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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May 14. 2024

초파일 날씨 매우 맑음

독실한 기독교인에게는 예수 탄생의 성탄절을 최고의 가치로 손꼽듯, 불자들에겐 부처님 오신 날이 가장 큰 행사이다.


봉축행사에 앉아 있다가 줄을 서서 비빔밥 한 그릇을 먹는 것으로 끝난다고 쉽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리  달 전부터 작년 초파일의 행사 보고와 문제점등을 살펴보고  위험물 철거, 시설보완, 잡풀제거등을 점검하며 소방서 경찰서에도 공문을 보내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해 놓아야 한다. 


연등은 설날을 지나자마자부터 꽃잎을 비벼서 준비해 놓고 초파일  한 달 전부터 한지등에 붙이는 작업을 한다.

연꽃등 만드는 법은 노보살님들에게 전수받아 서툰 손으로 비비다 보면 어느새 장인이 되고, 다시 새내기 보살에게 전수되는 과정을 통해 면면히 이어 내려오고 있다.  지금은 노보살님들의 발길이 점차 줄고 있어 걱정이다.


사찰의 중심이었던 노 보살님들이 병환과 질병으로 뜸하다가, 낯익은 위패로 지장전에 안치될 때면 세월의 무게를 실감한다. 그 자리를 메꿀만한 젊은 보살님들이 없어서 각 사찰마다 아우성이다. 우리 사찰만 하더라도 중심 인력이 60대 중반에서 70대 초반까지다. 40대는 찾아보기도 힘들고 50대는 20%가 넘지 않는다.


인구 격감현상은 절간에 까지 영향을 미쳐서 스님이 되고자 지원하는 행자님들의 숫자도 현격하게 줄고 있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세월이 흐르는 데로 흘러갈 수밖에.


 하나에서 열까지 접검하고 점검해도 막상 당일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당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날씨가 도와줘야만 행사를 무사히 치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초파일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뜨면  비상사태가 선포된 거나 마찬가지다.


 대웅전 중정에서 쉽게 치를 수 있는 행사가 비가 내리게 되면, 임시방편으로 우비를 입고 우산까지 쓰고 어정쩡하게 봉축행사를 치러야 한다.

공양간에서는 방수 천막을 구해와서 설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몇 배의 일이 추가된다.


폭우가 쏟아진다고 해서  미리 철저히 준비했는데, 봉축 행사 삼십 분 전에 쨍쨍하게 해가 뜬다거나, 반대로 내내 맑았다가 행사를 시작하자마자 폭우가 쏟아질 때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다년간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어 별 탈없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게 수순이다. 수년간의 여러 경험치가 쌓여 어떤 상황에서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행사가 무사히 끝마칠 수 있도록 스님들과, 신도님들 봉사자들이 합심하기 때문이다.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비빔밥이 소진되어 버리면 진짜 낭패다. 이런 때를 대비해 미리 빵과 떡을 대신 전해주며 기다리게 한 후에 국수를 삶아낸다. 한쪽에서는 비워진 비빔밥 그릇을 설거지하고 얼른 육수를 준비하면 30분 안으로 다시 배식을 진행할 수 있다.


작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긴 줄은 계속 이어지고, 육수까지 떨어지자 삶아낸 국수를 큰 양은그릇에 넣고, 고추장양념과 비빔밥 남은 재료를 넣고 설렁설렁 비벼낸 비빔국수가 신의 한 수였다. 간 볼 새도 없이 막 비벼서 내놓았는데 최고의 손 맛을 자랑하게 되었다.

절간에서 국수는 아주 빠르게 대체할 수 있는 비상식량이나 마찬가지다.


큰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큰 그림으로 봤을 때는 별 탈 없이 무사히 마쳤지만 미흡하고 부족한 부분들이 있기도 해서 자책을 하곤 한다.
그래서 또 다짐한다. 내년 초파일에는 이러저러한 부분을 개선해서

진짜 더 예쁘고 아름답게,

 맛있고 풍족하게,

더 웃으며 다정하게,

최고의 날을 만들 터이니 건강만 하시라고! 건강 관리 잘해서 내년에 또다시 뭉쳐서  완벽한 행사를 치러보자고 모두 술잔대신 찻잔을 들고 건배를 한다.


종무소의 청일점!

훤칠한 오 00 신입 과장이 심플한 건배사를 외친다.
00사 파이팅!


갑진년 부처님 오신 날의 날씨는 매우 맑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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