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학, 흔들리는 진리를 따라
수현은 잠시 조용히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눈길이 다시 교수에게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물었다.
"그럼 중력은요?
아인슈타인은... 힘이 아니라, 공간이 휘어진 거라고 했잖아요."
최 교수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이에요.
우리가 지금까지 얘기한 건 특수상대성이론이었죠.
빛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였고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일반상대성이론은 더 확장된 거죠?"
"맞아요.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변한다'는 생각을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변화가 '중력'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본 거예요."
"뉴턴은 중력을 그냥... 당기는 힘이라고만 설명했잖아요."
"그렇죠.
뉴턴은 중력을 '보이지 않는 인력',
그러니까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무엇을 통해 전달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죠."
"아인슈타인은 그걸 휘어진 공간이라고 본 거고요?"
최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힘'이 아니라,
시공간의 기하학적 성질이라고 봤어요.
질량이 큰 물체가 있으면,
그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지게 되고,
다른 물체들은 그 휘어진 공간을 따라 움직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지구가 달을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달이 휘어진 공간 위를 미끄러지듯 도는 거네요."
"정확해요.
힘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시공간이 휘어진 그 형태 속에서 가장 짧고 자연스러운 길을 따라 움직이는 거예요.
그걸 물리학에서는 '지오데식 경로'라고 부르죠.
우리가 땅 위에서 직선으로 걷듯이, 달도 시공간 안에서의 '직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거죠.
단지 그 직선이, 우리 눈에는 곡선으로 보일 뿐이에요."
수현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결국... 중력이라는 게 실제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우린 그 존재를 경험하니까 믿을 수밖에 없는 거네요."
최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중력의 실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아요.
중요한 건 '어떻게 설명하느냐'죠.
뉴턴은 그걸 끌어당기는 힘으로,
아인슈타인은 휘어진 시공간으로 설명했을 뿐이에요."
"그럼... 언젠가 또 다른 방식이 나오면,
중력에 대한 해석도 바뀔 수 있는 거네요?"
"그럴 수도 있어요.
과학은 언제나 열린 설명을 따르니까요.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새로운 시선을 받아들여야 하겠죠."
특수상대성이론이 '빛의 속도'를 고정시키기 위해 시간과 공간이 변한다고 말한 이론이라면,
일반상대성이론은 그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이 중력이라는 힘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확장시킨 이론이다.
뉴턴은 중력을 '보이지 않는 인력'이라고 정의했다.
두 질량 사이에 작용하지만, 그 원리나 전달 방식은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중력은 힘이 아니라, 공간이 휘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 있기 때문에, 달은 그 곡면을 따라 돌고 있는 것이다.
중심에서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가장 짧은 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블랙홀도 설명 가능한 거군요."
최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중력이 너무 강해서,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시공간이 휘어진 곳.
그게 바로 블랙홀이에요."
수현은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은... 공간이 꺼져버린다는 뜻인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시공간이 무한히 휘어지는 지점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 중심은 '특이점'이라고 불리고, 우리가 가진 물리 법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곳이죠."
"그럼 그 안은 볼 수도 없겠네요?"
"그래서 이름도 '블랙홀'이에요. 아무것도 빠져나오지 못하니까요.
심지어 빛도요.
그 주변의 공간조차 왜곡돼서, 물질이 말려 들어가고, 시간이 느려지죠.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묘사한 장면들, 실제 물리학 이론에 충실한 편이었어요."
블랙홀은 더 이상 이론 속의 괴물이 아니다.
2019년, 인류는 사상 최초로 블랙홀의 '그림자'를 직접 찍는 데 성공했다.
지구 곳곳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프로젝트를 통해, M87 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한 블랙홀이 포착되었다.
그 중심은 검은 원처럼 비어 있었고, 그 둘레는 빛으로 둘러싸인 밝은 고리처럼 보였다.
이전까지는 상상에 의존했던 블랙홀의 실체가, 눈앞에 이미지로 펼쳐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2015년부터는 블랙홀끼리 충돌하며 만들어낸 '중력파'가 실제로 검출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이 백 년 전 예측했던 현상이, 실험으로 검증된 것이다.
상상 속의 존재였던 블랙홀이, 이제는 관측 가능한 우주의 일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