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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Apr 29. 2022

선택

  지구에서 평화가 사라진 지 어느덧 3년 가까이 되었다. 그 간의 전쟁으로 인해 인류의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고 남은 절반도 부상과 질병으로 온전치 못하다. 각국 주요 인사들과 권력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뜻에서 대부분 암살당하거나 처형당했다.      

  

  발단은 유럽의 과거 영광 찾기였다. 세계의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간 것에 대한 불만과 신흥 세력으로 부상한 아시아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 두 곳 모두 유럽의 식민지였거나 유럽인들이 정착하며 일궈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똘똘 뭉친 유럽인들은 다른 국가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도발과 침략을 감행했다.     


  전쟁은 전 지구적으로 퍼져나갔고 러시아와 일본을 포함한 몇몇 국가들은 유럽 연합국에 스스로 흡수되고자 했다. 양 측은 물러날 곳이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고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싸움은 군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경제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고 기아와 질병이 모든 곳으로 파고들었다. 다민족 국가는 스스로 파멸의 길로 들어갔으며, 인간성을 포기한 행태들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실로 인류 최악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리더의 부재 속에서 이제는 전쟁을 멈추자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지만 누구 하나 선뜻 정리하고자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평화주의자나 비폭력주의자들 역시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당장 먹을 것이 없어지자 더 이상 이념과 신념만으로는 버티지 못했다.     


  결국 핵무기 사용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어느 곳에서든 한 발이 출발하면 동시 다발적으로 수백수천의 핵탄두들이 대륙 사이를 날아들 것이 뻔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법이 아니면 이제는 이 전쟁을 제대로 끝냈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살아남을 사람들은 살아남아서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이대로 가면 모두가 죽는다.     


  나는 작은 방 안 책상 앞에 서 있다. 

맡은 임무는 단순하다. 제시간에 빨간 버튼을 누르는 것. 그 행위가 가져다 올 수많은 가슴 아픈 사연들은 내 몫이 아니다. 그렇다고 전쟁을 끝낸,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영웅으로 남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나는 명령을 받았고 그것을 이행할 뿐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나 역시 전쟁으로 인해 내 목숨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었다. 그렇다고 복수의 감정 따위는 절대 아니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그저 나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12시. 내 상사는 12시까지 자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무조건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허용된 오차 범위는 뒤로 1분. 따라서 12시 정각에서 12시 1분 사이에 반드시 저 버튼을 눌러야 한다. 혹시 그전에 상사가 돌아와 상황이 바뀌었다고 하면 버튼을 해제시키고 복귀하면 된다.      


  앞으로 30분 정도가 지나면 나는 내 임무를 마치고 겸허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분명 내 머리 위로 혹은 내 옆에도 핵이 떨어질 것이다. 피할 수 없다. 그저 나는 숭고한 마음으로 내 임무를 완벽하게 해내고 떠나면 된다. 일말의 후회나 원망은 없다. 내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는 나도 정확하게는 모른다. 하지만 참혹한 시간이 계속해서 이어지거나,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쩌면 12시가 되기 전에 이곳이 먼저 터져버릴 수도 있다. 제발 그때까지 살아남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11시 56분. 버튼 앞에 놓인 컴퓨터 화면의 시계가 3분이 남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괜히 건드렸다가 세팅에 문제가 생길까 봐 초 단위까지 나오도록 변경하지는 않았다. 그저 12시가 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마지막으로 가족의 얼굴을 보고 싶어 휴대전화를 꺼냈다. 11시 55분?     


  이상하다. 휴대전화와 컴퓨터의 시간이 서로 다르다. 고개를 들어 방안에 걸려있는 아날로그 벽시계를 쳐다본다. 11시 59분!      


  세 개의 시간이 모두 다르다. 그때 벽시계가 12시 정각이 되었다. 급하게 손목에 찬 군용 전자시계를 확인했다. 11시 58분.     


  시간이 없다. 어느 것을 기준으로 버튼을 눌러야 할지 혼자서 당장 결정해야 한다. 

  컴퓨터휴대전화아날로그군용?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상사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버튼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이 벌벌 떨린다.



<작가의 꿈보다 해몽>

선택의 기저에는 믿음이 존재합니다. 내 판단이 옳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죠.

그런 믿음은 교육, 종교, 과학 기술, 데이터, 경험, 책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더욱 확고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번 굳어진 믿음은 깨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번 글과 같은 경우가 독자님께도 생긴다면 어떤 선택을 하실 것 같나요? 그리고 그 시계를 택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군용 시계에 맞춰서 버튼을 누를 것 같습니다. 많은 과학 기술이 군사적 목적에서 비롯되었으며, 예전에 회사에서 했던 업무를 떠올려보면 군용 스펙이 가장 맞추기 어려웠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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