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합니다. 저도 엄연한 피해자입니다."
"피해자라고요? 당신은 절도, 협박, 사기, 강간, 노동착취 등의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입니다. 저기 저 피해자의 모습을 한 번 보십시오. 그리고 모니터 화면에 있는 사진도 함께 보시길 바랍니다."
청중들이 번갈아 두 얼굴을 보면서 의아해한다.
"여러분. 저 두 얼굴이 한 사람의 얼굴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어떻습니까? 고작 5년 사이에 피해자의 얼굴이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얼굴뿐만이 아닙니다. 육아와 가사노동으로 인해 멀쩡한 관절이 없고,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 때문에 체중이 무려 35kg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이게 다 저 남자의 몹쓸 짓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진실을 밝힐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피고는 더 할 말이 있습니까?"
판사의 질문에 남자의 눈빛이 흔들린다. 모든 사실을 인정하면 감형을 해주겠다고 한 검사 측의 제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저울질하는 중이었다.
"네. 모든 사실을 인정하겠습니다. 저는 아내의 옷을 훔쳤습니다. 그걸 빌미로 결혼을 강요했고, 잠자리를 거부하는 아내를 강제로 추행하여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양육과 집안일을 전부 아내에게 밀어놓고 저는 밖으로 나돌았습니다."
"판사님.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검사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남자가 당황했다.
"피고는 자녀가 3명이 되자 원고에게 옷을 돌려주며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검사를 노려보는 남자의 눈에 분노가 일렁인다. 어찌나 이를 강하게 물었는지 턱이 부들부들 떨린다.
"말 못 하겠죠? 제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저 역시도 부끄러워서 입을 다물 것 같네요. 피고는 고생하는 아내를 두고 다시 산으로 갔습니다. 나무를 한다는 핑계로 말이죠."
"그게 제 직업입니다!"
남자가 독기 가득한 악다구니를 썼다.
"그래서 나무를 했다는 겁니까? 아니지 않습니까? 다른 선녀들이 목욕하는 것을 몰래 숨어서 보다가 다시 옷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모처에 감금되었던 두 명의 선녀가 구조되어 지금 병원에서 회복 중입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남자에게 판사가 물었다.
"검사의 말이 사실입니까?"
남자 옆에 있던 변호사도 처음 듣는 말이었는지 딱히 도와주지 않는다.
"맞습니다. 하지만 저도 피해자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5년 전, 저는 나무를 하다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 사슴은 은혜를 갚겠다며 저에게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하는 장소를 귀띔해 주더군요. 그러더니 선녀의 날개옷을 훔치면 결혼을 할 수 있다고 꼬드겼습니다. 순진했던 저는 녀석을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멍청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저는 사슴에게 베푼 선의로 인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발 선처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검사가 말했다.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군요.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말입니다. 그 날 만났던 사냥꾼이 이런 제보를 했습니다. 나무꾼이 알려준 곳으로 급히 달려갔지만 결국 사슴을 찾지 못하자 다시 돌아와서 솔직히 말해달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사슴 고기의 절반을 요구하면서 사슴이 달아난 곳을 알려주었다더군요. 방심하고 있던 사슴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판사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 금일(11/22) 오전에 발행한 글을 연재 브런치북으로 옮기다 보니 부득이하게 재발행이 되었습니다. 같은 글을 두 번 노출시킨 점 너그러이 양해부탁드리며 댓글을 달아주셨던 두 분께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