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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Mar 13. 2016

한강의 『채식주의자』

177, `16-32

맨부커상의 국제부문에 후보로 오른 소식을 통해 읽게 된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



한국 작가들의 작품성있다는 소설들은 왜 그렇게 다들 성-性-sex 담론을 집어넣는걸까.
특히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에서 그런 자극을 많이 느낀다.
인간 밑바닥의 감정이나 민낯의 본능은 꼭 그렇게만 표현될 수 있는건가.

특히 10년전부터 주목받기 시작해 문단의 흐름을 주도하는 이들의 작품에서 자주 느껴진다. 
혹시 그런 성 취향이 현재의 민낯인건가

사실 종종 불쾌하게 읽힌다. 
이상문학상을 받았던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도 그랬고 김중혁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에서도 그랬다. 포르노에서나 볼법하고 은밀한 침실에서나 감행하는 성관계가 난립하거나 어쩌다 등장하면 지독히도 자극적으로 펼쳐진다. 그런 지독한 고독감을 지독하게 그려내는 소설들이어야 철학적이고 고독한 세계에서 고고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럼에도 <채식주의자>라는 연작소설집에 분명한 의미가 있음은 물론이지만 종종 궁금하고 종종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한강의 연작소설인 <채식주의자>는 세개의 작품이 들어있다. 표제작인 '채식주의자', 이상문학상 대상작인 '몽고반점' 그리고 마지막인 '나무 불꽃'.

|채식주의자

지독히도 평범한 아내가 꿈을 꾸더니 고기를 먹지 않는다. 야위어가는 아내의 외모만큼이나 남편의 일상도 야위어간다. 사장 주최 부부동반 모임에서 아내는 말이 아니었고 처가 가족과의 식사자리에서 극히 부수적인 장인은 아내의 뺨을 때렸다. 장인은 강제로 탕수육을 먹이고 바로 뱉어낸 아내는 칼로 자신의 팔을 긋는다. 아내는 병원 정원에서 상의를 벗고 앉아있다. 더워서



|몽고반점

처제의 자해가 있은 뒤로 동서는 이혼했다. 어떻게 그런 아내와 평생 살 수 있냐며... 화장품 가게로 자신의 예술을 뒷바라지 하는 아내는 여동생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남녀 모델의 나신에 나비며 꽃을 그리고 그 움직임을 영상으로 만드는 어느 날 묘하게 처제의 몽고반점에 발기가 된다. 원룸에 혼자 기거하는 처제를 찾아가 어렵게 말을 꺼낸다. 모델이 되어줄 수 있냐고. 그리고 처제에게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찍는다. 처제는 자신의 몸에 그려진 나무와 풀과 꽃을 오히려 좋아한다. 젊은 후배 J에게 남자 모델을 제의하고, 그의 몸에도 그림을 그린다. 둘의 움직임을 찍다 '그걸'해줄 수 있냐 묻지만 J는 불쾌해하며 자리를 뜬다. 자신과 할 수 없겠냐며 묻지마 싫다는 처제. 그런데 처제 영혜는 J와 같이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리면 할 수 있다고 한다. 오래전 연인이자 화가로 이름이 있는 그녀에게 자신의 몸에 그림 그려줄 것을 부탁한다. 돌아와서 처제와 그짓을 하고... 다음날 여동생의 집을 방문한 아내에게 발각된다. 여기에 미친 두 사람이 있어요. 와서 데려가세요.



|나무 불꽃

정신이 아직 온전치 못한 여동생과 몸을 섞은 남편. 남편은 탄원을 통해 정신병원에서 나왔지만 동생은 그대로다. 여전히 격렬하게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동생. 이제는 고기뿐만 아니라 모든 식사를 거절한다. 몸무게는 겨우 30kg.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서 첫째딸로 커왔고, 생활력이 전무한 남편과 아이를 키우느라 생을 견디어왔다. 생을 살아본 적 없이 견디어 온것이다. 다시 찾아간 여동생은 자신이 나무가 되어간다고 한다. 동생이 더 오래살기 바란다면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의사. 구급차를 타고 산길을 벗어나는데 나무에서 불꽃이 튄다. 초록즙이 흘러내린다.


P179
 언닌 알고 있었어?
대답 대신 영혜는 물었다.
… 뭘?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영혜는 벌떡 일어서서 창을 가리켰다.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서 있어.







앞서 <채식주의자>에 담긴 섹스에 대해 불평을 남기긴 했지만 작가의 다른 책인 <소년이 온다>도 읽을 계획이다. 

꼭 그래야만하는 남녀의 섞임이었나 하는 약간의 의문에도 소설의 모든 것이 거기에 섞여야 생존하는 기생체는 아니니까.  



사람은 연약한 존재다. 
그래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온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기 자신뿐이라 그 억울함과 구역질을 완전히 뒤집어 선 물구나무로 토해낼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뒤집어 서고, 동물이 식물이 되고, 그리고 ……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라는 질문으로 고통인줄 알면서도 연명을 사명으로 여기는 사회의 편견에 맞서는지도. 그게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반역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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