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가 저희 집돼지입니다.

by 김재호


"이 아이는 저희 집 '가돈'입니다."


사전에서 예시로 들어준 문장입니다. '가돈'이라... 제 나이 마흔 중후반('중'이라는 글자를 꼭 붙이고 싶습니다.)인데 아버지나 집안 어른은 물론이고, 사극이나 노인분들이 패널로 나오는 방송에서도 접해본 적이 없는 듯하네요.(몇몇 분들은 '한돈'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소한 단어와 다르게 '가돈'이라는 한자말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집 가(家)’ 그리고 ‘돼지 돈(豚)’.


결국 저 문장의 뜻은 “이 아이가 저희 집에서 키우는 돼지입니다.” 가 됩니다. 그런데 활자 그대로 진짜 돼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아이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런 겸손이 왜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이 앞서 들지만 저도 딸에게 가끔 "이리 와~우리 아기 돼지" 혹은 "잘 잤어? 우리 강아지~"라고 부르고 있네요.


그러고 보니 제가 어릴 때 착한 일을 하거나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올 때면 어머니께서 저를 '똥강아지'라고 부르며 칭찬해 주셨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개나 돼지로 부르는 일이 정겹고 즐겁게 느껴지는가 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들에게 소개를 할 때마저도 동물에 비유하는 경우는 조금 선을 넘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개나 돼지 같은 가축이 욕이 아닌 다른 표현으로 쓰이는 경우는 드문 것 같네요. 사실 동물들이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말 못 하는 녀석들을 그렇게 이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동서양 모두 일관적으로) 아마도 비속어 등에서 쓰이는 동물은 주인 없이 길이나 들에서 어슬렁거리는 경우를 두고 만들어졌겠죠?


집에서 키우는 동물들을 여러 가지 이유로 아꼈듯이,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소중하고 친근함의 표현을 하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을 듯합니다.


그리고 의료시설이 거의 전무하고 먹고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던 시절, 어린아이들이 잦은 병치레를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아서 이름 대신 개똥이나 소똥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를 본 적 있습니다. 병을 옮기는 못된 귀신이 개똥이나 소똥처럼 보잘것없는 이름으로 불리는 아이들에게는 잘 들러붙지 않는다는 속설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일종의 미신이겠지만 그때의 시대상황을 짐작해 보면 그럴 만했겠습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닭이나 말과 연관해서 아이를 부르는 호칭은 없어 보입니다. 개나 돼지보다 키우는 집이 드물어서 그랬던지 아니면 '다루기 힘든' 동물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오늘도 저희 집 똥강아지는 3차 사춘기(도대체 몇 차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에 접어드는지 해야 하는 숙제는 안 하고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참견과 불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이 아이가 저희 집 가돈(家豚)이고 가견(家犬)이니 예뻐해 줘야죠. 아빠 돼지가 되거나 아빠 개가 되어야 하는 일은 생기지 않게 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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