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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빛의 속도, 모든 것을 바꾸다

1. 과학, 흔들리는 진리를 따라

by 홍종원

카페의 문이 조용히 열리고, 익숙한 종소리가 울렸다.
커피 향이 은은히 퍼지는 공간.
그 한편에 최 교수도 도착해 앉아 있었다.


잠시 인사를 나눈 후,
수현은 노트북을 펴다 말고 덮으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 어젯밤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게 수식으로 설명된다고들 하잖아요.
근데... 정말 그런 걸까요?"


최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이에요. 과학은 언제나 그런 질문에서 시작하죠."


그는 커피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한때 과학은 정말 모든 걸 수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특히 뉴턴 이후에는 더욱 그랬죠.
세상을 마치 거대한 시계처럼,
모든 움직임이 예측 가능하고,
시간과 공간은 변하지 않는 기준틀이라고 여겼어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런데 그런 세계관에 처음 의문을 던진 사람이... 아인슈타인인 거죠?"


"맞아요.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는 단지 새로운 공식을 만든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꿨다는 데 있어요.
그가 없었다면,
우린 지금도 세상을 정밀한 시계장치처럼만 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 계기가... 빛이었죠?"


"그렇죠.
모든 건 빛에서 시작됐어요.
빛은 상식을 깨는 특성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그 성질이 기존의 뉴턴 물리학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았죠."


일반적으로 우리는 '속도'란 상대적인 것이라고 배운다.
내가 멈춰 있고 자동차가 시속 100km로 지나가면,
그 차는 나에게 100km/h로 느껴진다.
그런데 내가 시속 50km로 달리고 있다면?
그 차는 내게 50km/h로만 보인다.
이건 '운동은 관측자에 따라 달라 보인다'는 고전 물리학의 기본 원리다.


이미 17세기 초 갈릴레이는,
닫힌 방 안에서 실험을 한다면
그 방이 멈춰 있는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지 구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생각은 훗날 뉴턴에게 이어져
'모든 물리 법칙은 등속 운동 중인 관측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고전적 상대성 원리로 정립되었다.


즉 정지해 있든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든,
그 안의 물리 법칙은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빛'은... 달랐다.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고 하셨죠?
근데 제가 빛을 향해 달려가면,
더 빠르게 느껴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수현의 질문에, 최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빛은 항상 똑같은 속도로 보입니다.
시속 30만 킬로미터로요."


"그게... 실험으로도 입증된 건가요?"


"바로 그게 했심이에요. 실험이 먼저였죠."


1887년, 물리학을 뒤흔드는 실험이 하나 있었다.
미국의 과학자 마이컬슨과 몰리.
그들은 빛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 아주 정밀한 장치를 만들었다.


당시 사람들은 빛도 파동이니,
파동이 전해지기 위해선 반드시 매질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 매질은 '에테르'라고 불렸고,
공기처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우주 전체를 채우고 있다고 여겨졌다.


지구가 에테르 속을 움직인다면,
빛은 에테르 바람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다.
즉 지구의 움직임 방향에 따라
빛의 속도는 빨라지거나 느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컬슨과 몰리는 두 방향으로 빛을 쏘아
아주 미세한 시간 차이를 측정하려 했다.
그 시간 차이가 곧 '에테르 바람'의 증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빛은 어느 방향으로 측정하든,
언제나 같은 속도로 도달했다.
에테르 바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순간 과학자들은 벽에 부딪혔다.
빛은 파동이다.
그렇다면 파동은 '무언가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예를 들어,
소리는 공기를 타고 퍼진다.
우리가 말을 하면, 입에서 나온 소리가 공기를 흔들어
다른 사람의 귀에 도달하는 것이다.


물결도 마찬가지다.
돌을 물에 던지면, 물이라는 매질을 따라
동그란 파장이 퍼져 나간다.



이처럼 파동이 움직이려면 반드시 '매질'이 필요하다.
그리고 파동의 속도는, 그 매질을 기준으로 측정된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마이컬슨과 몰리의 실험은
에테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빛의 속도가 어떤 방향에서 측정하든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물음이 터져 나왔다.
에테르가 없다면,
빛은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걸까?
파동이라면 매질이 있어야 퍼질 텐데,
왜 빛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같은 속도로 보일까?


이건 단순한 착시가 아니었다.
실험이 반복될수록 결과는 더 명확해졌다.


기존 상식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파동이라면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빛은 기준이 없는 파동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 틀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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