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면허

by 김재호

17년을 감옥에 갇혀 살았다. '살았다'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그 안에서의 생활은 지옥 자체였다. 어린 학생을 잔혹하게 살해했다는 혐의로 형을 살게 된 나는 재소자 사이에서도 쓰레기로 취급받았고 교도관의 묵인하에 끔찍한 일이 매일 밤낮 할 것 없이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억울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먹지도 못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처한 처지에 그저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죽음에 이르면 그때는 신이 나의 진실을 알아주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가족과 친구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나를 인간의 탈을 쓴 악마로 기억하게 될 것이 뻔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의미한 삶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누명을 쓰게 된 것처럼 또 어느 순간 느닷없이 나의 무고함이 우연히 밝혀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실낱같이 품고 있던 희망마저 사그라들 때쯤 진범이 검거되었고, 나는 그간의 시간과 고통과 분노를 가슴에 담은 채 세상으로 돌아갔다. 보상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돈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을 벌써 잃었고, 사람의 노력으로 복구할 수 없는 것들이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나를 가뒀던 그들은 이제 내 등을 떠밀며 밖으로 내몰았다. 교도소를 나가기 전날 몇몇은 나를 찾아와 사과를 했지만 그들을 편하게 만들어 줄 마음은 없었다.


내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자 오히려 조급해진 것은 주고자 하는 쪽이었다. 언론도 내 편이었다. 그들이 떠들면 대부분 진실이라 믿는다. 믿음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기 마련이니 마냥 그들 탓을 할 수는 없다. 결국 커져가는 압박감 속에서 정부에서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살인 면허.


기력은 이미 쇠했지만 정신력만큼은 젊을 때보다 강한 상태를 유지했다. 나에게 주어진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내 남은 인생의 목표였고 내가 숨 쉬는 이유였다. 운전면허와 마찬가지로 내가 가진 면허를 제대로 이행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조건이 붙었기 때문에 심신 미약 상태가 되거나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면허를 '취득'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공공연하게 내가 가진 특별한 '잠재력'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고 혹시라도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애초에 나와 함께 있는 자리를 피하곤 했다. 딱 한 번이지만 정체를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거액을 제시하며 누군가를 죽여줄 수 있는지 문의를 한 적도 있다.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그냥 무시했다.


그녀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갑자기 비가 추적추적 내린 오후 시간이었다. 비를 피해 들어간 작은 카페에 그녀만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내가 들어가자 힐끔 쳐다보며 노골적으로 관심을 갖더니 마시던 찻잔을 들고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예비 살인자 K 씨 맞죠?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나를 스토킹 했다.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 불쑥 내 앞에 나타나 나를 괴롭히기 일쑤였다. 이유를 물었지만 해맑게 웃으며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필요로 하던 물건이나 의견을 내밀었다. 그 표정과 행동이 진저리 치게 무서워 감옥에 들어간 첫날과 비슷한 공포감이 솟구쳐 올라 몸이 덜덜 떨렸다.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결정의 순간이다. 그녀의 목숨과 내 면허를 교환할. 방법은 정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어차피 동일하다. 그간의 고통을 곱씹어보면 선택지를 주며 놀리고 싶지만 가볍지 않게 처리하고 싶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순간이기에 진중함을 유지하면서 차분하게 마무리할 계획이다.


품속에 칼을 숨기고 그녀를 처음 만난 카페에 들어섰다.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우쭐했다. 후회나 죄책감이 들까 봐 걱정이 되긴 하지만 긴 여행동안 짊어졌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 살짝 기대도 되었다. 그녀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데 등 뒤에서 경험하지 못한 통증이 밀려들어왔다.


'헉!'


유일하게 내뱉을 수 있는 소리였다. 얼마나 날카로운지 얼마나 힘이 좋은지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관통한 칼 끝을 보며 비현실로 도망가려는 의식을 현실에 잡아두는 일에 집중했다. 그때 아련하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때? 살인자가 되기 전에 내가 멈춰줬는데 얼마나 고마운가? 누명에 대한 보상으로 살인 면허를 받고 어땠어? 누군가를 죽일 수 있게 되니까 설렜나?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거야. 그냥 더러운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여.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외우라고. 그럼 다음 생에 연이 되면 또 보도록 하고 이제 그만 편하게 떠나."


그녀는 피가 묻는 장갑을 벗더니 의자 위에 있던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뭐야? 아직 숨이 붙어 있네? 내 이야기를 좀 해줄까? 나는 연쇄살인범으로 몰려서 35년을 감옥에서 살았지. 그리고 내가 범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고 두 장의 살인 면허를 받았어. 이제 그 마지막 면허를 너에게 쓰는 중이고. 내가 너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맞지? 그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거 같은데. 처음부터 말했잖아. 뭘 들었어? 살인을 하려는 사람은 살인자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런 굴레를 쓰는 사람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겠지. 나도 사랑에 빠진 사람을 내 손으로 이렇게 만드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아. 안녕.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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