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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Apr 23. 2024

 아지 아줌마

 "생선 사이소~"


아줌마의 목소리가 저 멀리에서부터 들려오면 나는 밥 숟가락을 내 던지며 달음질쳤다.

나를 깡깡 시골에서 도회지로 데려다 키워줄, 유일한 여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어서 빨리, 아줌마가 나를 데려가 동화 속 공주로 변신시켜 주기만을 기다렸다.

 어쩌다 엄마의 구박이 심해지서럽게 울면서 아줌마를 그리워했다.


‘지금의 내 엄마는 사실 진짜 엄마가 아니며, 아줌마가 잠시 나를  집에  맡겨 둔 걸 거야.'


영악한 상상을 꿈꾸며 잠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줌마는 다른 집에서와는 달리 과자며 사탕, 색색의 머리핀과 학용품을 내게 내밀어 주셨다. 그리고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 어린것이 비린 것을 못 먹어서 저렇게 마르는겨.잘 거둬 먹이라고 엄마에게 역정을 다.


엄마와 아줌마를 번갈아 찬찬히 살펴보면 확실히 나는  아줌마를 더 많이 닮아 보였다. 재 투성이 병아리를 화려한 공작으로 만들어 줄 거라고 믿으며

 어린 나로 하여금 음흉한 반란과 혼란을 일으키게 했던 그 아줌마.


그녀는 간 갈치, 간 고등어, 꽁치, 명태를 옹자배기에 이고 다니면서 이 마을 저 마을로 생선을 팔러 다녔다. 다른 생선들보다 주로 아지를 많이 가지고 다녔다. 그래서 다들 아지 아줌마라고 불렀다.

 

집안에 생선이 좀 남았더라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단 몇 마리라도 갈아 주는 게 시골인심 아니던가. 홀몸으로 어린 남매를 키운다고 들었지만 내 눈에는 생선장사로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보였다. 눈독을 들이던, 아줌마의 전대는 꾸깃한 지폐들로 배가 불룩 나와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애경사에 쓰일 생선만큼은 반드시 쌀로  대신했다. 

 한되. 두되, 석되, 넉되.....   하얀 쌀이 주르르  들어갈 때면 자루 중앙 한쪽을 앙 물고 있던 아줌마의 앞 금니 이빨도 덩달아 반짝거렸다. 

밤늦도록 기다리고 있을 남매에게 뜨끈뜨끈한 쌀밥을 먹이고 싶은 마음을 금이빨이 먼저 알아챈 듯했다. 


 시골 인심이라고 해서 꼭 훈훈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리발을 내밀며 배짱을 튕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애를 먹었고, 생선을 팔다가 막차를 놓치게 되는 날이 우리 집에서 새우잠을 잤다.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배고픔에 떨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어디 잠인들 제대로  수나 있었겠는지.


그런 날이면, 엄마와 마루에 나앉아 밤늦도록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의 각별한 인정을 나를 위한 작은 선물들로 대신했는데, 난 그걸 모르고 아줌마의 전대만을 힐끔거렸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아줌마의 머리를 보고야 말았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그 위에  단단한 볏짚으로 만든 둥근 똬리를 받쳐 무거운 생선옹자배기를 이고 다녔는데, 생선을 내리면서 머릿수건이 흘러내렸다. 


 오랜 세월을 무거운 생선과 잡곡들을 이고 다닌  똬리를 받친 정수리 맨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내 손바닥만큼의 머리카락이 뭉텅 빠져있었다. 

 어린 눈에 비친  닳아진 민둥머리는 참으로 많고 많은 말을 하는 듯했다. 


 깊숙한 마을로 들어갈수록 생선이 팔리다 보니 무거운 생선을 머리에 이고서 ‘생선 사이소~  외치며 걸어 다니던 아줌마. 내 어머니 같은 분. 

 나운 개와  변덕스러운 날씨에 쫓겨가며 살아온 세월을, 둥그런 맨살이 대신 말해주었다.


비밀의 상자를 열어버린 나는 더 이상 아줌마를 기다리지 않았다. 반갑게 내 이름을 부르면  고개만 까딱, 인사를 한 뒤, 자리를 피했다. 멀리서  빨간 옹자배기만 보여도 내달렸던 내가 돌변한 듯 서먹하게 대하자 아줌마의 눈빛이 슬픔에 잠기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 형님, 내 몸에서 생선 냄새가 많이 나는가요?"


    "아니여, 쟈가 클라고 그려."


엄마는 아줌마가 무안할까 봐 다른 말로 둘러 댔다. 그날 저녁, 다른 날보다 도톰하게 살이 오른 고등어 무조림이 밥상에 올라왔지만 난 입에 대지 않았다. 심통 난 얼굴로 사납게 밥그릇을 긁었다. 아줌마는 언제나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들어섰지만 나는 방문만 삐꼼 열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했다.


 엄마는 '어른한테 무슨 버르장머리 없는 짓이냐, '며 기어매를 들었다.

나는 잘못했다는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 매를 다 맞았다. 엄마는 어린것이 고집을 부린다면서 더 세게 종아리에 매질을 했다.

입술을 깨물며 눈물만 철철 흘렸다. 아파서가 아니라 내 꿈이 영영 사라져 버린 슬픔으로...


 집집마다 냉장고가  놓이면서 아줌마의 발걸음은 차츰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수금도 할 겸 해서 다시 생선을 이고 온 아줌마는 우리 마을을 나서자마자 뇌출혈로 쓰러졌다. 병원에 입원 중이지만 오래 살 것 같진 않다고 어른들끼리 눈물을 찍어내며 쑤근거렸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듯 그 후 아지 아줌마를 영영 볼 수 없게 되었다.     


어린 날, 유독 짜디짠 소금 맛으로 밖에는 기억나지 않던 간생선을 어른이 되어서는 절대로 입에 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사람의 입은 간사하고 또 간사한지라 얼음무더기에서 펄떡거리는 생선보다 한 귀퉁이로 밀려난 간 생선’에 번번이 손이 가곤 한다.


 어머니께서 아궁이 불에다 노릇노릇 구워주던 생선맛은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게 되었지만 간 생선에서 지금은 얼굴도 가물한 아지 아줌마의 고단한 삶을 가끔 느끼곤 한다.

 어쩌면 어릴 적 내가 나중 커서 만나게 될 세상이 생선살처럼 부드럽고 고소하고 담백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나는 이미 혀 끝에 닿은 짜디 짠 소금에서부터 절절히 직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먼 십리길을 생선을 이고 다니던 나의 예쁜 아지아줌마.

머리숱이 뭉텅 빠지도록 무거운 곡식과 남은 생선을 무겁게 이고서, 노을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아줌마의 모습이 어린 날 슬픈 그림으로 내게 남겨졌다.

그 뒷그림자가 꼭, 지금의 내 모습과 닮은듯하여 가슴에 굵은소금이 뿌려진 양 아려온다.


※아지(일본이름)는 전갱이로 불리며, 등 고등어 청어 삼치와 함께 등 푸른 생선으로 꼽힌다. 주로 고급 초밥 재료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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