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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리처드 도킨스, 유전자의 눈으로 본 생명

by 홍종원
리처드 도킨스.png


수현이 책을 펼쳤다.
"교수님, 『이기적 유전자』요. 다윈만큼 세상을 바꾼 책이라는데, 정말인가요?”


최영도 교수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다윈이 '개체'를 무대에 오렸다면, 도킨스는 '유전자'를 주인공 자리에 앉혔습니다."


유전자는 세포 속 DNA에 담긴 생명의 설계도다.
머리색, 키, 면역력 같은 특징이 세대를 넘어 전달되는 이유다.


그런데 도킨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생물은 유전자의 생존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다."


즉 유전자가 스스로를 복제하기 위해 동물과 인간이라는 '탈것'을 만든다는 관점이다.


수현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럼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유전자가 주인공이란 말인가요?"


"맞아요."
최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관점이 혁명적이었던 이유는, 진화의 기본 단위를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로 바꿨기 때문이죠.
다윈이 무대를 만들었다면, 도킨스는 그 무대의 조명을 완전히 다른 곳에 비춘 셈입니다."


다윈은 '생명은 진화한다'라고 말했다.
도킨스는 "그 진화의 주체는 유전자"라고 했다.


이 한마디는 생물학뿐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철학까지 뒤흔들었다.
심지어 이타심조차 '유전자의 이기적 전략'일 수 있다는 해석은, 인간 본성 논쟁에 새로운 균열을 만들었다.


수현이 책장을 넘기며 물었다.
"그럼 '밈'이라는 것 또 뭐예요?"


"밈(Meme)은 문화의 유전자 같은 거예요."
최 교수가 설명했다.
"유전자가 몸을 통해 복제되듯, 밈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전파됩니다.
언어, 유행, 종교, 인터넷 밈까지, 모두 복제, 변이, 선택을 거치죠.
문화도 진화한다는 말입니다."


『이기적 유전자』가 세상에 나오자,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찬성하는 쪽은 "인간 행동의 뿌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했다."며 환호했다.
심리학과 행동생물학 연구가 활발해졌고, '이타심의 진화' 같은 새로운 분야가 열렸다.


반대하는 쪽은 인간을 단지 유전자의 도구로 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환원적이라고 비판했다.
사회, 문화,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다는 지적이었다.

또 '이기적'이라는 표현이, 마치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는 도덕 판단처럼 오해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일부 언론은 이 개념을 "과학이 인간의 이기심을 정당화한다"는 식으로 왜곡 보도하기도 했다.


도킨스의 등장은 진화론을 '유전자 중심'으로 재구성한 사건이었다.
20세기 후반 생물학의 주요 패러다임이 되었고,
다윈이 개척한 길 위에 훨씬 더 정밀한 '유전자라는 렌즈'를 얹어 놓았다.
그 영향은 과학을 넘어 정치, 교육, 윤리 논쟁까지 번졌다.


수현이 책을 덮었다.
"결국 도킨스는 우리에게 '유전자의 눈'이라는 새로운 렌즈를 준 거네요."


"그렇죠."
최 교수가 미소 지었다.
“다만 이건 수학 공식처럼 ‘증명된 법칙’이라기보다, 방대한 증거와 논리로 뒷받침된 강력한 가설입니다.
유전자가 진화의 기본 단위라는 생각은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여전히 논쟁이 남아 있죠.”


“그러니까... 진리로 박힌 건 아니군요?”


“맞아요. 과학에서 ‘이론’이란 그런 겁니다.
지금까지 가장 잘 설명하는 틀일 뿐,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언제든 바뀔 수 있죠.
다윈이 인간을 자연 속에 놓았다면, 도킨스는 인간을 유전자의 게임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미래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그 게임의 규칙을 새로 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이야기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새로운 질문이 나오면, 세상은 다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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