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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Aug 13. 2023

아내가 없어서 두 배로 흘린 눈물

  보급품이 도착했습니다. 몇 차인 지는 모르겠습니다. 대략 6,7차 정도 되려나요? (보급품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시다면 아래 글을 참고하세요~)


https://brunch.co.kr/@530fadf1678b488/622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릅니다. 생산자께서 산지에서 직배송을 오셨습니다. 부모님께서 오전에 텃밭에 가셨다가 저희 가족이 먹을 야채를 뽑아서 직접 주시고 가셨거든요.


  장바구니 안에 부추, 깻잎, 대파, 쪽파, 고추, 가지가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당근만 남아있던 터라 반갑게 받았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첫째, 산지에서 바로 온 녀석들이라서 흙도 묻어있고, 많은 손길을 요하는 상태입니다. 매번 어머니께서 1차 손질을 해서 주신 관계로 비교적 편하게 먹을 수 있었죠. 냉장고에 그냥 넣어두고 싶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씩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등장합니다. 대학 동기들을 만나기 위해 아내가 아침 일찍 집을 나갔습니다. 둘이서 하던 일을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불어난 일을 혼자서 해결해야 합니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신나게 놀고 왔는데 집안일이 쌓여있으면 즐거웠던 기분이 얼마 가지 못하겠죠. 그리고 벌레가 나오면 기겁을 하기 때문에 어차피 손질은 제 몫입니다.


  제일 먼저 부추를 다듬고, 씻고, 먹기 좋게 잘라서 통에 넣어둡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할 만했습니다.


  깻잎부터 슬슬 허리와 어깨가 아파옵니다. 위쪽 줄기를 통째로 잘라서 주셨고, 농약을 치지 않으셨기에 벌레 먹은 잎들이 많아서 선별 작업에 장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게 간신히 깻잎을 마무리하면서 쌈을 싸서 먹을 때 넣을 마늘도 다듬고 씻어서 함께 보관하기로 합니다.


  고추는 부피를 줄이기 위해 꼭지를 조심스럽게 따내고, 벌레 먹은 것들은 버려가면서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이제 대망의 대파입니다. 다듬고, 씻고, 자르고, 분류합니다. 하얀 부분과 녹색 부분은 따로 있어야 요리할 때 편하더라고요. 써는 양이 늘어갈수록 흐르는 눈물의 양도 함께 많아집니다. 아내와 나눠서 흘리던 눈물을 오롯이 저 혼자 흘리고 있자니 뭔가 씁쓸합니다. 그렇게 계속 훌쩍이며 열심히 썰고 있는데 딸이 숙제를 하다가 나와서는 잠시 저를 쳐다보더니 그냥 들어가더군요. 아빠가 진짜로 우는 줄 알았나 봅니다. 그나저나 아빠가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봤으면 도와주지는 못해도 응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니?ㅎㅎ


  쪽파는 그나마 수월합니다. 절반은 잘라서 두고 나머지 반은 파전을 만들어 먹을 요량으로 따로 다듬어 두었습니다. 


  지퍼백에 담긴 대파와 쪽파는 사진 촬영을 마치고 냉동실로 직행했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으면 되니까요. 가지는 나중에 잘라서 구워 먹으면 되니까 그냥 냉장고에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지를 옮겨 담는 과정에서 엄지 손가락을 찔리고 말았네요. 제일 간단한 일이었는데 아직도 찔린 자국이 남아있습니다.


아... 힘들었다. (출처 : 김재호)


  사용했던 칼과 도마까지 정리하고 났더니 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순삭 되었습니다. 허리는 두 동강이 날 듯 아프고, 눈은 여전히 따갑고, 손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나지만 뿌듯하군요. 한 동안 먹을 야채가 두둑하니 든든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음식물 쓰레기가 거의 2리터 가까이 나왔습니다. 이것까지 버리고 와야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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