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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Sep 20. 2023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이렇게 써놓으니 심각하지만 사실은 별 거 아니다. 먹는 거에 대한 얘기다.  


사람들과 만나 무엇을 먹을까 하고 메뉴를 정할 때면 대부분 내가 먹고 싶은 거보다는 함께 한 상대방들에게 맞추는 편이다. 집에서 오늘의 메뉴를 정할 때면 아이들이 있으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 남편이 있으면 남편이 좋아하는 거를 준비하게 된다. 그들이 없으면,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해 먹기보다는 먹기 편한 거, 라면이라던가 먹기 편한 걸로 때우기 십상이다. 사람들과 어울렁 더울렁 어울려 지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했던 음식이 뭐지?라고.  


예전에 대학 시절에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에 빵집에 들러 빵을 사 먹었었다. 중학생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남학생이던 녀석 옆에서 내내 꼬르륵꼬르륵 하도 그랬더니 결국 학생이 간식을 가져다줬던 면구스러운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혹시나 또 꼬르륵 소리를 낼까 싶어 빵을 사 먹곤 했었다.  주로 먹었던 것이 도넛 종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팥이 든 거나, 꽈배기나. 그래서 지금도 거리를 걷다가 도넛을 파는 집을 보면 군침이 돈다. 그런데 정말 도넛을 좋아해서일까? 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도넛 튀기는 냄새를 맡으면 저절로 군침이 도는 건 마치 파플로프의 개처럼 내가 자라면서 가장 친근하게 먹었던 것이 도넛이어서는 아니었을까? 당시 빵집에 있던 다른 빵들이 당시 나로서는 먹어보지 못한 좀 낯설었던 것들이라서 선뜻 집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식이다. 이제와 내가 좋다고 하는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익숙했던 것들인 경우가 많다. 결혼 전 나는 국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분식집을 가면 친구가 먹는 칼국수가 한 끼라도 든든하게 먹어야겠다며 비빔밥을 시켜먹던 내게는 좀 신기해 보였다. 저 뜨거운 풀떼기가 뭐가 좋아서 저렇게 맛있게 먹지?  그런데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칼국수를 좋아하는 거다. 그 사람 입맛에 맞춰 오래도록 칼국수를 해 먹다 보니 어느새 나도 칼국수가 익숙해지고 좋아졌다. 심지어 요즘은 '매생이'가 좋다며 종종 주문하는 남편 덕에 '매생이'가 든 칼국수며 떡국을 자주 해 먹는데, 이 생전 먹어보지도 않았던 음식을 즐겨 먹고 있는 이 상황이 생각해 보면 또 뭔가 싶다.  


어떤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 나만의 고유한 정서인 듯 하지만 되돌아 새겨보면 거기엔 내가 살아왔던 시절의 흔적들이 있다. 떨어져 있던 엄마가 나를 찾아와 건네던 요구르트와 군밤 한 봉지, 얹혀살던 이모네 집의 무말랭이며 멀건 김칫국,  그런 것들이 나에게 취향인 듯이 새겨져 오늘에 이른다.  


그러고 보니 정말 내가 좋아서 좋은 거라는 게 존재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 않은가. 생선이라든가 비린내 나는 음식들을 잘못 먹는 사람들을 보면 어릴 적 어머님이 통 그런 걸 못 드셔서 별로 먹어본 기억이 없어서라던가 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호나 좋아함 역시 곰곰이 따지고 보면 각각 개인의 역사적 근원을 가지고 있는 거 같으니,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이란 말 자체가 어쩌면 애초에 어패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다 했던 것에 대한 아집 자체가 우스워진다. 


뭐 그런데 이런 취향에 대한 논리적 추적 뒷면에는 그냥 이리저리 남들 좋아하는 거 대충 맞춰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안쓰러움이 묻어있다. 그런 때 있지 않은가. 사람들을 만나면  웬만하면 그들에 맞춰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피로감, 뭐 그게 시작이었다. 그런데 피로감은 느끼는데 어느덧 내가 정말 뭘 좋아했는지 조차 가물가물하니 먹는 걸로부터 시작했지만 문득 나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졌달까.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살아와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시절, 이제는 누구의 딸도,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 자리도 점점 옅어져만 가는 즈음에 문득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로부터 나는 누구인가란 개똥철학에 이른다. 이젠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희미해져 가는 시절 '나'를 되찾을 수밖에 없는 시절의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꼭 나처럼 머리 희끗희끗해져서야 나는 누구인가 할 것만도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부대껴 살다 보면 문득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잃어가는 듯한 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그냥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보자. 그걸 찾다 보면 내가 살아온 시간이 드러날 것이고, 그 시간 속에서도 어쩌면 고유하게 정말 나만이 좋아했던 그 어떤 것을 만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새해를 맞아서도 여전히 헤매는 나에게 친구는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사는 일이 어디 내가 좋다고 다 하게 되는 것인가. 그럴 때 녹록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찾아 먹어보며 나를 위로해 보자. 아니 내 친구는 아마 이럴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들을 것이다. 그 무엇이라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나를 다시 시작해보자. 그런 의미에서 내일 극장에 갈 땐 달달한 캐러멜 팝콘을 한 아름 안고  들어가 보련다. 아니 모처럼 햄버거를 하나 먹어볼까? 다이어트 그런 거 스킵하고, 몸에 좋은 거 그런 것도 잠시 넣어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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