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날씨가 좋다는 10월의 어느 날,
열아홉 살의 어린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한 생명이 태어났다. 그 아이가 바로 나였다.
아빠는 항상 바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집에 머물러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평일은 물론 일요일에도 늦게까지 일하는 일이 많았고
주간근무와 야간근무를 가리지 않고 출근하는 식이였다.
어렸을 때, 친구들은 아빠가 바쁘면 서운하다고 했다.
그땐, 어린이날에 부모님이 출근해서 혼자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동네마트에서 과자를 나눠줬는데
그때 나와 같이 과자를 받은 친구가 운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만큼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게 불만이 아니었다.
서운하지도 않았다. 아빠의 빈자리는 이미 익숙했고
그 자리를 엄마가 다정하게, 조용하게, 그리고 충분하게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다.
‘아빠는 바쁜 사람이고, 엄마는 안 바쁜 사람이다.’
그건 어떤 불균형도 아니었고 내 어린 마음엔
그냥 세상의 구조 중 하나였다. 누군가는 바빠야 하고,
누군가는 그 바쁜 사람을 대신해 곁에 있어주는 거라고.
나는 그렇게 자랐다.
바쁜 사람과 안 바쁜 사람 사이에서.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내가 부모의 나이에 가까워질 무렵,
문득 깨닫게 된 것들이 있었다.
엄마는 안 바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바쁜 기색을 내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잠든 내 이불을 덮고 나서야
새벽에 집을 나서서 일을 했었고,
나의 밥을 챙겨놓고 나서야 조용히 집안일을 시작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분주했지만
엄마는 내 앞에서는 늘 ‘나만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바쁨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너무 어린 나는 애써 보려 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늘 바빠 보였고,
어딘가 모르게 나와 거리가 느껴지던 사람이었지만
돌아보면 아빠는 나름의 방식으로 곁을 지키려 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내가 원하는 게임기의 사양을 검색하여
조금이라도 좋은 걸 사주려고 했었고, 하루라도 쉬는 날에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갔었다.
그 모든 순간들이 그때는 잘 와닿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건 ‘미안함’이기도 했고, ‘사랑’이기도 했다는 걸.
또, 엄마와 아빠의 청춘은
내 유년 시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실은 나를 위해 조용히, 묵묵히
희생된 시간들이었다는 걸.
그렇게 두 사람이 겪은 고단한 날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무언가를 미뤄가며, 감정을 눌러가며
사랑을 쌓아 올린 사람들.
그 청춘의 무게를 이제야 조금씩 짐작하게 됐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적어도 그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흔들리더라도 무너지지 말자고.
그들의 청춘이 지켜낸 ‘나’라는 사람을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나는 이제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바쁨과 누군가의 침묵이
사랑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