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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직선을 긋는 아이, D의 신념

행위 너머의 존재들

by 오이랑


D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것은 그의 필기 노트 때문이었다. 그것은 노트라기보다 차라리 예술 작품에 가까웠다. 모든 글자는 인쇄된 고딕체처럼 완벽한 수직과 수평을 이루었고, 글자의 크기와 간격은 자로 잰 듯 일정했다. 그는 필기를 위해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 펜 외에도 0.1mm 단위로 굵기가 다른 펜들과 여러 크기의 자를 상시 휴대했다. D에게 노트 필기는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니라, 혼돈을 제거하고 완벽한 질서를 구축하는 의식처럼 보였다.


그의 글씨는 각지고 규격화되어 강한 통제 욕구, 논리성, 그리고 원칙주의적 성향을 보여주었다. D는 이 해석의 살아있는 예시였다. 그는 교칙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복장 불량, 지각, 수업 태도 불량 등 교칙에 어긋나는 사소한 행동 하나도 용납하지 않았다. D는 그런 친구들에게 직접 다가가 경고했고, 개선되지 않으면 망설임 없이 교사에게 사실을 알렸다.


그의 이런 태도는 교실에서 끊임없는 긴장을 유발했다. 학생들은 D를 '꼰대' 혹은 '스파이'라 부르며 은근히 따돌렸다. D는 명백히 옳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정서법에서는 '융통성 없는 고자질쟁이'로 낙인찍혔다. D는 점점 더 고립되었고, 고립될수록 그의 글씨는 더욱더 견고하고 빈틈없는 성벽처럼 변해갔다.


결정적인 사건은 2학기 기말고사 직전, 윤리 시간에 일어났다. 요점 정리 쪽지 시험을 보던 중, 한 학생이 책상 서랍 속의 교과서를 몰래 펼쳐보는 것을 D가 목격했다. 시험 종료 종이 울리자마자 D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저기 F가 부정행위를 했습니다." 교실은 순간 얼어붙었고, F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D를 복도로 불러내어 조용히 타일렀다. "D야, 네 말은 알겠다. 하지만 꼭 이렇게 모두 앞에서 말해야 했을까? 조용히 나에게 와서 이야기할 수도 있었잖아." D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대답했다. "원칙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숨어서 말하는 것이야말로 비겁한 일입니다. 저는 제가 배운 대로 정의롭게 행동했을 뿐입니다."


D의 말에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내가 가르친 칸트의 정언명령을 D는 자신의 삶에서 문자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원칙의 중요성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그 원칙이 현실에서 일으키는 마찰을 외면하라고 D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D의 굳건한 신념은 존경스러웠지만, 그 신념에는 타인의 연약함을 헤아리는 따뜻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의 완벽한 노트에는 여백이 없었고, 그의 원칙에는 예외가 없었다.


D를 보며 윤리 교사로서의 딜레마에 빠졌다. 규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윤리적 실천인가? 아니면 상황과 관계를 고려하는 공감 능력이 더 우선되어야 하는가? D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원칙을 적용할 때 필요한 '인간적인 온도'를 깨닫는 것이었다.


D의 꼿꼿한 글씨를 보며, 나는 원칙을 가르치는 일보다 공감을 가르치는 일이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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