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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Apr 16. 2024

세개의 도장

일단 그녀는 참 예쁘게 생겼다. 

 칠십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세련된 미모를 한껏 뽐내며  조그만 시골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노래와 춤은 물론, 손끝까 야무져서 그녀의 바느질을 거친 옷들은 한 번쯤 뒤 돌아볼 정도로 멋지게 재 탄생한다.


겉으로 보면, 화려한 중년으로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녀에겐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그녀 나이 스물두 살, 열여섯 살 연상의 직장 상사와 얼떨결에 결혼을 다. 갓 입사한 사회 초년생에게 실무를 알려준다며 접근하여 넉 달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 4개월이 그녀의 유일한 직장 생활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온갖 달콤한 말로 홀려놓은 동화 속 궁전이 아니라 고철이 쌓여있는 고물상이었다. 고급 신혼집을  마련해 두었다면서 함께 구경을 갔던 집은 비어있는 누나의 아파트였다.


고철에 둘러싸인 비닐하우스가 신혼 방이라는 것도 기가 찰 노릇인데, 시부모님과 함께 나란히 누워 지내야 한다는 사실에 또다시 경악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녀가 월급을 쥐어볼 틈도 없이 갑작스러운 결혼으로 세간살이를 마련하느라 친정에서는 큰 빚을 졌기 때문이다. 


남자는'지금은 재개발 딱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이렇게 사는 것뿐이니, 조금만 참으면  금싸라기 땅으로 뛰어오를 것'이라며 온갖 감언이설로 그녀를 회유했다.


혼수 살림으로 준비한 값비싼 세탁기는 손빨래를 해야 오래 입는다는 이유로 돈으로 바뀌었고, 신접살림들은 비닐하우스 안에 들여놓지도 못한 채 한동안 비를 맞고 있다가 중고로 팔려나갔다.


그때, 어린 신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복종하는 일뿐.  남편과 시부모는 바람난다는 이유를 들어, 밖에서 비닐하우스 문을 걸어 잠그고 외출  도로 감금된 노예나 다름없었다.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괴팍스러운 시부모님과 고물상 일을 거들며 지내는 사이  눈부신 이십 대의 아름다움은  마당에 잔뜩 쌓인 고철들과 함께  녹슬어져만 다.


얇은 커튼을 가림막 삼아 시부모와  나란히 누워 지내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한밤중, 시아버지의 요강에 오줌 누는 소리는 징그럽다 못해 헛구역질이 올라와 두꺼운 이불로 입을 틀어막았다.


 부모님이 옆에 누워있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서 짐승처럼 덤벼드는 남편을 거절할 때면 그대로 머리채를 잡혀 끌려나가 흙 마당에 내동댕이 쳐지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무자비한 욕설과  폭력은 그녀를 저항조차 못하게 만들었다. 으레 매 맞고 사는 여자로 당연시되었고, 거듭된 유산으로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모진 수모와 박대, 욕설과 폭력 속에서 고철쓰레기에서 나오는 부품들을 골라내며  지내던 십 년 여 세월.

 어느 날 '그동안 고생했으니, 친정집에 가서 푹 쉬었다 오라'는 시부모의 친절한 제의에  난생처음 감격을 했다.

가볍게 짐을 꾸린

 그녀가 친정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이 시어머니가 친정집에 전화를 걸어왔다.

다짜고짜 '며느리가 숨겨놓은 남자와 내통하여 돈을 빼돌려서 집을 나갔다'면서 다시는 이 집에 발도 들여놓지 말라'며 고래고래 악을 썼다.


그 바람에 위자료는커녕 화냥년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이혼’이라는 첫 번째 도장을 찍었다. 


그녀 나이 고작 서른다섯이었다.

알고 보니

남편에겐 오래전부터 또 다른 여자가 생겼으며 둘 사이에서 이미 사내아이까지 낳았다고 했다. 시부모는 그토록 원하던 재개발 계획이 가시화되면서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는 소문이 함께 들려왔다.


이혼은 오히려 그녀에게 해방이자 탈출구나 다름없었다.

워낙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아서인지, 금방 돈이 모아 졌다. 그 돈으로 미용실을 개업했다. 밀려드는 손님들로 그녀의 손에서는 가위가 떨어지지 않았다. 미용실이 안정되면서  예전의 풋풋한 모습을 점차 되찾았다.


시댁과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이혼을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대신할 즈음, 어린 청년이 찾아왔다.


공손하고 예의 바른 청년은 가게 일을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다. 청년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한 그녀는 남동생 대하듯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고, 청년에게 사업 자금으로 조금씩 빌려준 돈이 칠천 여 만원에 가까워지자 청년은 홀연히 종적을 감춰버렸다. 


그녀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경찰서로 달려가 사기죄로 고소를 했다. 사건 전말을 건성건성 듣고 있던 경찰관이 청년의 인적사항을 입력하자마자 갑자기 경찰서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 어린 청년이 놀랍게도 전과 14 범임과 동시에 강력범죄의 주요 지명 수배자였던 것이다. 그녀의 신고로 인해 갑자기 웅덩이에서 고래라도 발견한 듯 형사들은 몇 계급 승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칠세라 비상 작전이 전개되었다. 놀랍도록 신속 정확하게 일주일 만에 청년은 전격 검거 되었다.


잡은 범죄인이 별이 많을수록, 형량이 높게 나올수록, 담당 형사들의 계급이 높아지고, 계급이 높아지면 연봉도 높아지는 이유에서인지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청년이 돈을 갚지 않은 죄는 단순 사기죄밖에 성립되지 않으니, 성폭행, 협박, 폭력, 감금을 당했다고 진술하면 보호감호까지 합하여 십 년을 선고할 수 있어요.
어차피 저런 놈은 사회에 나와도 쓰레기가 될 뿐이니 평생 감옥에서 썩어나가게 합시다.

 형사들은 자기들이 임의로 작성한 진술서에 도장을 찍어달라며 그녀를 설득했다.

돈을 갚지 않은 것 이외에는 나무랄 데 없이 공손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 전과 14 범이라는 사실에  무척 놀랐지만 그녀는 양심을 걸고서 ‘그런 사실 없다’라고 완강히 진술서에 날인을 거부했다.


하나 어찌 된 영문인지 고소인 자격으로 법정에 출두하였을 때에는 ‘그런 사실 있다’라고 바뀌어져 있었다. 이에 그녀는 법정에서 큰소리로 ‘그런 사실 없다. ’라고 조작된 것임을 분명히 밝히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검사는 '둘이서 연인사이였기 때문에 감싸는 것'이라고 조롱을 했다.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검사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대들었다.

그런 ㅈ같은 말씀 하지 마세요! 내가 아무리 남자에 환장했기로서니
이런  놈하고 붙어먹었겠어요.
말 똑바로 하세요!

그러자 또 놀랍도록 공명 정대한 높으신 판사님께서는 찰에서의 진술과 법정 진술이 다르다며 그녀에게 위증죄와 함께 법정 소란죄를 추가시켜  '법정 구금'을 명령하였다.  붙여 벌금 백만 원을 선고하였다. 

그리하여 이번엔 ‘전과자’라는 두 번째 도장이 찍히게 되었다.


지금엔 단연코! 절대로!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겠지만 그 시절만 하여도 한마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통하던 시절인지라 그녀는 길을 가다 X을 밟은, 그것도 평생 냄새가 가시지 않을 고약한 X을 밟은 셈 치자며 자신을 위로하였다.


 더더욱 허무한 것은 오물을 뒤집어쓰면서까지 양심에 충실했던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나중에  형을 살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으나 나오자마자 사고를 치는 바람에 또다시 구속되고 말았다.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이십 대와 삼사십 대 시절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두 개의 도장을 찍게 된 그녀는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전복되는 대형사고까지 당하게 되자 미련 없이 세속의 삶을 정리했다.


 깊은 산속 조그만 절을 마지막 의지처 삼아 공양주가 되어 살기로 결심했다.

지금까지의 이 모든 삶의 여정이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닌, 바로 그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사회초년생의 꽂을 무참히 꺾어버린 전남편, 유산, 시부모, 청년, 형사들, 검사...  들끓는 그녀의 마음속엔 그들을 향한 분노와 용서, 참회가 교차되어 무릎관절이 부서지도록 절하고 또 절을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녀가 법당 나무 바닥에 철철 흘린 눈물을 다시 걸레질로 닦아내면서 절망의 눈물을 또다시 흘렸다.

세상천지에 내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이 세상 아무도 없구나.

옛말에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 했던가. 그녀가 기거하고 있는 절의 비구니 스님은 종단도 확실치 않았으며 사이비 무당 같은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이비 무당은 그녀를 가까이 걸어 다니는 은행으로 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박복한 팔자와 파란만장한 삶은 큰 약점이 되었다. 그 약점은 뭉터기 돈으로 환산되어 다시 무당의 통장으로 옮겨졌다.


너도 죽고 나도 죽는 살을 풀어야 한다, 업장소멸 기도를 해야 한다, 구렁이가 된 조상의 혼을 달래줘야 한다, 갖은 명복과 구실을 핑계 삼아 그녀의 주머니를 털었다.

'스님 말씀은 부처님 말씀'이라 믿으며 생활하던 그녀는 사이비 무당의 무리한 요구에도 어떻게든 전생의 업보와 악연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급기야 신용카드는 물론 사채까지 빌려가며 돈을 구했다.


결국엔 깊은 산중에 까지 빚 독촉 전화가 빗발치게 걸려오자 이러다 빚에 치여 섬에까지 팔려갈 수 있겠구나 싶어 입은 옷 그대로 한밤중에 도망쳐 나와 버렸다.


이리저리 산중을 떠돌다 다시 예순 반의  나이가 되어 세속의 삶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이번엔

 채무불이행자 등재'라는 세 번째 도장 입술을 벌겋게 칠하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내가 물은 첫마디는 얄궂게도 ‘산속엔 크고 단단한 나무들도 많을 텐데 목을 맬 생각은 없었느냐?'였다. 그러자 그녀는 해탈승과 같은 대답을 들려주었다.

만약 시간이 과거로만 흘러간다면 분명 그랬을 거야, 하지만 고맙게도 시간은 과거가 아닌 내일로 흐르잖아.
그게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 거야. 길고 어두운 터널을 다 건너온 느낌이야.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할 거라는 생각으로 살아. 내일이 빨리 왔으면 해서 잠을 잘 못 자겠어.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면 너무 싱거운 건가?

늘 내일을 기다리는 설렘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그녀는 지금도 가위를 손에  쥐고 있다. 병원과 복지시설, 교도소를 돌아다니며 미용 봉사를 하고, 팀을 이루어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재능기부에도 솔선수범 하고 있다.

이혼. 전과자. 채무 불이행자.

세 개의 도장이 찍혀 있는 인생.


70세, 그녀가 부르는 노랫소리에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전율이 느껴진다. 낮은 저음으로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흡사, 가수 문주란 선생님을 연상케 한다.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지난 세월에 대해 독기를 품는 대신 노래와 봉사로 승화시킨 그녀는 정말 멋진 여자임에 틀림없다.


그녀는 지금도 예쁘다. 

사는 모습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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