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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파트 중도금 일정은 추석 연휴 뒤로, 아직 몇 주 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 시기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두 가지 불안이 있었다. 하나는 정부의 규제 발표, 다른 하나는 집주인의 변심이었다.
곧 정부가 새로운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텐데, 이번에는 99%의 확률로 규제지역 확대 지정이 있을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이미 9.7 대책이 별다른 내용 없이 지나갔기에, 시장에서는 곧 추가 발표가 나온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처음에는 추석 직전에 발표가 있을 거라 했지만, 발표가 미뤄지자 사람들은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터질 것을 예측했다.
올해 추석 연휴는 최장 10일에 달했다. 집을 사려던 사람들은 황금연휴에 해외여행을 예약해둔 것을 후회했다. 국내에 있던 사람들은 집 계약을 서둘렀고, 부동산은 연휴 내내 문 닫을 틈이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 규제지역은 강남 3구와 용산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계약한 사랑아파트는 시장에서 '곧 투기과열지구로 묶일 구역'으로 자주 언급되는 곳에 있었다.
나는 이미 계약을 마친 상태였지만, 추가 규제 발표가 날 가능성에 촉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왜냐면 토지거래허가구역이나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는 순간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보통 주택자금조달계획서는 6억 원 이상 주택 거래에 대해 제출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규제지역으로 지정되면 거래가액과 상관없이 무조건 제출해야 하고, 특히 투기과열지구는 모든 항목에 대한 증빙 서류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가령 예금의 경우 잔액 증명서, 펀드나 주식 매각 대금의 경우 주식거래내역서나 잔고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증여는 가족관계증명서와 이체 내역이 필요하다. 차입금의 경우 금융기관에서 받은 것은 증명서만 떼면 되나, 가족으로부터 받았다면 애초에 차용증부터 작성되어 있어야 한다.
혹여나 국세청에 소명해야 할 상황에 대비하여, 계획서에 적힌 금액은 증빙 서류와 10원 단위도 틀리지 않아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이게 내가 30일 안에만 제출하면 되는 주택자금조달계획서를 굳이 서둘러 준비한 이유다. 나는 서류 제출로 인해 일이 복잡해지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부 규제 발표로 투기과열지구로 묶이기 전에 필사적으로 계획서를 작성해서 제출해버렸다.
정부 발표를 앞두고 부동산 시장은 뜨겁다 못해 끓어오르고 있었다. 매주가 아닌 매일 곳곳에서 신고가가 갱신됐다.
그 사이 사랑아파트의 호가도 불과 몇 주 만에 3억 원이 올랐다. 아직까지는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오르는 시세를 보고 있자면 또 불안이 밀려왔다.
‘혹시 집주인이 계약금을 물어주고 계약을 깨버리면 어쩌지?’
내가 낸 계약금은 1억 원이다. 매도인이 계약을 취소하고 배액배상을 한다면 1억을 잃는다. 하지만 호가대로라면 3억이 올랐기에, 결론적으로 2억을 더 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밤마다 잠을 설쳤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한 일이 있을 때 자다가 중간에 깨곤 한다.
나의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다른 일에 몰두해서 잊고 살거나, 혹은 논리적으로 파고들어 해답을 찾거나. 나는 후자를 택했다.
사실 감정은 불안했지만, 머리로는 이 계약이 취소될 가능성이 낮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팩트 1.
매도인 측이 처음에 매매가를 올릴 때 제시하던 금액은 300만 원, 그다음 500만 원으로 스케일이 크지 않았다.
→ 이를 미루어보면 배액배상을 감수할 만큼의 배포가 있을 것 같지 않다.
→ 또 시세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다. 현재 시장 상황을 안다면 훨씬 더 과감하게 호가를 조정했을 것이다.
팩트 2.
이 매물은 가족 간 재산분할 문제에 엮여있다.
→ 적어도 세 집의 의견을 다시 모아야 하므로, 결정을 번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 배액배상을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1억 원이라는 자금이 먼저 필요하다. 그러면 각 집에서 각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렇게 복잡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팩트 3.
매도인 할아버지가 몸이 편찮으셔서 부동산에 한번 나오는 것도 쉽지 않으시다.
→ 대리인과 계약하지 않는 이상 현재 계약을 취소하고, 또 새로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번거롭다.
팩트 4.
계약서에는 매도인의 주소가 적혀 있다. 내가 계약한 사랑아파트 매물은 전세가 껴있어서 전세 승계를 위해 전세 계약서도 포함되어 있다. 전세 계약서에는 대리인인 큰아들 집 주소가 적혀있었다.
계약 진행 시 본인 확인을 위해 절차상 계약서와 주민등록증 간의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게 되어있다. 계약 당일에 대화하며 들었던 것은 집이 청약에 당첨되어 간 곳이라고 했다.
→ 조심스럽긴 하지만 두 집의 주소를 보자마자, 부동산 투자에는 큰 관심이 없는 분들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집을 사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사랑 아파트가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파시라고 했을 것이다.
이런 판단을 하는 게 매도인 가족들께는 죄송하긴 하지만, 나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이성적인 근거를 찾다 보니 이런 결론이 나왔다.
결론적으로 이 계약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정말 만에 하나 계약이 취소된다면, 그건 내 것이 아닌 거다. 계약이 취소되어도 1억 원을 버는 셈이니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물론 진심으로 바란 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중도금을 낼 때까지 아무 일도 없길 바라며, 불안감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위의 사실들을 되새기며 마음을 편히 가지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