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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May 21. 2024

들장미 대문이 있는 집

어릴 적부터 남의 집 대문을 유심히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바라보는 게 아니라 훔쳐보았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농사일이 전부인 시골집들은 양철로 만든 대문이 그저 그렇게 세워져 있지만 어린 내가 바라보는 것은 집의 구조나 크기를  보는 게 아니다. 그 집에 나랑 놀만한 친구가 있는가를 살피는게 아니다.


 남의 대문을 훔쳐보던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도 사그라지지 않는다.

남들이 보면 의심의 눈초리일 수 있지만, 난 꼭 찾고 싶은 집, 찾고 싶은 대문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들장미를 아치형으로 엮어 만든 집.

들장미 울타리가 있는 집. 

마당에 화단이 곱게 가꾸어진 집. 그런 집을 찾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들장미 만발한 집들을 만나면 똑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대문엔 들장미 아치를 세워두었뿐만 아니라 울타리를 빙 둘러 장미를 심어놓고, 화단에는 온갖 꽃들이 자잘하게 피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난 그런 집을 찾고 싶어  곧바로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먼 동네를 빙둘러서 남의 집 대문을 기웃거리다 들어오곤 했다.


우리 집은 다른 집들에 비해 너무나 작았다. 마당까지 작아서 마땅히 꽃밭을 가꿀만한 땅 한 평이 없었다.

아무리 마당이 작아도 조그만 화단쯤은 있기 미련인데, 엄마는  남아있던 코딱지만 한 땅에다 화초대신 상추, 가지, 오이 등을 심었다. 다른 집 담벼락에는 해바라기나 접시꽃이 얼굴을 환하게 드러낼 때, 우리 집은 호박넝쿨이 어지러이 얽혀서 지붕 위로 올라갔다.


뒤켵, 장독대옆에도  화초대신 토란이 우거져있어 그늘이 졌다.

집 마당에도, 뒤꼍에서도 우리 집은 그 흔한 봉숭아, 채송아조차 볼 수 없었다.

엄마 눈을 피해 토란 그늘 아래에다 몰래 꽃들을 심어놓곤 했지만  가늘게 자라다 꽂을 피우기도 전에  스러졌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뒤켵이지만 푸른 토란은  그나마 잘 자라주었다. 난 장독대 옆에 앉아 바람 결에 토란잎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듣는걸  좋아했다.

당연히 남의 집 마당에 피어있는 오밀조밀한 꽃밭을 보면 그렇게 부럽고 예쁠 수가 없었다.  솎아서 내 버리는 꽃들을 얻어다 상추옆에 심어 놓으면 엄마는 화초 때문에 상추가 자라지 않는다고 바로 뽑아버렸다. 

 봄이 오면 화사한 꽃들이 먼저 사람을 반겨주는 집이 당연히 좋아 보였다. 반면 우리 집은 어둠침침해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점점 싫어졌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등하굣길에 남의 집 대문을 훔쳐보는 이상한 버릇이 생겨났다. 반쯤 열린 대문사이로  화사하게 피어있는 꽃밭을 멍하니 바라보다 개들이 사납게 짖을 때쯤 발길을 옮겼다. 그 몇 걸음 걸으면서도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까지 꽃들에게 눈을 주며 지나갔다.

 

 남의 집 대문을 염탐 아닌 염탐으로 바라본 결과 화단에 여러 꽃들이 심어져 있는 집들은 그리 가난하게 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디까지나 어린 기억 속의 추측일 뿐이지만 대체로  화단을 텃밭으로 이용하는 우리 집보다는 잘 살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꽃밭에는  젊고 자상한 엄마, 아빠가  있었다. 농사일에 찌들지 않은 그런 부모  말이다.


 더 나아가 대문에 아치형으로 들장미가 휘어져 있는 집은 우리네와는 사는 수준이 정말 달랐다.

들장미가 휘어져 있는 집은 그냥 화단이 아니라 구부러진 소나무와 향나무등의 정원수가 아름드리 심어져 있었고, 잔디가 깔려 있었다. 쇠창살이 뾰족이 돋아있는 철문은 언제나 굳게 잠겨 있었다.

나는 쇠창살 틈 사이로 정원을 감상하거나 밖에서 아치형 들장미를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들장미가 아치를 이루는 멋진 양옥집.

읍내에서 양조장과 정미소를 크게 하는 집이었다. 대대로 부자였으며 일제강점기에 적산가옥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그 집 앞엔 보기 드문 검은 승용차가 세워져 있었고, 주말이나 방학이 면 피아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내가 다니던 시골초등학교에는 풍금이 딱 한대뿐이었는데, 피아노가 있는 집이라니.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어 난 눈치도 없이 그 집 앞을 자주 서성거렸다.


자주 들여다보니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가 그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 아이들 서너 명이 함께 놀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자매들 같았다.

그 아이들은 잔디가 깔린 커다란 마당에서만 노닐 뿐,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와 같은 시골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일찌감치 시내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 주말을 이용해서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오는 것 같았다.


꽃 한 송이조차 심을 수 없는 우리 집과 들장미가 아치를 이루며 피어있는 집. 

내가 신고 있는 고무신과 그 아이들의 빨간 구두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새카만 내 얼굴과 그 아이의 복숭아빛 피부에서 처럼 처지가  분명하게 갈렸다.


꽃밭이 아닌 아름드리 정원이 있고 피아노가 있는 집. 리본 달린 원피스를 입고 빨간 구두를 신고 있는 아이가 있는 집. 그 집의 대문은 언제나 굳게 닫혀 있어서 먼 훗날 내가 시골을 떠날 때까지 열리지 않았다.

 

 철문은 굳게 닫혀 있지만 들장미가 활짝 피어 있는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주눅이 들었다. 만약 마당 안에서 놀고 있는 아이가 나를 부른다면  말을 높여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을 했던 것도 같다. 한껏  부러운 눈으로 흐드러진 들장미를 실컷 구경하고서 어둠침한 우리 집으로 들어서면 서글퍼졌다. 작은 꽃들이라도 심어져 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들어서기를 주저했다. 가난하면 꽃 한 포기조차 사치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양옥집 그 아이의 이름이 누군지는 아직도 모른다. 이미 고무신과 구두에서처럼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아이라고 치부했기에 질투나 시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건대, 그 아이들을 부러워했던 것은 아니다.


 허름한 슬레이트집 대신 양옥집을 원했거나 잔디가 깔린 정원을 원한 것이 아니다. 피아노를 원했거나 원피스와 빨간 구두를 원한 것도 아니다. 내 부모와 형제를 바꾸어 부잣집아이로 살아가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우리 작은 꽃밭 하나를 간절히 원했을 뿐이다. 대문에 장미를 심어놓은 그런 집을 이다.


어릴 적, 충족되지 못한 작은 꽃밭은 평생 정서적 결핍으로 남았다.

이 결핍은 끝없는 허기와 갈증 같아서 아무리 값비싼 화분을 들여놔도, 아무리 베란다에 흙을 들이부어 화단을 만들어도 충족되지 않는다.  설사 대형화원을 운영한다손 치더라도 충족될 수 없는 것들이다.  아무리 물을 마시고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바닷물처럼  어릴 적 결핍은 가시지 않는다.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꽃밭을 간절히 원했던 아이는 이미 사라졌기에.


아무렇지 않다가도 들장미 피어나는 오월이 오면  장독대 뒤꼍에서 사그락거리던 토란잎들의 수런거림이 들려온다. 그 소리를 따라 일부러 차를 몰아 낯선 주택가를 찾아간다.

장미가 넝쿨져 있는 집!

그런 집을 평생 갖지 못한 나는 어김없이 장미가  있는 집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어릴 적 결핍을 남의 대문 앞에서 대신 채우려 한다.


 천지가 장미꽃으로 뒤덮여있는 오월에  난 마치 금단 현상을 겪는 사람처럼 온몸을 떤다. 결코 가질 수 없었던 들장미 만발한 집들이 보고 싶어서...  파랗게 그늘져가던 토란들 사이로 가늘게 피어나는 꽃 한 송이를  혹시 만날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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