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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Oct 07. 2021

선배의 역할

SNU 행정 토크

난 어릴 적 무협소설을 참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의 정석이나 성문 종합 영어 보다도 내 시간과 마음을 준 책이  바로 동네 만화가게에서 빌린 무협지였다. 그 당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무협지 작가는 와룡생이었다. 나는 와룡생이 천재인 것 만 같았다. 수없이 다양한 무공과 인물들, 그리고 중국 대륙과 일본(당시 무협지에서는 동영이라 했다), 우리나라(동국이라 칭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남만(동남아시아 지역)과 러시아까지 넘어가는 주인공과 얽힌 대장정을 마치 눈에 보이는 듯 생생하게 그려내며 글을 이어갔다. 또한 몇 가지 인지도 모르게 수많은 종류의 무공 비급과 초식들, 소림, 무당에서 남궁세가, 황보세가, 마교, 개방, 하오문까지의 그 많은 문파의 특성과 성격, 특히 몇 개국을 넘나드는 넓은 땅을 오가며 그려내는 인물들, 지역의 특징, 지리와 문화까지 총망라한 스토리를 엮어내는 와룡생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경이로움을 마음속에 늘 갖고 있었다.


만화가게 주인 할머니는 자그마한 체구를 지닌 다부진 분이셨다. 가게 한편 커다란 원형 무쇠판 위에서 쇼팅 기름으로 튀긴 납작 만두를 함께 팔고 계셨는데, 납작 만두 2 접시와 무협지 1질(약 20권 내외 긴 것은 60권)이 나의 몸과 마음에 담는 하루 일용 양식이었다. 매일매일 드나들었고 집으로 빌려와서 적어도 일주일에 한 질은 읽어 대곤 했다. 가게 할머니는 새로운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비닐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로 한쪽 편에 숨겨놓고 내가 오기를 기다려주셨고, 그것을 받아 든 나는 집으로 달려와 새포장을 벗겨서(out boxing)는 밤을 새워 읽고, 다음날 등굣길에 가게 앞 할머니와 내가 정한 자리에 놓아두곤 했다. 우리에겐 묵시적인 도서 반납 코너가 있었다.


당나라 두보가 '남아수독 오거수'라 했던가? 책을 일생에 다섯 수레는 읽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마도 무협소설로만 본다면 나도 그쯤음 충분히 읽었던 것 같다. 덕분에 속독을 익혔고 지금도 그 버릇 때문에 속독을 좋아해서 웬만한 책 한 권은 하루 만에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놓치는 부분이 많아 같은 책 한 권을 여러 번 보게 된다. 이런 와중에 다시 볼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하여 반복되는 즐거움에 내가 중독된 듯하다. 그 무협지들 속에서 내가 발견하고 가슴속에 깊이 남은 구절이 '장강의 뒷 물이 앞물을 밀어낸다'라는 구절이다.


장강의 뒷 물이 앞물을 밀어내는 것은 당연하다. 나보다 뛰어난 후배가 나를 앞설 때 가장 기분이 가장 좋고 난 아마도 거기에서 일종의 희열을 느낀다.  마음속에 '이것이다, 그래 이거야. 이것이 전통이고 이것이 계승되어야 우리 행정 쟁이들이 발전한다'라고 생각하며 쾌재를 부르게 된다. 후배에게 떠밀릴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내주고 바통을 넘겨주며 등을 힘차게 밀어주어야 하는 것이 선배의 역할이다. 그래야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있으며, 그것이 미래를 밝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선배는 후배의 자양분이 되어야 한다. 후배에게 독배를 마시게 해서는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


대학행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선배는 모든 노력을 다하여 경기를 완주해야 하고, 경기장 밖을 나와서도(은퇴) 후배들이 역주하는 모습을 관심을 지니고 끝까지 지켜봐 주어야 한다. 그리고 후배가 완주를 마치고 학교 교문을 나설 때, 고생했다 등 두들겨 주고 반갑게 앉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선배의 역할이다.


나에게는 나를 뛰어넘는 후배가 있다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며 영광이다.

It's my honor to meet you my gu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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