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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Apr 30. 2024

호암 미술관을 가다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지난 수요일,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기 위해 단체버스에 몸을 실었다. 우리 사찰의 주지스님께서는 명문 00대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공부를 많이 하신  특출한 학승學僧이시다.

 

틈나는 대 신도님들과  박물관, 오페라공연, 다양한 문화 예술을 함께 하며, 매년마다 산사음악회를 개최하여 사찰음식과 불교문화를 널리 펼쳐 보이고 계신다. 탄핵집회가 한창일 때는 서울로 상경하여 신도들과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 주지스님이 오늘처럼 전시회에  함께하자고 말씀하시면 호응도가 아주 높다. 선착순이라서 경쟁 아닌 경쟁이 치열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 점심까지 포함하여 인당 십만 원의 접수비를 냈다.

<전시기간: 2024년 3,27~6,16일까지>

관람 에티켓 공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주지스님께서는 우리들을 불러 세웠다. 자칫  시골 보살들이 전시회장에서 실수라도 할까 봐  오늘 전시회에 오게 된 이유와 관람 에티켓을 공지해 주셨다.


"신도님들~우선 관람하기 전에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한 번이라도 와 보신 분, 손 한 번 들어주세요? 아무도 없어요? 이런~ 이런~~.


오늘 초파일 앞두고 만사를 제치고 네 시간을 달려이유는, 호암 미술관 개관 이후(1982년) 가히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받고 있는 백제의 미소라고 명명한 백제관음보살 입상이 국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다고 해서 함께 와봤습니다.


어느 전시회에 가든지 간에 무작정 우르르 들어가서 예술품을 대충보다 나오는 것은 전시회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가장 먼저 도록을 꼭 구입해서 읽어보십시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면서 보셔야만 제대로 볼수있어요.


 작품을 볼 때는 1m 50cm 정도 떨어진 상태에서 바라보시고 세밀히 관찰하고자 할 때는 다른 관람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감각을 열고 내면의 눈으로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한 작품당 1분~1분 30초 정도의 시간을 두시고 천천히 바라보면서 깊은 사유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지스님

 


진흙에 물들지 않는 바람처럼(금동관음 보살입상)

호암 미술관은 故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살아생전, 삼십 년에 걸쳐 수집한 소장품등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자 전통 정원을 꾸며 1982년, 용인 에버랜드 옆에 개관하였다. 개관이래  처음으로 <동아시아 불교 미술>을 주제로 준비한 불상과 그림, 자수불화 등을 전시했다.


불교 미술품에 담긴 여성들의 공덕과 헌신등을 담아 1부 다시 나타나는 여성, 2부 여성의 행원, 으로 주제를 정했으며 불화, 불상, 자수불화, 스님가사등을  1~ 2층으로 나누어 전시되었다.


주지스님께서는 무엇보다 이 한 작품(금동관음보살 입상)을 보기 위해서 일정을 감행했다고 말씀하셨다. 국내 최초로 전시된 이 작품은 백제 7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인이 나당 연합군에 패해 부여성을 버리고 도주할 당시, 꼭 백제의 땅을 다시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구거(옛 도랑 있는 길)에 수많은 유물들을 묻어두고 갔다고 한다.


그러다 1907년(일제강점기)무렵,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호미에 걸리는 게 있어서 흙을 걷어내니 무쇠솥단지(백제인이 도주하면서 산야에서 밥을 해 먹는 용도)가 보였고 그 안을 살펴보니 고이 숨겨둔 금동관음 보살상이 들어있었다.


이렇게 해서 땅속에 파묻혀 있던 찬란한 백제의 미소가 세상에 드러나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는 비화를 말씀해 주셨다.

덧붙여서 '지금도 백제의 왕실 주변의 밭을 파보면 이런 예술품들이 땅속에 묻혀있으니 생각 있으신 분들은 호미 한 자루부터 구입하시길 바란다' 하시며 전시회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계 갑부의 티 안나는, 갑부 정원

주지스님의 첫 당부 말씀처럼 전시회를 관람하기 전과 후는 확연히 달랐다.

불자라고 해서 불교를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자기 깜냥에, 아는 만큼만 보이는 것은 진리이다.


용인하면 에버랜드를 손꼽지만 바로 그 옆에 자리한  호암미술관 까지는 발걸음이 못 미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호암 미술관은 한가로운 편이다. 온라인 예약제로 신청을 받다 보니 정해진 인원 외에는 관람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방문한 날에는 일본인들이 의외로 많이 오셨고, 순천 송광사 사미스님들의 단체 관람이 눈에 띄었다.


 삼삼오오 흩어져 방금 전, 전시회에서 보았던 감흥을 되새기며 정원을 거닐었다. 세계적 글로벌 그룹인 삼성에서 만든 미술관 치고는 정원이 화려하거나 아름드리나무들이 우거진 것은 아니었다. 이병철 회장이 구입한 옛 조각품들이 군데군데 소박하게 놓여 있었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한국의 전형적인 들꽃과 식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갑부의 정원은 갑부의 티가 나지 않게? 한국의 전형적인 소박한 조각품들로 세밀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흙바닥을 신발을 벗고 관람할 정도의 위압감이나 이질감 없어서 좋았다.  

전주 맛집보다 훨씬 낫다(절돈절산)

제 아무리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벽화가 전시된다 해도 그날 그 주변에서 먹은 음식이 맛이 없으면 두고두고 욕을 먹는다. 방금 전 감탄해 마지않던 예술품까지 찬물이 끼얹혀서 사그라든다.  그 지역의 음식이 맛있어야만 예술의 감동이 배가된다. 그래서 금상첨화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서 첫 예약한 식당이 휴무날이라 긴급수배된 식당은 만족도가 최상급이었다. 오늘 동참한 보살님들은 전주에서 내로라하는 사찰음식의 대가들이시다. 어지간한 음식으로는 이 대보살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한다.

콩나물 국밥으로 대통령 상은 물론 백 년 가게로 선정된 명인도 함께했는데, 그 자존심을 누르고 엄지 척을 들어주었다.


참누리 1인당 26,000원짜리주문(회비 십만원에 포함) 했는데 이구동성으로 전국 제일, 맛의 고장이라는 전주의 웬만한 식당보다 퀄리티, 가격, 반찬, 샐프바, 모든 면에서 비교가 되었다. 점점 맛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는 시점인 것 같다.

이구동성으로 이제 전주가 더 이상 맛집이 아니라는 위기감을 감지했다.

 

소풍처럼 가볍게 나섰던 호암미술관 전시회에서 화창한 봄 날을 한 아름 선물을 가득 안고 돌아온 느낌이다. 철저히 아는 만큼만 보이는 나의 사유에 안 눈금 더 커지는 하루였다.


곧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부처님 말씀을 다시 한번 새겨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소리에 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불교경전 숫타니파타 제1장 4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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