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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Oct 15. 2021

아끼는 후배

내 등을 바라보는 사람들

아끼는 후배라는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오늘 후배의 사무실을 2년 만에 찾아갔다.  다른 이들은 이곳을 이○○ 총장실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홍○사무실이라고 부른다. 오늘 후배 ○○ 사무실을 찾았다. 후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2년여 동안 얼굴도 비치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난 이유를 설명하자  화를 낸다. 왜 그렇게 사람을 오해하게 만드냐고... 


나는 '글쎄다... 사내가 선배가 되어서 어찌 창피하게 주절주절 핑계를 대며, 다 얘기하고 지내냐?' 했더니, 더 화를 낸다. 왜 그렇게 사느냐. 왜 그렇게 남들에게 오해받고 그러냐. 그런데, 그 순간 이렇게 화를 내는 후배의 마음이 느껴진다. 아마도  후배는 나를 많이 아끼는 모양이다. 마음에 내가 안타까워 화를 내는 것이 고마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 후배는 내가 정말로 아끼는 후배다. 그에게 내 처지를 솔직히 얘기하지 못한 후회가 잠시 들었지만, 나는 그에게 나의 아픔과 짐을 나누짊어지게 하고픈 생각 없다. 내가 비록 부실한 몸을 가졌어도, 내가 그의 아픔과 짐을 덜어줄 수는 있어도, 내 아픔과 내 짐을 그 후배에게얹혀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를 정말로  아끼는 선배이기...


아마도 내가 부족해서,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신뢰의 마음을 전해주지 못했다는, 책임후회가 있을 뿐이다. 역시, 여전히  부족한 선배이다.


내가 우리 대학에서 바라는 꿈은, 후배가 잘 사는 세상이다. 나는 진심으로 이 대학에서 후배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서울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SNU 살사들이, 서로서로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나누며 살아가길  바란다. 서울대와 살사들은 내가 정말 아끼는 후배들이자, 세상 살아가며 만난 귀한 동료들이다.




예전에  '등을 맡길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것은 아마도 본인이 다른 이 상당히 믿을 수 있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자신의 등을 맡긴다는 얘기는, 흔히 말해서 등에 칼을 꼽지 않을 사람이라는 믿음에서 나온 말이다. 전 전적으로 신임한다는 말인데, 나는 이 말에 약간 다른 의견이 있다.


세상에 등을 맡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등을 보여줄 사람은 너무도 많다. 나는 내 등을 바라보는 사람을 좋아한다. 솔직히 나는 등을 보는 사람을 미워한 적이 없다. 어떤 경우, 설사 누군가가 내 등에 칼을 꼽았어도, 내가 그의  등을 토닥거려 었던 것은, 그것이 그의 판단이고 그의 선택이었기 때문이고, 그 선택은 그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그를 미워할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그에게 여전히 내 상처 난 등을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믿는다. 그들 모두는 내가 아껴야 할 후배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지금 우리 대학의 엉클어진 멍에'를 맡길 생각은 없다. 다만 내 등을 예전처럼, 지금처럼 바라봐 주면 좋겠다. 내 등을 바라(?) 보며 살아가는 그들 모두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후배들이고 우리 대학에 꼭 필요한 내가 아끼는 후배들이다.


그래서 우리 대학에서 35년을 지낸 나는 막 입사한 신규 직원이 제일 무섭다. 내가 무서운 사람은 총장님도 부총장님도 그리고 국장님이 아닌 신규 후배이다. 나도 선배들의 뒷모습을 보고 살 왔다. 때로는 선배들의 뒤에 서서 이런저런 쑥덕거림과 욕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늘 누리는 것은 그들의 차지였기에  후배인 나는 선배들이 미운 적이 많았다.


친구 동료들과도 상황은 비슷했다. 어떠한 사안을 두고 대립하거나, 각자의 부서에서 역할을 하느라 아웅 다웅하기도 했고, 심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중 몇몇 과는 정말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끊을 수 없는 진짜 친구가 되었다. 아마 정년을 해도 우리들의 인연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선배들 역시 그렇다. 산행 모임을 만들고, 자전거 모임. 골프 모임을 만들어, 선배들은 여전히 아웅다웅하며, 우리 대학에서 함께했던 시절의 추억을 서로 나누며, 돈독한 관계를 누리고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서로가 이번 생애의 큰 축복임이 잘 알고 있다.


후배는 다르다. 후배의 눈은 매섭다. 후배의 귀도 너무도 밝다. 또한 후배는 때로는 나에게 치명적인 칼과 화살이 되기도 한다. 그 화살에 찔려 심각한 상처를 입은 적도 있다. 그렇게 후배들은 늘 나를 감시하고 있으며, 그들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비판하고 있다. 나는 그런 그들이 좋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욕한 적이 없다.


내 뒤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내게 욕을 던지던 칭찬을 하던, 아마도 그것은 우리 후배들이 그 자신은 완성하는데 그리고 우리 대학을  완성하는 데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선배들의 유산을 써왔고 또한 내 후배들도 그렇게 써가 길 기대하고 있다. 내가 미워 한 대상은, 내가 부러워한 대상은 후배가 아닌 총장님을 포함한 모든 선배들 애들이었다.




나는 후배들이 자랑스럽다. 특히, 요즘 들어오는 후배들은 정말로 그 빛이 찬란함을 느낀다. 다만 그중 극소수의 불량품이 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불량률은 어디에나 있다. 초일류 기업을 대변하는 삼성전자 역시 불량률은 20프로 내외가 된다. 우리 대학은 거기에 비하면 훨씬 월등한 셈이다. 우리 대학의 불량률은 적어도 내 눈에는 5프로 미만으로 보인다.


적어도 사람을 생각하며 35년을 대학에서 지내온 한 인사 쟁이의 에는 그렇게 보인다.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이 훌륭한 후배들을 두고 나는 떠난다. 내가 그들에게 짐을 맡기기는 것을 누구 보다도 싫어하기에 남은 과제 이들에게 맡기는 것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내 결론은 '맡기자'로 했다. 그들도 또 누군가의 선배이니, 선배가 할 일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나의 변명이자 결론이다. 그들이 내가 떠난 다음 날, 내 짐을 바로 산산조각 내고, 새로운 그들만의 짐을 꾸려서 길을 떠나게 될 것 임을 확신하기에, 더럽고 너덜너덜 헤 나의 짐을 맡아 내 대신 버려 달라마지막 부탁을 그들에게 한다.


 나는 그들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이곳 SNU를 떠나는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곳에서 정말 행복한 35년을 지냈고, 또한 나가서도 그 후광으로  또 다른 삼십여 년을 운 좋게 지낼지 모른다.


아니, 나는 그러길 희망한다.

내 안에는 늘 SNU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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