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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샀다는 말 친구에게 해도 될까

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27

by Posy 포지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돈이 모자라는 게 아닌지 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에 적극 동의한다. 웬만한 문제는 돈으로 해결된다. 그래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오히려 쉬운 문제다.



우리가 열심히 부동산 임장을 다니는 이유도 결국 돈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돈이 많았다면 고민하지 않고 압구정이나 반포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가진 돈이 한정돼 있으니, 그 안에서 가장 나은 걸 찾기 위해 고르고 또 고른다. 서울 집을 턱턱 살 수 없으니, 다들 그렇게 주말마다 부동산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럼 왜 돈이 없을까.



가난한 집에 태어났을 수도 있고, 돈이 있었지만 잃었을 수도 있다. 많이 벌어도 버는 족족 다 쓸 수도 있고, 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빚을 갚거나 가족을 도와야 할 수도 있다.



같은 학교를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해도, 같은 회사에 다니며 비슷한 월급을 받고 있다 해도, 개인의 사정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고, 누군가는 부모님에게서 집을 증여받는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속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고민이 생겼다. 집을 샀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려도 될까?



사실 이걸 감추는 일은 쉽지 않다. 요즘은 언론이든, 회사 동료와의 대화든, 어디서나 부동산 이야기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문득 말하고 싶어진다. 자랑하고 싶은 감정이라기보다, 그저 나에게 다가왔던 우연들과 그 속에서 배운 경험담을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그런 욕구를 누르고, '집을 샀다고 말했을 때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무엇이 보다 나은 선택인지 천천히 떠올려봤다.




집을 샀다고 말해서 얻는 것


1. 공유의 기쁨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즐겁다.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부동산이기 때문에 더더욱 재밌다. 내가 집을 샀다고 말한다면, 부동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세금이나 대출, 인테리어와 같이 현실적인 정보를 나누며 더 많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2. 떳떳함

지인들과 대화 중 “포지 님은 첫 집으로 어디 사고 싶어요?”, “요즘 부동산 시장 난리잖아요, 대출 안 나와서 어떡해요?” 같은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저 말을 아끼고 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더라도, 어딘가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집을 샀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대화가 한결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집을 샀다고 말해서 잃는 것


1.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집 하나 산 게 뭐가 대수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집을 사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친 사람에게는 남이 아슬아슬하게 집을 샀다는 한마디가 의도치 않게 상처가 될 수 있다



2. 귀찮은 질문과 간섭이 따라온다.

“대출은 얼마나 받았어?”, “부모님이 도와주셨어?” 부러움과 궁금증이 섞인 질문들은 나에게 피로를 만든다. 친한 친구라면 모르겠지만, 만약 나와 크게 상관없는 사람이 묻는다면 굳이 대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3. 무시나 평가의 시선이 생긴다.

'그 정도면 괜찮네', '그 동네 별로야' 혹은 '그 돈이면 ~~'와 같은 류의 말들을 듣게 될 여지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산 집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나를 은연중에 깎아내릴 수 있고 무시할 수도 있다.



4. 회사에서의 오해

특히 직장에서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괜히 “요즘 일보다 부동산에 관심 있나 봐?” 같은 말이 돌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남들에게 집을 샀다고 말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 보인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에게만 말하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을 골라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집을 샀다는 걸 친구나 지인들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부모님과 남편뿐이다.



물론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지인들도 있다. 그 사람들이 내가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 어떠한 평가 대신 축하한다고 말해줄 것을 안다. 내가 오랜 시간 집을 갖고 싶어 했으니, 나의 노력이 보상받은 것에 대한 축하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먼저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상대가 물어보거나, 대화 흐름상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아니라면 굳이 꺼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알리지 않아도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오랜 시간 품어온 목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뤄냈기 때문이다.



남들의 평가보다 중요한 건 내가 실제로 이루어낸 결과다. 오랜 기간 부동산을 공부하며 근거에 기반하여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힘을 키웠고, 출근 전과 퇴근 후에 임장을 다니며 작은 시간도 소중히 여기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결단력도 생겼다.



나는 집을 산다는 첫번째 목표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건 단지 집 한 채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겪어낸 경험이다.







-다음 편은 잔금을 치른 다음인 12월에 돌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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