다리시라고 가는 길에 드시고 싶은 과자 사다 드릴 테니. 

그러면 손가락 걸고 몇 밤만 기다리면 된다는 아이처럼 수그러드신다. 물론 그 수그러드시던 맘은 그 뒤로도 내가 엄마 집에 새우깡을 사 가지고 갈 때까지 몇 번이나 더 불끈 튀어 올라 눈물로 마무리되었다.  

친구와 그런 엄마 얘기를 하니, 친구는 과자가 뭐라고, 몸에 좋으시지도 않는 그걸 드신다고 울기까지 하시냐고, 달래 보랜다. 


새우깡, 그걸 먹고 싶다는 엄마의 울음 속에는 많은 좌절이 담겨 있다. 그토록 바람처럼 여기저기 다니시던 분이 한 해 한 해 나이가 드시면서 바깥출입이 여의치 않아지셨다. 이젠 문 밖을 나가는 것조차 엄두 내지 못하시니 10분 거리 마트가 천리만리다. 자식을 다 키우고 이젠 홀로 남아 거동조차 여유롭지 않으시니 결국 먹을 거에 대한 욕망만이 남아 그게 새우깡으로 튕겨 나와 버렸다. 나이 들면 새우깡 같은 거 좀 먹어줘야 한다고 누가 그랬다는 되지도 않는 논리까지 가져다 붙이시면서.  


고기도 아니고, 과일도 아니고, 영양제도 아니고, 그 과자 나부랭이에 눈물 바람까지 하시는 그 욕구가 참 처연하다.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는 그 고래의 결정론을 들이대기도 민망하게 이젠 매달릴게 새우깡 밖에 없는 엄마의 처지에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엄마의 새우깡만 뭐라 할 것이 아니다. 나이 들어가는 건, 어쩌면 살아가면서 점점 의무적으로 해야 할 많은 것들에서 놓여나고 점점 새우깡 같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욕구들만이 남겨져 가는 처지가 아닌가란 생각에 도달해서이다.  


엄마의 새우깡 바람에 질색팔색을 하면서도 되돌아보니 나라고 뭐 그리 다를까 싶은 거다. 나 역시 어제 일찌감치 봄바람이 들어 분홍색 운동화 한 켤레를 샀다. 운동화가 없어서 샀을까.  철 따라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바람처럼 사들이는 옷이며 신발이며부터 시작해서, 내 욕심에 따라 연연해 마지않는 관계들 하며, 맛집 찾아다니며 먹어대는 새로운 요리들까지 그것들이 새우깡이랑 뭐 그리 다를까. 나의 욕구와 욕망은 당연시하고 늙어가는 재미라며 놓치고 싶지 않아 하면서 이제는 새우깡 말고는 연연해할 것마저 없어진 엄마의 욕구에 대해서 징그러워하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까.  


내가 하고 사는 건 나이 들어가면서 찾는 재미고, 엄마의 새우깡은 주책이라는 그 이분법에서 벗어나 보니 엄마의 새우깡은 긍휼 해지고, 나의 재미들은 면구스러워졌다. 긍휼과 면구 사이의 그 어디쯤에 나이들어 가는 삶의 균형을 찾아가야 할 듯한데 쉽지 않다.  






이전 01화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