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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통일정부 수립 선언

by 홍종원

서울 광장에는 새벽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광장 중앙에는 초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곧 생중계가 시작될 청와대 본관 화면이 대기 화면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도로에는 인파가 끝없이 밀려들었다. 서울 시민들뿐 아니라, 북한 주민, 경상도와 전라도, 심지어 제주도에서 올라온 사람들, 그리고 남쪽으로 넘어온 탈북민 가족들까지 뒤섞여 있었다. 누군가는 태극기를 들었고, 누군가는 한반도기를 흔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소리치지 않았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그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날, 그 자리에 선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한 시대의 마지막이며, 다른 시대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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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스크린이 전환되며 청와대 본관 회의실이 화면에 나타났다.
청와대 본관 회의실.
회의장은 밝고도 긴장감에 잠겨 있었다. 외신 기자단과 국내 방송국의 카메라들이 벽면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상 가장 짧고 가장 무거운 회담이 시작되고 있었다.


윤현우 대통령과 서지훈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남측 대표단이 오른편에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박철호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중심으로, 폭발 직후 구조되어 서울로 인도된 북한 내각 인사 여러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십 개의 마이크 앞, 통역 장치의 붉은 불빛이 반짝였다.


박철호는 이전보다 수척해져 있었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대통령 동지, 이제는 끝을 맺을 때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회의실의 모든 카메라가 그 순간을 포착했다.


윤현우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협정이 진정한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사람 사이로 서류 봉투가 교환되었다. 기록 담당관이 봉인을 열어 낭독을 시작했다. 목소리는 떨림 없이, 그러나 천천히 울려 퍼졌다.


“서울 협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체제 유지의 조건 없이 해체를 수락하며, 핵 통제권을 포함한 모든 군사, 정치, 외교, 행정 및 사법 권한과 영토 주권을 통일정부에 전면 이양한다.


통일정부는 수도를 서울로 하며, 평양을 행정특별구로 지정한다. 평양 행정특별구에는 과도행정위원회를 설치하여 일정 기간 현지 행정과 치안을 관리한다. 북한이 체결했던 모든 국제 조약과 협정은 통일 한국이 정당히 승계하며, 통일정부는 국제법상 대한민국의 법적 지위를 연속하여 유지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점유하거나 통치하던 모든 지역은 그 어떤 외세의 관리선이나 점유 상태와 관계없이, 통일정부의 법적 영토로 간주되며 대한민국의 주권 아래에 둔다. 통일정부는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한다. 남과 북의 모든 국민은 통일한국의 동일한 시민으로서 법적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


낭독이 끝나자, 두 사람은 동시에 펜을 들었다. 윤현우 대통령이 서명을 마치는 순간,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의 숨죽인 셔터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박철호는 손끝을 떨며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민을 향하듯 천천히 말했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같은 교과서를 배우게 되겠지요.”
순간, 회의실 안은 정적에 잠겼다. 카메라의 붉은 불빛만이 깜박이며, 그 장면을 영원히 기록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3시, 윤현우 대통령은 공식 기자회견장에 섰다. 플래시가 번쩍였고, 세계의 눈이 서울을 향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전 세계의 시민 여러분.


대한민국 정부는 오늘, ‘통일정부의 수립’을 공식 선언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90년 넘게 지속된 분단의 역사를 끝내고, 하나의 국기 아래, 하나의 헌법 아래, 하나의 정부로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통일정부의 수도는 서울로, 행정특별구는 평양으로 지정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부로, 북한이 체결했던 모든 국제 조약과 협정은 통일한국이 정당히 승계합니다.


이 선언은 총과 전쟁이 아니라, 자연의 격변이 남긴 공백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지진과 화산, 그리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재난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평화를 위한 마지막 기회를 남겼습니다. 역사는 때로 비극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곤 합니다. 우리는 그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이제 북한 지역의 모든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동포이며, 보호받아야 할 국민입니다. 통일정부는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식량, 주거, 의료, 교육의 기본권을 보장할 것입니다. 정부는 즉시 북한 지역 전역에 긴급 지원 명령을 발동합니다. 그 누구도 굶주림이나 질병으로 생명을 잃게 두지 않겠습니다. 통일은 승리의 결과가 아니라, 책임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또한 국제사회에 명확히 밝힙니다. 한반도의 모든 영토는 대한민국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지금 북한 북부 일부 지역을 점유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군은 즉각 철수해야 합니다. 그들의 행위는 국제법에 어긋나는 불법 점령이며, 통일정부는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외교적 절차를 통해 질서 있는 평화적 복귀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요구가 무시될 경우, 주권국가로서 정당한 대응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이제 이 한반도는 그 누구의 대리전도, 분쟁의 완충지대도 아닙니다.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종속되지 않은, 하나의 자주적 통일국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제 한국은 남과 북의 이름으로, 전쟁이 아닌 협력의 시대를 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연설을 듣고 있을 모든 대한민국 국민과, 지금도 폐허 속에서 생존을 버티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경계로 나뉜 사람들이 아니라, 한 나라의 이름 아래 다시 연결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같은 국적, 같은 미래, 같은 책임을 가진 하나의 국민입니다.


우리의 통일은 피로 쟁취한 승리가 아니라, 역사의 고통을 감내해 끝내 이뤄낸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다시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후손들이 말할 것입니다. 그날, 한반도는 다시 하나가 되었다고.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윤현우.


그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잠시 숨이 멎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회의장 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


그 외침은 순식간에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기자들도, 보좌관들도, 심지어 북측 수행원들까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었다.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던 장면은 곧 전국으로, 그리고 세계로 퍼져나갔다.


서울 광장에서는 수많은 시민들이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부산의 항구에서는 배들이 일제히 기적을 울렸고, 평양 거리의 사람들은 서로를 껴안았다. 제주의 바닷가에서도, 강릉의 골목에서도,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 통일 만세!”


그날, 한반도 전역이 하나의 목소리로 울었다. 눈물과 웃음, 환호와 노래가 뒤섞여 마침내 이 땅은 분단의 침묵을 깨뜨리고,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전 세계의 언론들이 일제히 속보를 띄웠다.


워싱턴. 국무부 브리핑룸.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통일 한국의 주권은 어디까지 인정됩니까?”
대변인은 한동안 말을 고르더니 짧게 답했다.
우리는 통일 한국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의 손끝은 메모지를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베이징과 모스크바에서도 긴급회의가 열렸다. 국경 감시선의 통신이 일제히 복구되었고, 각국 위성은 다시 한반도를 향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한반도가 더 이상 냉전의 경계가 아니라, 새로운 균형의 중심으로 떠올랐다는 것을.


다음 날 아침, 《르몽드》와 《파이낸셜타임스》 1면에는 같은 제목이 걸려 있었다.
“준중립국의 탄생 — 동북아 질서의 새 균형.”
기사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됐다.
“서울은 이제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의 중재자가 아니라, 스스로 세계 질서를 설계하는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


베이징 인민대회당.
리웨이 주석은 붉은 서류를 덮으며 외교부장에게 물었다.
“한국이 조약 승계를 선언했지. 그렇다면 북중우호조약의 조항은 어떻게 되는가?”
외교부장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법리상, 통일 한국이 자동으로 승계합니다. 그러나 정치적 효력은 재해석이 필요합니다.”
리웨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조약은 피로 썼다. 그러나 지금 그 피는 다른 깃발 아래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회의장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중국은 공식 입장을 유보했지만, 그날 밤 랴오닝 지역의 군 통신망이 비상 모드로 전환되었다.


모스크바 크렘린의 불은 새벽까지 꺼지지 않았다. 볼코프 대통령은 긴급 안보회의를 소집했다.
“한국이 통일정부를 세웠다. 그들의 통제 아래 들어간 북부 군사시설에는 우리가 남긴 기술이 있다.”
국방장관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회수는 불가능합니다. 이미 봉쇄 구역으로 지정됐고, 외부 접근이 전면 차단되었습니다.”
볼코프는 잠시 침묵하다가 잔을 들었다.
“좋다. 하지만 러시아는 한반도를 잃은 것이 아니다. 단지 새로운 변수와 맞서야 할 뿐이다.”
그는 창문 밖,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제 동북아의 판이 다시 움직이겠군.”


도쿄. 일본 총리관저의 기자회견장은 유례없는 침묵에 잠겨 있었다. 기자들이 속삭였다.
“일본은 이제 어떻게 대응합니까?”
총리는 준비된 원고를 내려놓고 말했다.
“한국은 동북아의 안정에 기여할 새로운 형태의 국가로 거듭났습니다. 일본은 그 변화를 존중하겠습니다.”
그러나 표정은 단호했다.
내부 보고에는 다른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한국의 자율 군사력 확장은 일본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말은 곧, ‘한일 군사 경쟁의 서막’을 의미하고 있었다.


서울 청와대. 윤현우는 보고서를 덮고 창밖을 바라봤다. 광화문 광장에는 시민들이 여전히 모여 있었다. 그들은 환호하지 않았지만,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제 스스로 선택하겠다”는 의지가 서려 있었다.


박철호는 한남동의 숙소에서 조용히 뉴스를 보고 있었다.
“서울 협정 체결 이후, 국제사회가 통일 한국의 법적 지위를 검토 중입니다.”
앵커의 목소리 뒤로 봄비가 유리창을 때렸다.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한반도는 더 이상 세계의 실험실이 아니다. 스스로의 설계자가 되었구나.”


그날 밤, 청와대의 비밀 일지에 윤현우는 또 한 줄을 남겼다.
‘이제 우리는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다.’
그 문장은 역사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한 문장이, 훗날 외신들이 표현한 ‘새로운 균형의 시작’의 첫 문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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