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29
집주인은 전세 매물을 흔쾌히 월세로 바꿔준다든지, 입주 일자도 원하는 대로 맞춰주어서 우리는 처음부터 불편한 것이 전혀 없었다.
감사한 마음에 우리도 집주인을 배려해서 사소한 모빌 자국 등을 하자로 문제 삼지 않았고, 이사 이후에 집주인 앞으로 택배가 와도 신경 써서 하나하나 다 처리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
어느 날 집주인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경기도 월세 집을 매매로 내놓는다는 것이었다.
집주인은 마포에 전세를 얻어 이사를 갔다. 아무래도 실제로 살아보니 서울에 완전히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울에 집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의 경기도 아파트를 매도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세입자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냐며,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신혼집을 매수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왔다.
우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현재의 신혼집에서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계획도 지금 사는 집에서 기회를 보다가 향후 서울 아파트를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 경우 최대한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진심으로 집주인의 매매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매물이 나온 지 꽤 오래되었는데, 집에 보러 온다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은 비슷한 신축 아파트들이 모여있고 경쟁 매물 물량이 많아서 새 주인을 찾기 쉽지 않았다. 집주인은 오랫동안 애가 탔을 것이다. 집주인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새 집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아무래도 월세라 그런지 매수자가 없는 것 같아요. 혹시 전세로 바꾸는 것을 고려해 주실 수 있나요?"
하지만 우리는 애초에 보증금을 낮추기 위해 월세를 선택한 상황이었기에 조심스레 거절했다.
몇 달 뒤 집주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도 월세에서 전세로 바꿔달라는 요청이었다.
"잘 지내시죠? 서울에 집을 매매하려고 하니 목돈이 많이 필요하네요. 죄송하지만 혹시 월세에서 전세로 바꾸는 걸 한 번 더 고려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상황을 보면 아무래도 새 집주인을 찾기는 어려워 보여요. 전세금으로라도 충당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월세를 전세 매물로 바꿔 매도를 하든, 전세금으로 보증금을 받아 2주택자 포지션이 되든 집주인은 어떤 방식으로든 서울에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목돈 마련이 필요해 보였다.
그 입장이 너무나도 이해가 되어 안타까웠지만, 우리 또한 매매를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결국 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월세 신혼집은 집을 보러 온다는 사람 한 명 없이 계속 평온하게 유지되었다.
부동산에서 단 한 번의 연락도 받은 적이 없었던 우리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집을 보러 오겠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시작된 일이다. 뉴스를 통해 부동산 열기가 점차 뜨거워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우리 집까지도 찾아온 순간이었다.
우리 집은 신축이라 기본적으로 깨끗했고, 물건도 많지 않은 데다 가구도 화이트·베이지 톤으로 통일해 친구들이 놀러 올 때마다 모델하우스 같다고 말하곤 한다. 누군가 집을 보러 오기로 한 날이면 남편은 분위기를 살린다며 재즈 음악을 미리 틀어 두었다.
하루는 내가 약속이 있어 향수를 뿌리고 외출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드레스룸에서 향수 냄새가 나자 집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고 말을 했는데, 남편이 거기다 대고 태연하게 "원래 이 집에서는 항상 좋은 냄새가 나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최선을 다해 새 집주인을 찾았다.
20평대로 넓지 않다 보니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부부나 예비 신혼부부였다. 우리 집은 신혼집의 로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는지, 사람들은 예쁘다며 감탄하고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남편은 집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슬쩍 이렇게 덧붙였다.
"혹시 계약하시게 되면 '친절 부동산'에서 하세요. '막무가내 부동산'은 절대 가시면 안 되고요."
부동산 6.27 대책과 9.7 대책 발표 뒤 집을 보러 오는 발길은 더 잦아졌다. 일주일에 몇 팀씩 찾아오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많았지만, 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우리 신혼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실제로 그 집에 살고 싶어 했다. 실거주 수요 입장에서 월세 세입자가 있는 집을 매수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주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정말 집을 팔고 싶어서 그러니, 혹시 우리에게 계약 갱신 청구권을 쓰지 않고 집에서 나가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집주인에게는 너무 미안하지만, 우리는 상황 상 계약 갱신 청구권을 쓰는 것이 나아서 2년 더 연장을 선택했다.
집주인 부부는 아이 교육을 위해 이미 서울로 이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기도로 다시 내려와 직접 살면서 우리를 내쫓을 수도 없었다. 결국 집주인은 원치 않았던 계약 갱신을 받아들여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0.15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고, 그와 동시에 우리 집으로 오는 발길이 뚝 끊겼다. 우리가 사는 지역이 토허제에 묶였기 때문이다.
월세집에 돈이 묶여 있어 전전긍긍하던 찰나, 집주인에게는 서울 집을 살 기회가 닫혀버렸다.
우리는 월세로 살며 집주인의 전세 전환 요청을 두 번 거절한 세입자였다.
게다가 우리는 갱신청구권을 미리 사용해 2년 더 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투자보다는 실거주로 적당한 집이기에, 월세가 들어가 있는 집을 매수할 새 집주인도 구할 수 없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결과적으로 집주인에게 악덕 세입자가 되어버렸다.
집주인의 상황과는 반대로, 우리는 운 좋게도 서울 전체가 토허제/투기과열지구에 지정되기 전에 서울에 집을 매수했다.
서울 집을 사기 위해 미리 서울로 이사 갔던 1주택자 집주인 부부는 경기도에 있는 집을 매매하지 못해서 서울에 집을 사지 못했다.
서울 집을 사기 위해 경기도에서 월세로 살며 기회를 엿보던 무주택자였던 우리 부부는 지금은 서울 집의 주인이 되었다.
서울에 집을 사려던 목표는 같았다. 그런데 몇 달 사이에 두 부부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