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너머의 존재들
올해 수업을 맡은 학급의 C는 글씨만 봐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아이다.
C의 글씨는 유난히 둥글다. 단순히 둥근 것을 넘어, 모든 획이 뾰족함을 피하려는 듯 의식적으로 곡선을 그렸다. 특히 'ㅇ', 'ㅎ' 같은 동그라미는 다른 자음보다 한두 단계 크게 그려지며, 'ㅁ', 'ㅂ', 'ㅍ'의 모서리 역시 각지지 않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된다. 글자 간의 간격은 넓고 일정하며, 줄도 비뚤어지지 않는다. 마치 잘 디자인된 어린이용 그림책의 글꼴을 보는 듯하다.
이 글씨체는 에너지가 넘치고 경쟁이 치열한 남학교 교실에서는 상당히 눈에 띄는 존재다. 앞서 언급한듯한데, 어떤 학생들은 "글씨가 예쁘면 남자답지 못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일부러 글씨를 거칠게 망가뜨리기도 한다. C의 주변에는 거친 욕설과 함께 글씨를 갈겨쓰는 '싸인족' 친구들이 많았지만, C는 그런 분위기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둥근 서체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그 뚝심이 기특하고 독보적이다.
글씨의 형태가 성격과 관계 맺는 방식을 반영한다는 통속적인 심리학 이론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C의 학교생활은 그의 글씨를 그대로 빼닮았다.
C는 학급의 '인간 접착제'이자 '갈등 완충재'다. 한번은 조별 과제 준비로 교실 분위기가 험악해진 적이 있었다. 자료 조사를 제대로 해오지 않은 친구에게 다른 친구들이 날 선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너 때문에 우리 조 점수 다 깎이면 책임질 거냐?" 뾰족한 말들이 오가며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듯한 분위기에서 C가 나섰다.
C는 비난하는 쪽의 어깨를 툭 치며 "야, 근데 어제 축구 봤냐? 걔가 어제 축구 보느라 밤새워서 그런가 보지"라며 엉뚱한 화제를 던졌다. 그리고는 과제를 못 해온 친구에게 "너 다음 주까지 두 배로 해 올 거지? 대신 우리가 이 부분은 도와줄게"라며 자연스럽게 역할을 재분배했다. C는 날카로운 직선의 대립을 둥근 곡선으로 감싸 안아 부드럽게 해결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둥근 글씨는 모난 관계를 둥글게 만들고자 하는 그의 내면적 태도의 발현이었다.
이 다정함은 C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윤리 교사의 눈으로 볼 때는 때때로 고민스러운 지점이 되기도 한다.
C는 갈등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너무 강한 나머지, 명백한 불의나 부조리 앞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한다. 토론 시간에 '소수의견 보호'와 '다수의 효율성'이 충돌하는 주제가 나오면, C는 양쪽의 입장을 모두 옹호하며 명확한 결론 내리기를 피하곤 한다. 그의 글은 대체로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이라는 식으로 여지를 남긴다.
나의 교육의 목표 중 하나는 학생들이 자신만의 확고한 윤리적 입장을 정립하도록 돕는 것이다. 여기에는 때로 타인과의 불편한 마찰을 감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C를 보며 나는 교사로서의 균형점을 고민한다.
C의 둥근 성품과 공감 능력을 '결단력 부족'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 자체로 C가 가진 강력한 힘이다. 나의 역할은 그 힘을 존중하되, 그가 자신의 둥근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때로는 날카로운 직선을 그어야 할 순간이 온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다정함이 나약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그의 둥근 글씨체 속에 단단한 심지를 심어주는 일. 그것이 C의 윤리교사로서 나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