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요가

심박수 160, 부끄러움부터 회복까지

by 온새미로


이석증 후유증 중 가장 힘들었던 건

하루 종일 이어지는 잔어지러움과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은 브레인포그였다.


책 읽기나 간단한 계산도 버거웠고,

혹시라도 실수할까 봐 금융 업무는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머리가 흐려지니

내가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았고,

5년 전 치매로 돌아가신 아버지도

이렇게 힘드셨겠구나 싶어

울컥할 때도 있었다.


그런 상태로 이 병원 저 병원,

좋다는 방법을 찾아다니며

10개월을 버텼다.


신경안정제를 한 달 정도 복용하며

전정재활에 좋다고 권유받은 운동 중

하나가 요가였다.


동네 요가학원 두 곳에서

무료 수업도 받아봤지만

바닥까지 떨어진 내 몸 상태로는

너무 어렵고 위험해서 포기하려던 찰나,


행정복지센터에

요가 수강생 모집 플래카드를 보게 됐다.


전화해 보니

“딱 한 자리 남았어요”라는 말에

홀린 듯 등록했다.

아마 홈쇼핑 ‘매진 임박’ 멘트와

같은 심리였을 거다.


첫 수업 날 들어가 보니

회원 대부분이 60~70대 여성분들이었고

남자는 딱 나 하나였다.


가장 연장자처럼 보이던 분이

친절하게 맨 앞자리를 권해주셨고,

수업은 30분 댄스, 1시간 요가로 진행됐다.


문제는 그 댄스였다.


트롯과 각설이풍 음악에 맞춰

맨 앞에서 춤을 추려니

민망하고 쪽팔려 죽겠는데,

힘들지도 않은데 워치를 보니

심박수가 160을 넘고 있었다.


깜짝 놀라면서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뻘쭘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쉬는 시간,

민머리에 진한 안경을 쓴

건장한 중년 남성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같은 남자 회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괜히 마음이 놓여

인사를 건넸는데,

외모와 달리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였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아까 맨 앞에서 자리를 챙겨주던

가장 연장자 회원님의 아들이었다.

그날 이후

댄스는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그 공간은 덜 낯설어졌다.


요가는 연세에 맞춘 동작 위주라

힘들지만 따라갈 수는 있었다.


한 달쯤 지나고서야

이 수업 이름이

‘청춘요가’라는 걸 알게 됐다.


회원분들 나이를 생각하면

반어적인 표현이지만,

댄스와 요가를 하며

내 증상도 분명 좋아졌으니


나도 조금은

청춘에 가까워졌을지 모른다.


6개월을 꾸준히 하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다음 학기엔

다시 청춘요가로 돌아갈 생각이다.


회복이라는 게

꼭 젊어지는 건 아닐지라도,

다시 몸을 믿게 되는 일이라면

그것도 충분히

청춘이라고 부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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