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어디서 났습니까?"
"그게........"
"솔직히 말씀하세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그리고 검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그것의 출처를 명확하게 밝히란 말입니다."
"사실은 강남에 있는 나이트에서 암거래상을 통해 구했습니다."
"강남? 피고는 주로 강남에서 생활하죠?"
"네. 맞습니다."
"강남에서 그 물건이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겠네요?"
"네."
장내가 술렁인다. 몇몇은 역시 강남이라며 뭔가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재판장님. 피고는 그 물건이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은혜를 갚는답시고 흥부에게 전달했습니다. 피고! 만약 그 안에서 금은보화가 아니라 유독물질이나 바이러스 등이 나왔으면 어떻게 할 작정이었습니까? 그리고 불법 유통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고 있습니까?"
"저는 그저 제 다리를 고쳐주셨기 때문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발 저의 선의를 믿어 주십시오."
"아, 그렇단 말이죠. 그런데 피고에게 전과 기록이 있더군요. 직접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제비에게 쏠렸다.
"재판장님. 지금 검사 측에서는 본 사건과 무관한 과거 기록으로 피고를 매도하고 있습니다. 당장 저 질문을 철회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각합니다. 둘 사이의 연관성이나 인과관계 여부는 재판부가 별도로 판단하겠습니다. 계속하세요."
재판장은 변호사의 요청을 가급적 부드럽게 거절했다.
"피고가 직접 이야기하기 껄끄럽다면 제가 대신 말씀드리죠. 10년 전에 강남에 거주하는 유부녀들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벌여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최근에는 비행 중에 다리를 다쳤다며 보험회사를 상대로 여러 차례 보험금을 편취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맞죠?"
"네. 뭐......"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흥부의 자녀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소문을 통해서 듣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제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왜 아닙니까? 당신이 그 박 씨를 가져다주지만 않았다면 그 아이들이 그런 길로 빠지지 않았음이 확실합니다. 여러분 화면 속 저 아이들을 한 번 보십시오. 첫째는 마약과 술에 찌들어 살고 있으며, 둘째는 도박에 빠졌고, 제일 건강하던 셋째는 고도비만과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나머지 아이들도 비교적 성실하게 살던 중이었음에도 갑작스럽게 부자가 되자 공부를 등한시하고 그저 돈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흥부 집안의 자랑이었던 성실과 근면은 이제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힌 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그 많던 재산을 단기간에 탕진하고 지금은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의 사채 빚을 졌다고 합니다."
"억울합니다. 부자로 만들어 준 것이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혹시 흥부가 피고의 다리를 고쳐주면서 금품을 요구했나요?"
"그건 아니지만......."
"흥부는 피고에게 무엇을 바란 적이 없습니다. 그저 착한 일을 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며 무언가 느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그게 진정한 선행 아닐까요? 말이 나온 김에 흥부의 형인 놀부에게 저지른 만행도 짚고 넘어가야겠군요. 놀부는 당신의 다리를 고의적으로 부러뜨리고 다시 고쳐주었죠?"
"네. 맞습니다. 흥부에게 주었던 그 박씨를 노리고 저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더군요."
"자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바로 여기입니다. 놀부는 그래도 병을 주고 '약'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피고는 어떻게 했죠? 병만 주고 나 몰라라 했죠? 덕분에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놀부는 큰 병을 얻었고, 그의 자식들은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렸습니다. 한 집안을 풍비박산 낸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 유전자 조작 박씨도 역시 강남 나이트에서 구했나요?"
"네. 맞습니다."
"피고는 동료 제비들 사이에서 인기가 제법 많죠?"
"그런 편입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야 인간들이 다른 야생동물이 다친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만 제비를 보면 잘 치료해 주게 되었으니까요."
"내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받게 될 거라는 소문이 돌던데 무명의 제비가 정치판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결국은 흥부와 놀부를 이용한 결과가 아닌가 예상되는군요."
"재판장님. 검사 측은 지금 억측을 기반으로 한 끼워 맞추기식 심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검사 측은 근거 없는 발언은 자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재판을 지켜보시는 많은 국민들께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피고로 인해 몰락해 버린 피해자들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흥부와 놀부는 더 이상 형제 관계가 아닙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었던 문제를 피고가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요. 그들이 겪게 된 불행의 원인을 둘 다 본인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피고가 가져다준 출처가 불명확한 불법 박씨로 인해 각자의 집안을 건사할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리고 감히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인간의 본성을 뒤에서 조종하려는 거대한 세력이 피고 뒤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상상말입니다. 모쪼록 재판장님의 사려 깊은 판결을 기대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