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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Apr 02. 2024

이혼하셨어요?

"근데, 이혼하셨어요? 사별인가?"


그녀의 돌직구가 그대로 칼날이 되어 심장을 관통했다. 일순간의 기습에 당황하여 온 몸이 굳어졌다.  

살면서 가장 무안하고 수치스럽게 느껴진 순간이었다. 대로변에 발가벗겨진 상태로 내던져진 것만 같았다.

앉지도 못하고 그대로 선채주춤거렸다.


"ㆍㆍㆍ"


'아니,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나한테 던지는 거지? 나를 언제 봤다고, 미친 거 아냐?'

A는 그녀를 쏘아보듯 노려보며 주저앉았다.


A에게 이혼했냐며 돌직구를 날렸던 그녀는 '아님 말고...'라는 표정을 지으며 다른 일행들과 희희낙락 깔깔거렸다.

그 자리에서 버럭 화를 내며 정색을 하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소모임에서 야외 나들이를 나왔다. 열대여섯 명이 러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말 그대로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막걸리 한잔으로 건배를 하며 한 사람씩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었다.  모두 다 학창 시절로 돌아가 긴장을 풀고 맘 놓고 노는 그 자리.


너무나 음을 풀어서였을까, 그녀가  노래끝마친 직후였다. 일행들의 박수를 받으며 앉으려는 찰나, 무방비 상태로  날아든 날 조각에 A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A의 심적 변화를  눈치챈 일행은 없었다. 박수갈채와 웃음에 묻혀서 돌직구녀가 '이혼하셨어요?라고 묻던 말은, 막 노래를 끝낸 A만 들을 수 있었다.


 일행들과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음  행선지로 출발했지만 내내 어둔 표정이 가시지 않았다.

아니 하필 다른 자리도 아니고,  즐거운 단체 야유회에서  그런 말을 들을수 있는 것인가? 그것도 이제 막 노래를  끝내고 박수갈채를 받으며  앉으려는  그  타이밍에서 말이다.  불쑥 끼어든 말 한마디가  아주 절묘했다.


신입으로 들어온 돌직구녀는 누가 물어보기도 전에 자기가 출판한  책이  문학상을 받았으며, 상금이 얼마였는지  자랑을 했다.  자신의 글이 초등 교과서에서 실렸다는 사실까지 친절하게 소개했다.  사람들은 '아~글 잘 쓰시는 분이 들어오셨구나' 하면서  반기는 분위기였다.


A밤새 내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해서 도통 진정할수가 없었다.  돌직구녀의 당돌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는지 따지고 싶었다.  당장에라도 택시를

잡아 타고서 돌직구녀를 만나 단단히 쪽을 주고  싶었다. 한번 치밀어 오른 화는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았다. 뜬눈으로  날을 새며 폰을 들고  거실을 서성거렸다.


하지만 A가 이혼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A의 분노와 참담함에 비해, 실상은 돌직구녀에게 따질 명분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서 분을 삭이느라 며칠을 끙끙 앓았다. 한번 박힌 칼날 조각은 심장이 뛸때마다  발작하듯 치밀어 올라 영원한 트라우마로 남겨졌다.


"이혼하셨어요?"

라는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말이며  어떤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질문 한마디로  돌직구녀의 인격 전체를 평가하는 건 섣부른 생각이다.


그런 질문은 오늘처럼 야유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서 하는 것이 니라 나중에 A랑 돌직구녀가 서로 친밀해졌을 때 물어보는 게 예의이다. 그것도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리면서 조용히 말이다.

그렇게 아무 자리에서  막 찔러보듯 던지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물며 글을 잘. 쓴. 다. 는. 작. 가.라는 사람이,

장편소설 한 편으로 여러 군데서 상을 서로 주려한다고 자랑하는 작. 가. 라. 는. 사. 람. 이...


말이 곧 글이고, 글은  그 사람의 생각이다. 생각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말과 글은 그 사람의 인격을 고스란히 거울처럼 비친다.


자칭 유명하다는 작가라는 사람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궁금한 대로 아무 자리에서나 거르지 않고 말한다면 일반인보다 훨씬 교양 없고 매너 없는 행동이다. A가 분개하며 펄쩍 뛰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직구녀가 눈치가 없어서일까?

A가 이혼이라는 단어에 예민해서일까?


그 후로 A는 돌직구녀와 영원히 손절을 했다.


"이혼하셨어요?"

라는 말을 들은 A는 속으로만 삭이고 있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내게 이러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개인의 가정사는 굳이 본인 입으로 물어보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암묵적으로 알게 되고, 알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다.  스스로 허심탄회하게 이혼에 대한 아픔과 상처를 드러내며 공개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껏 돌직구녀처럼 면전에 두고 공개적으로 질문한 경우는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었던 A는 내게 항변하듯 묻는다.


" 작가님, 작가님도 글 쓰신다면서요?

'이혼하셨어요?'라는 말이

'안녕하세요?'라는 말처럼, 일상적인 말인가요?

작가는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요?"

야유회에서 칼날에 베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말투였다.


A가 분개하는 것은 이혼했냐? 는 사실여부를 묻는 말이 아니라,  

왜 하필 가장 유쾌한 나들이에서 자칭  유명한 작가라는 사람이 '이혼하셨어요?'라는 말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게 당연한 것인가?라는 되물음이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치명적인 콤플렉스는 있기 마련이다. 유독 한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감정이 폭발하기도 한다.


이혼, 자식, 학력, 질병, 빚, 돈, 배우자. 부모, 가족...

상대방이 어떤 단어에 민감한지, 금기어가 무엇이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대놓고 돌직구를 날리는 것을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다.


A의 말이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자칭, 브런치 작가 인 나는, 말과 글로써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었는가? 

작가랍시고 농담이라는 말로 상대에게 모욕감을 준 적은 없었는가? 

글은 나의 인격을 곧추세우는 잣대로 사용하라는도구인데,  이 도구를  무기 삼아 내 안으로 향하지 않고 남을 향해 겨누지는 않았는가?


안녕하세요?

이혼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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