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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독침 전략 개시

by 홍종원

며칠 전, 폭로된 한 문건은 국민을 분노로 달궜다. 미국, 중국, 러시아가 서명한 ‘한반도 분할 관리 협정’. 그 문서에는 “안정적 관리”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있었지만, 국민들은 그것을 ‘침탈의 또 다른 이름’이라 불렀다.


분노는 폭력이 아닌 침묵으로 번졌다. 광화문, 대구, 부산, 심지어 평양의 거리까지 묵묵히 깃발이 들려 있었다. 태극기와 한반도기가 함께 펄럭였고, 누군가는 벽에 이렇게 썼다.
“분노의 침묵이 가장 무섭다.”


그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밝혀진 비밀 협정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마침내 함성으로 폭발했다. 오늘도 서울 광장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광화문에서 시청 앞까지, 수십만 명의 시민이 거대한 파도처럼 움직였다.


누군가는 태극기를 흔들었고, 누군가는 통일기를 들었다. 종이 피켓마다 적힌 문장은 달랐지만, 뜻은 같았다.
“우리는 더 이상 관리받지 않는다.”
“이 땅은 하나의 조국이다.”
“우리 땅을 되찾자.”


통일 정부 수립 이후, 이 함성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지시도, 정치적 구호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분노와 자존의 결합, 그리고 ‘국가’라는 단어가 되살아난 순간이었다.


밤이 되어도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촛불이 켜지고, 노래가 이어졌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 손으로 지킨다.”
젊은 병사들이 시민들 곁을 지켰고, 노인들은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서울의 하늘 아래, 국경이 아니라 운명이 바뀌고 있었다.


22. 밝혀진 비밀 협정.png


그 시각, 청와대 지하 작전실의 불빛이 깜박였다. 수십 개의 모니터가 동시에 붉게 물들며, 하나의 문장이 화면에 떠올랐다.
<전시작전권 회수 통보 — 발신지: 대한민국 청와대>


순간, 전 세계 위성 감시망이 한반도를 향해 회전했다. 지도 위의 선들이 흔들리고, 각국의 군 통신이 요동쳤다. 그날은 기록될 것이다. 한국이 스스로의 통제권을 완전히 되찾은 첫날로.


윤현우 대통령은 고요한 숨을 내쉬며 서명문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는 “통일군 창설 및 지휘체계 통합령”이라는 제목의 문서가 놓여 있었다. 한 나라의 통수권이 완전히 서울로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책상 옆에는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서 있었다.
“대통령님, 준비는 끝났습니다.”
윤현우는 펜을 들며 낮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시작합시다.”
그의 손끝이 문서 위를 스칠 때, 밖에서는 여전히 이른 새벽의 정적이 흘렀다.


오전 7시 정각.
합참의장은 무전기를 들었다.
“전군 최고 경계태세를 발령한다.”


짧은 문장이 전국의 통신망으로 퍼져나갔다. 모든 전투기와 미사일, 잠수함과 감시체계가 동시에 점등됐다. 레이더망이 겹겹이 중첩되며, 한반도는 하나의 방패가 되었다. 전선의 장병들은 서로의 눈빛으로만 명령을 확인했다. 재래식 전력만으로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요새, 그것이 한국의 진짜 모습이었다.


그 시각, 미군 제7함대는 여전히 동해에 머물러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명분 아래, 한반도 인근에 그들의 깃발을 세운 채였다. 오랫동안 그 함대는 ‘동맹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한반도 분할 협정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감시의 상징이었다.


청와대 상황실에서 보고를 들은 윤현우 대통령은 잠시 침묵하다가 담담히 말했다.
“그들이 우리를 지킨다고 믿는 시대는 오늘로 끝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정오, 청와대 브리핑룸의 공기는 무거웠다. 국내외 기자 300여 명이 자리를 메웠고, 수십 대의 카메라가 대통령 단상을 향해 서 있었다. 윤현우 대통령이 단상 위로 올라섰다. 그의 눈빛은 차분했고, 손에는 한 장의 문서만 들려 있었다.
“오늘, 대한민국은 ‘독침 전략(Dokchim Doctrine)’을 공식 채택합니다.”
플래시가 터졌고,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하게 이어졌다.
“우리는 전쟁을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공격하는 국가는 그 즉시 국가 기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대통령은 외교적 요구도 분명히 했다.
“우리는 즉시 요구합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현재 한반도 내에서 점유·관리하고 있는 모든 구역에서 즉각 철수하여 대한민국의 영토 주권을 온전히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국에게도 요구합니다. 동해 인근에 배치된 항모전단 등 군사전력을 평시 배치로 복귀시키고, 동맹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 협의에 즉시 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요구는 위협이 아니라 협상의 출발점이며, 대한민국의 주권과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의 어조에는 위협이 아닌 조건이 깔려 있었다. “이 요구는 협상의 시작이며,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라는 말이 뒤따랐다.


그 연설문은 곧장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짧은 문장들이 방 전체에 울렸고, 기자들은 숨을 죽였다. 그 한 번의 선언은, 핵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도 주변 강대국들에 새로운 현실을 통고하는 것이었다.


선언문이 끝나자, 군 통제망이 점차 새로운 체계로 옮겨갔다. 처음에는 단순한 신호 절차와 지휘 암호의 변경이었다. 며칠 뒤, 국군과 북부 병력이 합동훈련을 시작했고, 보급선과 통신 체계가 하나의 규격으로 통합됐다. 수십 년간 다른 언어를 쓰던 두 조직이 서서히 같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몇 주가 지나자, 통합사령부의 문서에 ‘통일군 창설령’이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법령이 공포되었고, 군복과 표식, 계급 체계가 하나로 정비됐다. 지휘부는 최고 경계태세를 발동하며, 새로운 암호체계를 전면 적용했다. 위성 감시망과 요격 시스템도 단계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언론은 그것을 “완전한 독립 방위 체계의 출현”이라 불렀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그 너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경계선 근처에서는 정찰기가 연일 상공을 돌았고, 미군은 태평양 쪽 전개를 조정하며 새로운 전선을 분석하고 있었다. 각국의 위성은 한반도를 향해 초점을 맞췄고, 동해와 압록강 인근에는 서로 다른 깃발을 단 병력들이 조용히 배치됐다.


도시는 평온했지만, 공기는 묘하게 무거워졌다. 사람들은 뉴스를 보며 안도와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누군가는 ‘드디어 완전한 독립’이라 말했고, 누군가는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라고 속삭였다. 그날 밤, 한강 건너편에서 번지는 조명은 단순한 축하가 아니었다.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군사적 조치가 아니라, 의식의 독립선언이었다.


같은 시각, 워싱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문이 닫히자 방 안은 묘하게 무거워졌다. 국방장관이 조용히 말했다.
“한국이 전시작전권을 일방적으로 회수했습니다.”


대통령은 잠시 말을 잃었다. 탁자 위의 지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끝으로 천천히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들은 이제 우리 뒤에 서 있는 나라가 아니군. 스스로 중심에 섰어.”


회의실이 잠시 술렁였다. 안보보좌관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문제는 동해의 항모전단입니다. 그들을 철수시키지 않으면 상황이 복잡해질 겁니다. 이제 한반도는 단순한 방어선이 아닙니다. 완전히 통합된 방위망을 갖춘, 사실상 거대한 요새입니다.


국방장관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90년 동안 전쟁을 준비한 나라입니다, 대통령님. 지금은 미사일 전력만으로도 항모 한 기동단을 전멸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췄습니다. 그들의 의지는 이미 방어를 넘어섰습니다.”


대통령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결국 우리가 설계한 게임의 규칙이 무너진 거군.”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힘으로 다룰 수 없는 상대야. 신뢰를 회복할 방법을 찾되, 우리 역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겠지.”


회의실에는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 속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한반도는 더 이상 ‘지켜야 할 전선’이 아니라, 손댈 수 없는 억제의 중심, 불침항모가 되어 있었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불빛도 꺼지지 않았다. 리웨이 주석은 군 참모들에게 물었다.
“그들의 통합군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참모는 차트를 내밀며 답했다.
“재래식 전력만으로도 북부전선을 압도할 수준입니다. 게다가, 확보된 ‘비공개 자산’이 존재합니다.”


리웨이는 짧게 눈을 감았다.
“핵은 쓰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이미 계산을 끝낸 것 같다.”
그의 말은 두려움이라기보다, 일종의 경외에 가까웠다.


참모가 낮은 목소리로 이어갔다.
“상대는 이미 전략적 요충지와 산업 축을 겨냥할 능력을 갖추고 있고, 단시간 내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타격이 물리적 피해를 넘어 경제·사회적 복구에 장기적 부담을 남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리웨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그러니까 전장은 이미 군사적 충돌 너머의 차원으로 옮겨갔다는 말이군.”


모스크바 크렘린의 새벽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 볼코프 대통령은 지도를 펴놓고 한반도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건 단순한 방어선이 아니야. 저들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어.”


그는 잔을 들어 올렸다. 창밖의 어둠은 희미한 붉은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제, 한반도는 다시 세계의 중심에 섰군.”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도 묘한 인정의 기색이 섞여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참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만약 우리가 물러서지 않는다면, 잃게 되는 건 단순한 영토가 아닙니다.”


그는 말을 고르며 이어갔다.
“항구가 멈추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국이 미사일 전력을 동해로 전개하면, 블라디보스토크 항만과 연해주 공장지대는 단 몇 분 만에 초토화될 수 있습니다. 내륙으로 연결된 시베리아 철도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단 한 번의 타격으로 물자 수송선이 끊기고, 결국 아무것도 실어 나르지 못하는 쓸모없는 철길이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사람들이 잃는 건 일자리가 아니라, 삶 전체를 지탱하던 기반이 될 것입니다.”


볼코프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눈앞의 지도 위로 붉은 새벽빛이 번졌다.
“전쟁은 늘 땅을 잃기 전에, 사람들의 삶부터 무너뜨리지.”


그날 밤, 서울의 거리는 고요했다. 사람들은 뉴스를 반복 재생하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 말은 낮은 목소리였지만 도시 전체를 울렸다. 한강 위의 다리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구도 큰 소리를 내지 않았고, 모두가 같은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휴대폰 속 생방송 뉴스, 속보 알림, 지도 위에 찍히는 표시들. 그 불빛들이 파란 물결처럼 번지며 다리를 밝히고 있었다.


하늘에는 전투기의 그림자 하나 없었지만, 공기는 팽팽히 당겨져 있었다. 바람이 스쳤고, 사람들은 직감했다. 지금 이 고요함이, 세상이 크게 바뀌기 직전의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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