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목록: 서울 집 (5년 전 담음)_30
“사장님 큰일 났어요, 세입자가 집을 샀답니다!”
“네? 그럼 저희 집은요?”
“나간다는데요?”
서울 집 매수를 도와줬던 일잘알 부동산 사장님이 월요일 아침부터 전화를 했다. 세입자가 나가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등기도 치지 않았지만, 12월이면 우리 집이 될 예정이니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준 셈이었다.
여태까지 늘 세입자의 입장이었던 우리는 부동산이 우리에게 세입자의 상황을 보고하는 순간이 아직도 낯설다.
서울 집은 전세가 낀 갭 매물이었고, 세입자가 이미 전세 계약 갱신 청구권을 써서 2027년까지 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전세를 승계 받아서 실거주가 불가할 것이라 여기고 있었고, 실거주라는 옵션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
“세입자가 당장 2-3개월 뒤에 나갈 거라고 해요.”
서울 집을 계약하는 날, 집을 둘러보며 세입자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젊은 부부였고 똑 부러져 보였다.
싼 가격으로 전세를 들어와 살아서 당연히 연장하며 살 줄 알았지만, 장기적으로는 빨리 매수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나 보다. 그리고 현재 수도권 대부분이 토허제로 묶여 있어, 실거주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했다.
“세입자는 가능한 한 빨리 보증금을 돌려받고 싶어 해서요. 실거주하실 건지, 아니면 새 세입자를 구하실 건지 상의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네 그런데 저희 아직 등기 전인데… 저희가 결정해도 되나요?”
“벌써 중도금까지 내셨고 12월에 등기하실 거니까 괜찮아요. 저도 부동산 오래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그리고 세입자가 촉박하게 알려준 거라, 만약 세를 놓으실 거면 서둘러 올려두는 게 좋아요.”
“네, 이번 주 내로 결정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기 전 사장님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실거주하세요. 이 동네가 좋아서 매수하신 거잖아요? 저는 두 분이 꼭 한 번 살아보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갑자기 선택의 기로에 섰다. 실거주를 할지, 아니면 다시 세입자를 받을지.
당연히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집에서 2년 더 살 거라 생각하고 전세 계약 갱신 청구권을 썼다. 무엇보다 서울 집을 매수할 때 자금 마련을 위해 예금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가족 찬스까지 끌어온 상태였다. 갭 매물을 산 것이었기 때문에, 주택 담보대출을 받는 것은 불가해서 여기저기서 자금을 융통한 것이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세를 놓는 게 당연히 맞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서울에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마음이 설렜다.
서울 집에서 살면 남편과 나는 회사가 무척 가까워진다. 나는 자차로 출퇴근을 하지만, 특히 지하철을 타는 남편은 피로도가 확 줄어들 것이다.
평생 서울 시민으로 살아온 남편은 지하철 빌런을 만날 때마다 고충을 토로했다. 대중교통에서 보내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남편에게 나는 위로해 주면서도, "경기도민은 원래 인생의 20%를 대중교통에서 보내는 것”이라며 씁쓸한 농담으로 답했다.
우리는 서울 시민이 아니라서 최근에 방배나 잠실에 있었던 청약 대어도 모두 넣지 못했었다. 하지만 서울에 거주하게 된다면 더 이상 그런 서러움을 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렘만으로 결정하기엔 현실이 무거웠다.
일단 세입자로부터 받는 전세금이 빠지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대출 금액이 확 늘어나게 된다. 다행히 주택 담보대출을 받으면 금리는 조금 내려갈 수도 있다.
우리는 신용대출은 갚고 대신 주담대를 받는다는 가정하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세입자 들일 시: 신용대출 + 예금담보대출 + 가족 찬스
실거주 시: 주택담보대출 (+ 가족 찬스)
계산해 보니, 실거주를 선택하는 경우 매달 갚아야 할 이자가 100만 원 가까이 증가했다. 게다가 취득세를 12개월로 나눠 내는 계획까지 합하면 1년간은 고정지출이 한 사람 월급을 넘는 수치가 되었다. 당장 이사비 같은 부대비용도 발생할 것이다.
물론 1년만 버티면 대출 상황이 조금 나아지지만, 그 1년 뒤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경기도 월세 집도 계약 만료라 그때 서울 집에 실거주해도 늦지 않는다.
내년부터는 서울 부동산 공급 절벽이 시작되고, 지금도 이미 전월세 시장은 빠르게 매물이 사라지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전세금을 더 높여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거주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우리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결국 서울에 당장 실거주하는 것보다, 새 세입자를 들이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