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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인생을 읽는 새로운 리터러시!

by 윤근관쫑아빠

조만간 은퇴를 앞둔 지금, 나는 '인생 2.0'을 준비해야 한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터러시(literacy)'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리터러시라고 하면 보통 읽기와 쓰기 능력을 떠올리지만, 21세기의 리터러시는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디지털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금융 리터러시, 건강 리터러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읽고 해석하고 활용하는 능력'들이다. 은퇴를 앞둔 내가 앞으로 20-30년을 더 살아가려면, 이런 새로운 리터러시들을 익혀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 변하지 않는 나의 정체성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흐른다(Panta Rhei)"라고 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그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내가 은퇴할 몇 년 후의 세상은 지금과도 많이 다를 것이고, 그 이후의 세상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한다고 해서 나의 정체성까지 완전히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급변하는 세상에서 나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제2의 인생을 위한 리터러시'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나는 33년간 도덕과 윤리를 가르쳐온 교사다. 이 경험과 가치관은 나의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이런 가치관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전달해야 한다. SNS를 통해 젊은 세대와 소통할 수도 있고,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 인생 경험을 나눌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방법이 바뀌는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된다는 것

요즘 중학교에서 수업하면서 만나는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 같은 50대도 '디지털 이민자'에서 '디지털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젊은 세대만큼 빠르고 자연스럽게 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배우고 적응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최근의 가장 큰 변화는 인공지능 도구들을 조금씩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직접 써보니 생각보다 유용했다. 번역기를 이용해서 해외 뉴스를 읽어보기도 하고, AI 도구를 활용해서 은퇴 계획을 세우는 데도 도움을 받고 있다.

물론 모든 기술을 다 익힐 필요는 없다. 내게 필요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선별해서 배우면 된다. 중요한 건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평생학습자로서의 자세

은퇴 후에도 계속 배워야 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라 기회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에 매몰되어 있을 때는 정작 내가 배우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진짜 내가 원하는 것들을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다.

요즘 관심을 갖게 된 분야 중 하나가 '금융 리터러시'다. 그동안은 월급쟁이로 살면서 단순하게 적금이나 예금에만 의존해 왔는데, 은퇴 후 20-30년을 살아가려면 좀 더 체계적인 재정관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투자나 자산관리에 대한 책들을 읽고, 온라인 강의도 듣고 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차근차근 배워가고 있다.

건강 리터러시도 중요하다. 50대 중반이 되니까 몸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단순히 운동만 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건강검진 결과를 제대로 해석하는 법부터 시작해서, 영양학, 운동생리학 같은 것들도 조금씩 공부하고 있다.

또한, 미디어 리터러시는 특히 중요하다. 요즘처럼 가짜뉴스가 많고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정보를 제대로 걸러내고 판단하는 능력이 필수다.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가르쳐왔지만, 정작 나 자신도 SNS나 온라인 정보에 쉽게 휘둘릴 때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세상에 넘쳐나는 수없이 많고 다양한 정보들 속에서 진짜 정보를 걸러내고 나만의 중심적인 가치관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러한 미디어 리터러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소통의 새로운 방식 익히기

리터러시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소통'이다. 은퇴 후에는 다양한 세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런데 각 세대마다 소통 방식이 다르다. 내 또래와는 전화나 대면 만남을 선호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메신저나 SNS를 통한 소통에 더 익숙하다.

처음에는 "왜 전화 한 통이면 될 일을 메신저로 이렇게 복잡하게 하나" 싶었는데, 막상 써보니 나름의 장점이 있더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할 수 있고, 사진이나 링크를 쉽게 공유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시간을 존중하는 소통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최근에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활성화되었던 온라인 화상회의도 경험해보고 있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같이 강의를 듣고 새로운 언어를 공부하면서 처음에는 화면에 내 얼굴이 나오는 게 어색했지만, 익숙해지니까 그럭저럭 봐줄 만하기는 하다. 멀리 사는 친구들과도 쉽게 만날 수 있고, 다양한 온라인 만남이나 세미나에도 참여할 수 있다.


지혜와 기술의 균형

고대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에피스테메(episteme)', '테크네(techne)', '프로네시스(phronesis)'로 구분했다. 에피스테메는 보편적 지식, 테크네는 기술이나 기예, 프로네시스는 실천적 지혜를 의미한다. 새로운 리터러시를 기르는 과정에서도 이 세 가지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새로운 기술(테크네)만 익히는 게 아니라, 그 기술이 기반하는 원리(에피스테메)를 이해하고, 그것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 판단하는 지혜(프로네시스)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AI 도구를 사용할 때도 그 도구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언제 사용하고 언제 사용하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33년간의 교직 경험이 큰 자산이 된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배운 '배움의 방법'을 나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오랜 인생 경험을 통해 쌓인 지혜를 새로운 기술과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가짐

그러나 새로운 리터러시를 기르는 과정에서 가장 큰 장벽은 뭐니 뭐니 해도 기술적 어려움이 아니라 심리적 저항감이다. "내 나이에 이런 걸 배워서 뭐하나", "젊은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어" 같은 생각들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은퇴 후 20-30년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계속 변화하고 성장해야 한다. 정체되는 순간 뒤처지게 되고, 결국 사회에서 소외될 수 있다. 물론 모든 변화를 다 쫓아갈 필요는 없다. 내게 필요하고 의미 있는 변화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중요한 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일단 해보자" 정신을 50대인 나도 배울 필요가 있다.


나만의 인생 2.0 설계하기

제2의 인생을 위한 리터러시는 결국 나만의 '인생 2.0'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게 아니라, 그 기술들을 활용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은퇴 후에 인생 경험을 나누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러려면 글쓰기 실력도 늘려야 하고, 온라인 플랫폼 활용법도 배워야 한다. 블로그나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새로운 리터러시의 영역이다. 또한 은퇴 후에도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들도 익혀야 한다. 스마트워치로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건강관리 앱을 활용하고, 필요하면 온라인 진료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이런 새로운 리터러시들을 차근차근 익혀가면서, 나만의 인생 2.0을 준비해나가려고 한다. 두렵기도 하지만 설레기도 한다. 33년간 교사로 살아오면서 항상 학생들에게 "평생 배우는 사람이 돼라"라고 말해왔는데, 이제 내가 그 말을 실천할 차례다.


쫑아빠의 인생2.0에서 새로운 또 하나의 페르소나는 배우고 성장하는 '평생학습자 윤근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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