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을 모시고 식사 자리를 갖는 날이면 으레 매번 듣는 말이 있다.
“네 아버지가 입은 옷이며 신발이며 전부 너희들이 사준 거야. 평소에는 그렇게 입으라고 해도 아낀다고 안 입다가 이런 날에는 알아서 챙긴다니까.”
그럼 또 나와 아내는 어머니의 말씀을 거든다. 자꾸 입으셔야 또 사드리지 않겠냐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아이가 결정타를 날린다.
“할아버지. 아끼면 나중에 똥 된데요.”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되면 식사가 시작되곤 한다.
어제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후다닥 후다닥 바삐 움직였다. 식탁 위에 시간 맞춰 저녁을 차려놨기에 연거푸 불렀으나 곧 오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살짝 화가 올라왔지만 그러려니 하고 기다렸더니 양손에 종이 가방을 들고 나왔다.
“이건 아빠 거. 이건 엄마 거.”
순간 예상은 했지만 짐짓 모르는 척 이게 뭐냐고 물어보며 종이 가방 속 내용물을 확인했다. ‘감사패'는 매년 학교에서 만들어 왔으니 그러려니 하면서 '영혼이 많이 실리지 않은 리액션'을 하고 말려고 했는데, 약간 묵직한 봉투가 하나 더 있었다.
올해부터 일주일치 용돈을 받기 시작한 아이가 그 돈을 모아서 샤프 선물을 해 준 것이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브랜드이기도 했고, 여기저기 메모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평소에 관심이 있던 샤프였다.
쥐었을 때 느낌도 좋고, 무게감도 살짝 있으면서, 노브(Knob)를 누를 때 들리는 경쾌한 소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영혼이 실린 리액션'이 밥상머리에서 펼쳐졌다. 아이도 달라진 내 표정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그건 뭐........
그런데 오늘 아침, 막상 쓰려니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샤프도 있는데 괜히 뾰족한 물건에 긁히거나, 떨어뜨려서 고장이라도 날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자식이 준 선물에 대한 애착과 고마움이 혹여 부서지거나 상하지 않도록 고이 간직하려는 그 마음 말이다.
지금도 샤프를 만지작거리면서 써야 할지 아니면 필통에 거의 모셔둘지 고민 중이다. 아마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께 했던 말을 나한테도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