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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우선순위

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26

by Posy 포지


오늘이면 발표 날까, 내일이면 발표 날까 하던 부동산 규제 대책. 점심때까지만 해도 회사 동료들과 “도대체 언제 나오는 거냐” 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퇴근길에 보니 엠바고인 상태의 문서가 이미 여기저기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10월 14일, 이른바 ‘10.15 대책’이 발표되기 하루 전이었다.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다. 이제 아파트를 사면 2년간 실거주 의무가 생기기 때문에, 갭투자는 사실상 원천 차단된 셈이었다. 허가 구역 지정은 공고 후 5일 뒤부터 효력이 발생하므로, 실제 적용일은 10월 20일이었다.



그 사이 시장은 폭주했다. 사람들은 이 기간을 ‘5일장’이라 불렀다. 집을 사야 하는 사람은 패닉바잉을 했고, 팔아야 하는 사람은 급하게 던졌다. 결국 노난 건 부동산뿐이었다.



내가 계약한 사랑 아파트도 세입자가 있는 매물이었다. 다행히 계약과 서류 제출까지 이미 마친 상태였으나, 규제가 조금만 일찍 나왔어도 나는 이 집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집주인은 이 집을 되팔 수도, 직접 들어와 살 수도 없다.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발표



이제 가장 큰일이 남았다. 바로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자산은 여러 통장과 계좌에 흩어져 있었고, 예금처럼 손쉽게 꺼낼 수 있는 돈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무엇을 먼저, 어떤 순서로 사용할지를 정하는 일이 가장 복잡했다.



우선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던 항목부터 조정했다. 그중 하나가 연금이었다. 남편과 나는 연금저축과 IRP를 합쳐 연 900만 원을 매달 채우고 있었는데, 당분간은 납입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자산을 현금화할 차례였다. 집을 마련하려면 내가 가진 자산 대부분을 매도해야 했다. 특히 큰 비중을 차지하던 주식의 매도 시점을 잡는 것이 관건이었다.



중도금은 당장 필요하지만, 잔금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연말 랠리를 고려하면 모든 자산을 미리 다 현금화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판단했다. 그래서 시장 상황에 따라 시점과 우선순위를 나누어 종목 별로 매도하기로 했다.



나는 각 자산의 성격, 세금 등 상황을 따져보며 자금 조달 계획을 세웠다.




주식 / 채권 / 코인 etc.


1. 채권

가장 먼저 팔았던 건 미국 단기 채권이었다. 원래 현금 대용으로 가지고 있던 것이라, 가장 손쉽게 현금화할 수 있었다.



아쉬운 건 환율 타이밍이었다. 달러가 많이 오른 상태에서 원화로 환전했는데, 그 뒤로도 환율이 미친 듯이 뛰어올라버렸다. 며칠만 더 기다렸다면 환차익만으로도 꽤 수익을 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2. 주식

내 증권 계좌는 거의 백화점 수준이다. 사용하는 계좌도 여러 개인 데다가, 개별주와 ETF까지 온갖 종목이 다 섞여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국장)은 이미 많이 오른 상태였고, 세금 이슈도 없으니 일단 전량 매도하기로 했다.



긴긴 추석 연휴 동안 장이 닫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하지만 연휴 이후에도 시장이 강세를 이어갔기에, 어쩔 수 없이 기다렸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미국 주식(미장)은 비중이 컸기 때문에 조금 더 복잡했다. 또 양도소득세 22%가 붙기 때문에, 세금 부담이 커서 최대한 팔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매년 비과세 한도(250만 원)를 채워 매도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목돈을 마련하려니 세금만으로도 제법 큰돈이 나가야 했다.



주식을 배우자에게 증여해서 양도세를 피하는 방법도 잠시 고민해 봤다. 하지만 2025년부터는 1년 보유 요건으로 변경되었고, 어차피 이번 집 매수에는 활용할 수 없었기에 패스했다.



결국 나스닥을 이끄는 M7을 포함한 테크주와 연말에 기대감이 큰 금융주만 남기고 나머지는 대부분 정리했다.



3. 코인

나는 코인 비중의 대부분이 비트코인이고, 알트코인은 거의 없다. 비트코인은 팔자마자 현금화가 가능하니, 중도금 납부 전날까지도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결정을 미뤘다.



몇 개월간 전반적으로 장이 좋기는 했지만, 추석 연휴 앞뒤로 유난히 시장이 불안했었다. 국장, 미장, 코인을 가리지 않고 변동성이 엄청났다.



10월 초엔 비트코인이 1.6억 원대에서 1.79억 원까지 치솟았다. 10월에는 코인 시장이 좋아서 '업토버'라는 말도 있다. 나도 '3억 가자!'를 외치며 기다렸다.



하지만 트럼프가 중국에 희토류 관세 100%를 부과하자 증시와 코인장이 동시에 폭락했다. 코인 시장은 여기저기서 청산 이슈가 터졌다.



하지만 하루도 안돼서 트럼프는 물러섰고, 시장은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라며 바로 반등했다. 이번에도 트럼프 아들이 발표 내용을 미리 알고 숏 포지션을 잡았던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10월 14일엔 코스피가 신고가를 찍었다가 장이 끝날 무렵 급락했다. 간밤에 미국의 파월 연준 회장이 QT 완화를 시사해서 나스닥이 올랐지만, 같은 날 트럼프가 중국에 대두를 가지고 관세 발언을 해서 다시 하락했다.



그리고 10월 15일, 뉴스 헤드라인에 '경제 대통령 이재용'이라는 문구가 여기저기 등장한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폭등하며 코스피가 또 신고가를 경신했다.



그 와중에 금값만이 꾸준히 올랐다. 하지만 10월 말이 되자 그것조차 하락세로 돌아섰다.



오늘은 10월 30일. 이 모든 게 아직 끝나지 않은 10월 한 달간의 일이다.




연금

나는 사회 초년생 때부터 꾸준히 연금을 납입해왔다. 그래서 꽤 많은 금액이 쌓였지만 지금 해지하면 여태껏 받아온 세제 혜택들이 모두 사라진다. 무엇보다 노후대비라는 연금의 본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 돈을 그저 묶여 있는 자산으로 두기엔 아까웠다. 그래서 깨지 않고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가 가진 연금 계좌는 총 다섯 개다. ① 연금저축, ② 개인 IRP, ③ ISA, ④ 이전 직장에서 퇴직금으로 받은 IRP, ⑤ 현재 직장의 DC형 퇴직연금. 이 중에서 실제로 활용 가능한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1. 연금저축계좌

납입금의 50-60%까지 담보 대출이 가능하다.



2. ISA

해지하지 않아도 원금은 인출이 가능하다. 즉 수익액을 뺀 나머지는 사용 가능하다는 말이다. 원금을 인출하면 그만큼 납입 한도가 줄어들지만, 필요하면 재가입이 가능하니 큰 부담은 아니었다.




대출

나는 전세가 낀 매물을 매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택 담보대출을 받는 것이 불가했다. 결국 선택지는 신용대출과 예금담보대출뿐이었다.



1. 신용대출

가장 먼저 한 일은 대출 한도와 금리 비교였다. 카카오뱅크, 토스, K뱅크 같은 플랫폼을 통해 조회해 보면 각 은행 별 상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은행마다 금리는 조금씩 달랐지만, 현재 시점에서 직장인이 신용대출로 일으킬 수 있는 한도는 어차피 연봉이 상한선이다.



혹시나 오프라인 창구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집 근처의 은행들을 직접 찾아가 봤다.



국민은행, 우리은행, 농협에 가서 물어봤는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창구에서 상담을 받더라도 온라인에서 똑같은 조건을 알려주었고, 어떤 경우는 오히려 비대면 채널이 더 유리했다.



결국 온라인으로 가장 금리가 낮은 곳을 선택해서 신용 대출을 받았다.



2. 예금담보대출 (청약통장)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하나쯤 가지고 있는 주택청약통장도 예금의 일종이라 담보대출이 가능하다. 납입금의 약 9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잔액이 많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최대한 활용했다.



추석 전부터 ‘곧 부동산 대책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았기에, 혹시나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또 연말에는 은행의 대출 잔고가 소진될 여지도 있어, 나는 받을 수 있는 대출을 미리 다 받아두기로 했다. 이자가 조금 나가더라도, 변수가 생기는 것보단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3. 엄빠찬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도 도움을 청했다. 미국 주식을 팔면 세금이 너무 크다고 고민하자, 부모님은 일정 금액을 빌려주실 수 있다고 하셨다. 흔쾌히 허락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자금 조달 계획이 한결 명확해졌다.



나이가 들면 부모님께 도움을 드리면서 살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케어를 받고 있다.








결국 중도금은 대출(신용대출, 예금담보대출)과 단기채권, 국내 주식, 미국주식 일부, 비트코인 일부를 현금화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잔금은 남은 해외 주식을 매도하고 부모님께 빌린 금액으로 치를 것이다.



최근 가장 신경을 많이 쓴 일이 자금을 마련하고 그 사용 순서를 정하는 것이었다. 어떤 것 부터 매도할 지, 파는 게 맞긴 한지, 매달 이자는 언제 나가는 지, 돈이 빠져 나가는 사이에 월급으로 생활비 충당이 가능한 것인지 등을 생각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래도 이렇게 자금 계획을 세운대로 진행할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참에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던 계좌들도 말끔히 정리했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잔금이라는 마지막 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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