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이 Apr 06. 2018

69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 리처드 플래너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 리처드 플래너건, 문학동네

★★★★

우선 맨부커 수상작답게 재미는 떨어진다.

p16

 어머니는 각피 부분을 칼로 지져서 작은 구멍을 냈다. 재키 매과이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어요, 에번스 부인.

 곧 연기가 사라지고 엄지손가락에서 검은 피가 작게 뿜어져나오자 피 맺힌 손가락 통증도 빨갛게 달아오른 칼이 주는 무서움도 사라져버렸다.

 이제 꺼져. 도리고의 어머니가 아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얼른 가버려.

 사라졌다고요! 재키 매과이어가 말했다.

작가의 유령같은 전쟁의 기억이 소설을 읽는 내내 뿌연 연무처럼, 체에 두어번 거른 미세한 가루처럼 들러 붙는다.

잡히지도 않으면서 사라지지도 않고, 사람마다 다르게 삶을 침범하는 유령같은 전쟁 포로의 기억.

버마(미얀마)에서의 참혹한 철로 건설 현장과 도리고의 기억이 교차되는 가운데 일본군 장교 나카무라와 징병 조선인 최상민의 이야기도 드문드문 등장한다.

들러 붙어서는 떨어지지 않는 전쟁의 참상과 도리고 에번스의 기묘할 정도로 초연한 연대기가 일견 이질적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외부의 흐름에 이끌려 간다는 공통점은 또 다른 생경한 감상을 전해준다.

p214

자신이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어디든 전쟁이 이끄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우연찮게 2차 대전을 관통하는 소설을 연달아 읽고 있는데, 최상민에 관한 작가의 표현을 보며 오랜 기간 한 작품을 위해 분투했다는 뒷 이야기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p426

그에게는 이름이 많았다. 조선 이름은 최상민, 부산에서 일본인들이 그에게 억지로 지어준 이름은 산야 아키라, 지금 이곳의 간수들이 그를 부르는 오스트레일리아 이름은 고아나.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의 연애사 보다는 2차 대전 당시의 환태평양 국가들이 해소하지 못한 복잡하고 내밀한 사연을 다층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 더 인상적이었다.

#먼북으로가는좁은길 #thenarrowroadtothedeepnorth #리처드플래너건 #richardflanagan #오스트레일리아 #문학동네 #영미문학 #맨부커상 #manbookerprize #책 #독서

매거진의 이전글 68 『파친코』 - 이민진, min jin le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