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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Nov 24. 2023

일회용 날개

재호는 날고 싶었어.

새를 비롯해서 하늘을 날 수 있는 모든 존재에 경외심을 가지고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공상에 빠지기 일쑤였지.  하지만 갖은 방법을 써봐도 스스로의 힘으로 날아오르는 일은 불가능했어. 양팔로 파닥파닥, 그리 높지 않은 곳에서 뛰어내리며 잠시나마 흉내 내보는 게 전부였지. 대지를 힘껏 밀어내며 날아올라 바람을 타고 창공을 떠다니는 느낌은 과연 어떨까? 눈을 감고 아무리 상상해 봐도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감각이었어.


재호는 포기하지 않았어.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날기 위함이라 여겼지. 파리나 모기로 태어나지 못한 현실은 신의 실수라고 믿었어. 혹시 등에 날개가 돋아나지는 않았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 계절이 바뀌면 나무가 열매를 맺거나 잎의 색이 바뀌는 것처럼 본인도 특이한 능력이 갑자기 발현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고. 지독한 간절함에 휩쓸리는 날에는 끔찍한 생각도 했어. 누군가의 날개를 훔칠까 하는.


재호는 매일 꿈을 구웠어.

하늘을 날며 세상을 누비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며 제발 꿈에서 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곤 했지. 하지만 언제까지 꿈속에서만 살 순 없었어. 눈을 뜨면 배가 고팠고, 목이 말랐고, 익숙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밤이면 밤마다 이불 밖으로 뛰쳐나갈 듯 콩닥거리는 심장은 어쩔 수 없었지.


재호는 깜짝 놀랐어.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마침내 하늘이 응답을 한 거야. '간절한 너의 마음이 나에게 닿았구나. 그래서 날개를 선물해주려 한다. 다만 이 날개는 일회용이란다. 일단 네 몸에 붙였다가 언제든 떼어내면 그 즉시 사라지게 된단다. 그리고 꼭 명심할 것이 하나 더 있단다. 앞으로는 영영 날지 못하게 될 거야. 날고자 하는 꿈을 영원히 버려야 한단다. 알겠지?'


재호는 기뻤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드디어 왔으니까. 윗 옷을 벗고 하얗고 커다란 날개를 하나씩 등에 붙였지. 그러자 마치 원래 몸에 달려있던 날개인 양 꼭 들어맞더니 곧 감각이 살아났어. 처음에는 고작 어설픈 날갯짓이었지만 어느덧 힘이 붙기 시작했어. 육신의 무게를 들어 올리자 영혼도 함께 떠올랐어.


재호는 조심했어.

미궁에서 탈출했던 이카루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태양 가까이는 절대로 가지 않았어. 오히려 밤을 찾아다녔지. 별을 향해 쏜살같이 내달리다가 달의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에 다이빙하듯 비행을 즐겼지. 이 세상에 오직 본인만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황홀했어.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했어. '과연 이게 진정한 내 삶일까?' 그런 고민과 함께 허기와 졸음이 밀려왔어. 작지만 아늑한 집이 그리웠지.


재호는 결심했어.

꿈을 이뤘으니.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기로. 막상 날개를 떼어내려고 하니 너무나 아까웠어. 하지만 자신은  땅에서 지내야 한다는 숙명을 계속 부정할 수는 없었지. 몸에서 분리된 날개는 바로 바스러지며 사라졌어. 그리고 재호는 그간 쌓인 여독으로 인해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 


재호는 잠에서 깨며 기지개를 켰어.

얼마나 잤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고 온몸은 구석구석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지. 혹시나 하는 기대와 함께 등을 만져보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어. '그래, 이제 미련을 버리자.' 시원한 물을 한 잔 마시고 거울에 선 재호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어. 거울 속에 날개가 없는 나비가 서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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