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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y 09. 2023

영혼이 실렸던 리액션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 자리를 갖는 날이면 으레 매번 듣는 말이 있다.


  “네 아버지가 입은 옷이며 신발이며 전부 너희들이 사준 거야. 평소에는 그렇게 입으라고 해도 아낀다고 안 입다가 이런 날에는 알아서 챙긴다니까.”


  그럼 또 나와 아내는 어머니의 말씀을 거든다. 자꾸 입으셔야 또 사드리지 않겠냐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아이가 결정타를 날린다.


  “할아버지. 아끼면 나중에 똥 된데요.”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되면 식사가 시작되곤 한다.


출처 : Pixabay


  어제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가 후다닥 후다닥 바삐 움직였다. 식탁 위에 시간 맞춰 저녁을 차려놨기에 연거푸 불렀으나 곧 오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다. 살짝 화가 올라왔지만 그러려니 하고 기다렸더니 양손에 종이 가방을 들고 나왔다.


  “이건 아빠 거. 이건 엄마 거.”


  순간 예상은 했지만 짐짓 모르는 척 이게 뭐냐고 물어보며 종이 가방 속 내용물을 확인했다. ‘감사패'는 매년 학교에서 만들어 왔으니 그러려니 하면서 '영혼이 많이 실리지 않은 리액션'을 하고 말려고 했는데, 약간 묵직한 봉투가 하나 더 있었다.


아이에게 받은 선물 (출처 : 김재호)


  올해부터 일주일치 용돈을 받기 시작한 아이가 그 돈을 모아서 샤프 선물을 해 준 것이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브랜드이기도 했고, 여기저기 메모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평소에 관심이 있던 샤프였다.


  쥐었을 때 느낌도 좋고, 무게감도 살짝 있으면서, 노브(Knob)를 누를 때 들리는 경쾌한 소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영혼이 실린 리액션'이 밥상머리에서 펼쳐졌다. 아이도 달라진 내 표정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그건 뭐........


쓰던 것과 아이의 선물 (출처 : 김재호)


  그런데 오늘 아침, 막상 쓰려니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샤프도 있는데 괜히 뾰족한 물건에 긁히거나, 떨어뜨려서 고장이라도 날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자식이 준 선물에 대한 애착과 고마움이 혹여 부서지거나 상하지 않도록 고이 간직하려는 그 마음 말이다.


  지금도 샤프를 만지작거리면서 써야 할지 아니면 필통에 거의 모셔둘지 고민 중이다. 아마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께 했던 말을 나한테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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