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시작은 총소리가 아니다.

정훈장교로서 다시 묻는 정신전력의 본질

by 윤수호

전쟁은 언제 시작되는가.

첫 포성이 울릴 때?

총구가 적을 향할 때?


아니다.

전쟁은 그보다 훨씬 전에 시작된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각과 가치가 부딪히는 순간부터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무엇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지킬 것인가?

정훈장교로서 내가 매 교육에서 던지는

이 질문은 군인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장병의 내면 깊숙한 곳을 일깨우고,

정체성과 사명감을 자각하게 만드며,

군의 존재와 목적을 자각시켜주는

정신전력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정신전력이란 무엇인가

–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묻다


정신교육지도지침서는 정신전력을

“장병들이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하고, 엄정한 군기, 충천된 사기, 공고화된 단결을 통해 부여된 임무를 책임지고 완수할 수 있는 조직화된 전투역량”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는 군 조직이 갖춰야 할 내면의 전투태세를 잘 설명하고 있지만, 교육 현장에서 장병들이 실제로 공감하고 체화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만큼 정신전력은 이해가 아니라 납득과 내면화가 필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나는 교육 현장에서 이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신전력이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단순한 과제가 아니다.

자신의 삶과 임무, 가치관을 돌아보게 하는 내면의 대화이며, 동료 간 공감을 이끌어내는 시작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장병들은 각자의 언어로 정신전력을 새롭게 정의해 낸다.


정신전력을 설명하는 은유들 – 장병의 언어로

“배터리 같아요. 방전되면 충전해야 하잖아요. 사기와 정신도 마찬가지예요.”
“김치냉장고요. 정신은 바로 쓰는 게 아니라 익혀야 해요. 숙성될수록 깊어지죠.”
“산소 같아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없으면 무너져요. 정신전력도 그런 거예요.”
“가스라이팅이요. 나쁜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 믿고 따를 수 있게 설득하고 이끄는 힘이에요.”
“레고 블록이요. 책임감, 전우애, 명예 같은 조각들이 하나씩 쌓이면서 내 정신이 만들어지는 거죠.”
“운전 내비게이션 같아요.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기준이니까요.”


이렇듯 자기 경험에서 비롯된 정의는 단순한 이해를 넘어서 ‘공감할 수 있는 전력’이 되고, 동료와 공유되는 순간, 정신전력은 개인의 신념을 넘어서 조직의 무형전력으로 확장된다.


왜 공감과 공유가 중요한가?


공감은 전우 간의 신뢰를 만들고,

공유는 공동의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정신적 일치를 가능하게 한다. 정신전력은 단지 개인의 의지를 넘어, 공동체가 함께 지킬 수 있는 ‘신념의 언어’여야 한다.




우리는 북한보다 정신전력이 강한가?


북한은 생애 전반에 걸친 사상교육과 집단 세뇌를 통해

강력한 무형전력을 체계화해 왔다.


반면 우리는 다양성과 자율성이 존중되는 사회 안에서

개인의 가치관이 자유롭게 형성된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질문도 나온다.


“과연 우리가 북한보다 정신전력이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MZ세대 장병들 사이에서 군 조직문화에 대한 거부감, 개인 중심의 태도, 낮은 공동체 의식이 정신전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목함지뢰 사건 이후, 자발적으로 전역을 연기한 장병,
예비군들이 SNS에서 자발적으로 안보 의식을 공유하는 모습,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았던 역사적 응집력


이런 사례는 우리의 정신전력이 수동적 세뇌가 아닌,

자율적 공감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북한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는 ’지시된 충성’이 아니라,

‘자발적 납득과 공유를 바탕으로 한 신념’을 무장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북한보다 정신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는 이유다.


정신전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


우리는 뛰어난 지휘통제 시스템, 연합작전 능력, 첨단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그것들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힘.

정신전력이야말로 전장을 지탱하고,

포화 속에서도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게 만드는 마지막 힘이다.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신념이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은 무기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정신, 그리고 그 정신을 공감하고 공유하는 힘일 것이다.


마지막 질문

– 무엇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지킬 것인가


정신전력 교육의 목표는 단 하나다.

이 질문에 자기 언어로 답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나는 무엇을 지키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로부터 지키는 존재인가?
나는 어떻게 싸울 것인가?


이 질문은 단지 교육이 아니라, 존재의 목적을 다시 묻는 여정이다.


그 여정 속에서 만들어지는 각자의 정신전력은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방패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방패는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전우들의 가슴속에서 결코 흔들림 없이 사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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