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2. 중력은 힘이 아니라 시공간이다

1. 과학, 흔들리는 진리를 따라

by 홍종원

수현은 잠시 조용히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눈길이 다시 교수에게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물었다.
"그럼 중력은요?
아인슈타인은... 힘이 아니라, 공간이 휘어진 거라고 했잖아요."


최 교수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이에요.
우리가 지금까지 얘기한 건 특수상대성이론이었죠.
빛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였고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일반상대성이론은 더 확장된 거죠?"


"맞아요.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변한다'는 생각을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변화가 '중력'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본 거예요."


"뉴턴은 중력을 그냥... 당기는 힘이라고만 설명했잖아요."


"그렇죠.
뉴턴은 중력을 '보이지 않는 인력',
그러니까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무엇을 통해 전달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했죠."


"아인슈타인은 그걸 휘어진 공간이라고 본 거고요?"


최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이 '힘'이 아니라,
시공간의 기하학적 성질이라고 봤어요.
질량이 큰 물체가 있으면,
그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지게 되고,
다른 물체들은 그 휘어진 공간을 따라 움직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지구가 달을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달이 휘어진 공간 위를 미끄러지듯 도는 거네요."


"정확해요.
힘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시공간이 휘어진 그 형태 속에서 가장 짧고 자연스러운 길을 따라 움직이는 거예요.
그걸 물리학에서는 '지오데식 경로'라고 부르죠.
우리가 땅 위에서 직선으로 걷듯이, 달도 시공간 안에서의 '직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거죠.
단지 그 직선이, 우리 눈에는 곡선으로 보일 뿐이에요."



수현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결국... 중력이라는 게 실제로 보이는 건 아니지만,
우린 그 존재를 경험하니까 믿을 수밖에 없는 거네요."


최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중력의 실체는 여전히 보이지 않아요.
중요한 건 '어떻게 설명하느냐'죠.
뉴턴은 그걸 끌어당기는 힘으로,
아인슈타인은 휘어진 시공간으로 설명했을 뿐이에요."


"그럼... 언젠가 또 다른 방식이 나오면,
중력에 대한 해석도 바뀔 수 있는 거네요?"


"그럴 수도 있어요.
과학은 언제나 열린 설명을 따르니까요.
더 많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새로운 시선을 받아들여야 하겠죠."


특수상대성이론이 '빛의 속도'를 고정시키기 위해 시간과 공간이 변한다고 말한 이론이라면,
일반상대성이론은 그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이 중력이라는 힘까지 설명할 수 있다고 확장시킨 이론이다.


뉴턴은 중력을 '보이지 않는 인력'이라고 정의했다.
두 질량 사이에 작용하지만, 그 원리나 전달 방식은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중력은 힘이 아니라, 공간이 휘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 주변의 시공간이 휘어 있기 때문에, 달은 그 곡면을 따라 돌고 있는 것이다.
중심에서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가장 짧은 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블랙홀도 설명 가능한 거군요."


최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중력이 너무 강해서,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시공간이 휘어진 곳.
그게 바로 블랙홀이에요."


수현은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은... 공간이 꺼져버린다는 뜻인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시공간이 무한히 휘어지는 지점이 생긴다는 거예요.
그 중심은 '특이점'이라고 불리고, 우리가 가진 물리 법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곳이죠."


"그럼 그 안은 볼 수도 없겠네요?"


"그래서 이름도 '블랙홀'이에요. 아무것도 빠져나오지 못하니까요.
심지어 빛도요.
그 주변의 공간조차 왜곡돼서, 물질이 말려 들어가고, 시간이 느려지죠.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묘사한 장면들, 실제 물리학 이론에 충실한 편이었어요."


블랙홀은 더 이상 이론 속의 괴물이 아니다.
2019년, 인류는 사상 최초로 블랙홀의 '그림자'를 직접 찍는 데 성공했다.
지구 곳곳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한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프로젝트를 통해, M87 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한 블랙홀이 포착되었다.


그 중심은 검은 원처럼 비어 있었고, 그 둘레는 빛으로 둘러싸인 밝은 고리처럼 보였다.
이전까지는 상상에 의존했던 블랙홀의 실체가, 눈앞에 이미지로 펼쳐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2015년부터는 블랙홀끼리 충돌하며 만들어낸 '중력파'가 실제로 검출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이 백 년 전 예측했던 현상이, 실험으로 검증된 것이다.
상상 속의 존재였던 블랙홀이, 이제는 관측 가능한 우주의 일부가 되었다.

keyword
이전 11화11. 시간과 공간, 절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