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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양자혁명, 확률의 시대

1. 과학, 흔들리는 진리를 따라

by 홍종원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은 내일 저녁 메뉴를 미리 맞힐 수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그 이유까지 알게 될 것이다.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내일이 되어봐야 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물리학자들도 오랫동안 이 문제를 두고 논쟁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글을 읽으며 함께 고민해 보자.




아인슈타인이 시공간과 중력을 재정의하며 우주의 문법을 바꿔놓던 바로 그 시기, 다른 한쪽에서는 훨씬 더 작은 세계에서 또 다른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원자와 전자의 세계,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미시세계였다.


그곳에서는 뉴턴의 법칙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완벽히 들어맞지 않았다.
전자와 빛, 입자는 예측 가능한 궤도를 그리지 않았다.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없었고, 마치 안갯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존재조차 불확실했다.


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작은 세계에서는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통하긴 하죠."
최 교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다만 그 법칙은 고전역학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어요.
양자역학이라는 이름의 법칙이죠.
그리고 이 법칙이 말하는 건 단순합니다.
우리 세상은 애초에 확률이라는 질서 속에서 움직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은 미리 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고전역학에서는 초기 조건만 알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치 당구대 위의 공이 어느 각도로,
어떤 속도로 굴러갈지를 정확히 계산하듯,
우주의 모든 사건도 수학으로 미리 그려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는 달랐다.
여기서는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입자가 이곳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즉 결과는 확률로만 표현된다.


이건 장비의 한계나 측정 실수 때문이 아니었다.
자연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아인슈타인과 보어가 벌였던 양자역학 논쟁(EPR 논쟁),
그리고 이중슬릿 실험과 벨의 부등식 실험 같은 수많은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마치 동전을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라고 말하듯,
전자의 위치나 운동량도 오직 확률로만 예측할 수 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어디일 가능성이 높은지'뿐,
그 순간의 정확한 모습은 자연이 스스로 감추고 있다.


최 교수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덧붙였다.
"이 개념을 처음 받아들였던 물리학자들도 혼란스러웠어요.
막스 플랑크는 '나는 양자라는 개념을 만들었지만, 나 자신도 믿지 않았다'라고 했죠.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을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이젠베르크는, '우리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드러내는 방식으로만 본다'라고 했어요."


수현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미래도 이미 정해진 게 아니라는 건가요?"


최 교수의 표정이 차분해졌다.
"맞아요.
뉴턴의 세계는 모든 퍼즐 조각이 이미 맞춰져 있는 완성된 그림이었죠.
원인을 알면 결과는 하나로 정해졌습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세계는,
그림이 그려지는 순간에도
다른 색과 형태로 바뀔 수 있는 캔버스입니다."


고전역학은 결정론의 세계였다.
초기 조건만 알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치 당구대 위의 공이 굴러가는 각도와 속도를 계산하듯,
우주의 모든 사건도 수학으로 그려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사위2.png


수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신이 주사위를 던진다는 거네요?"


최 교수는 잠시 웃었다.
"아인슈타인은 끝까지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했죠."


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은... 우연이나 확률로 세상이 움직인다는 걸 믿지 않았다는 거군요?"


"그렇죠. 아인슈타인은 모든 현상 뒤에는 반드시 숨겨진 법칙이 있다고 믿었어요.
우리가 아직 모를 뿐이지. 그 법칙을 알게 되면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계산이 놀라울 만큼 정확하다는 건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세상이 '본질적으로 확률적'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측정 기술의 한계, 혹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숨은 변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변수를 찾게 되면 세상은 다시 결정론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수현이 턱을 살짝 괴고 물었다.
"혹시... 그게 그냥 기술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지 않나요?
너무 작은 세계라서, 지금 장비로는 다 볼 수 없으니까요?"


"그게 바로 아인슈타인의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1960년대에 존 벨이 '벨의 부등식'을 제안했고,
그 뒤를 이은 수많은 실험이 그 생각을 뒤집었습니다.
양자세계는 단순히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숨기는 게 아니었죠.
자연 자체가 본질적으로 확률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벨의 부등식 실험은 간단하다.
숨은 변수가 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패턴과,
양자역학이 옳다면 나타나야 하는 패턴을 비교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실험은 양자역학의 편을 들었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써도 '확률'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현이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그럼 거시 세계도 결국 이런 비결정론의 영향을 받는 건가요?"


"원리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거시 세계도 원자와 전자의 집합이니까요.
다만 그 불확정성은 수많은 입자 속에서 평균화됩니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뉴턴의 법칙이 완벽하게 맞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초전도나 양자 얽힘처럼 특수한 조건에서는 거시 규모에서도 분명히 비결정론적으로 작동합니다."


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을 하나로 묶는 게 남은 숙제군요."


"맞아요.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를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하는 통합 이론.
그건 아직 풀리지 않는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알고, 어디서부터 모르는지를 아는 것.
그게 지금 과학의 최전선입니다."


양자혁명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뿌리부터 바꿔놓았다.
미래는 하나로 굳어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가능성이 겹겹이 포개져 있다가,
어느 순간 단 하나가 현실로 '선택'된다.


양자역학은 말한다.
세상은 완벽하게 맞물린 기계가 아니라,
확률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결정론은, 내일 저녁 메뉴가 이미 카레로 정해져 있다는 걸 미리 아는 것이다.
비결정론은, 내일 저녁이 되기 전까지 카레일지 파스타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이렇게 말한다.
‘내일 저녁, 부엌문을 열어봐야 메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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