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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May 07. 2024

논 둑에 앉아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해방감도 잠시 방학이라고 해서 늦잠을 자거나 느긋하게  노는 게 아니다. 부모들에게 아이들의 여름 방학은 농사 일을 거드는 중요 일꾼에 불과했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아버지는 아이를 가리키며 해가 기울 때까지, 새를 보라고 말했다.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다.


아이는 살이 몇 개 부러진 허름한 우산과 빈 비료포대를 챙겨 들고 논으로 향했다.

허수아비를 군데군데 세워두고 깡통을 어지러운 색동 줄에 매달아 놓았지만 속아 넘어갈 참새들이 아니.


열 마지기 남짓의 논.

아이의 얄팍한 어깨에 여덟 식구의 한해 식량이 무겁게 얹혀 있다.

한 여름 내내 벼이삭을 사이에 두고 일전을 벌일 사람이, 이제 겨우 열 살이 까 말까 한  땅 꼬마라는 걸 알아보았는지 새들은 전선줄 위에 주르르 앉아 가소롭다는 듯 내려다보았다.


뜨거운 햇살 아래 이제 막 벼 이삭이 익어가는 중이다. 벼를 손으로 문지르면 하얀 즙이 배어 나왔다. 이때가 참새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다.


이윽고 참새 떼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새들은 일부러  아이가 들어올 수 없는 논 한가운데에 새카맣게 내려앉았다.

 '훠~워~이, 훠~워~이 '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내달았다.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에 논두렁에서 놀고 있던 개구리들이 자기네를 잡으러오는 줄 알고  논으로 첨벙첨벙 뛰어들었다.


겨우 새들을 쫓아내고서 뒤돌아 등을 돌리면 참새들은 놀리듯 다시금 새카맣게 내려앉았다. 있는 힘을 다해 돌팔매를 하면 그제서야 새들은 마지못해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서 일어선다. 멀리 달아날 생각 없이 논을 가로지르는 전선줄 위에 느릿하게 올라섰을 뿐이다.

반복적으로 쫓고 쫓기는 싸움이 논두렁에서 지루하게 계속된다.


아이는 금세 지친 듯 내리쬐는 햇볕을 허름한 우산으로 가린 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새를 쫓는 일 보다 졸음 참기가 더 힘든 모양이다,

보란 듯 이  코앞에 새떼들이 새카맣게 내려앉았지만 헛손질만 할 뿐 좀처럼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마음은 어서 빨리 저것들을 내쫓아야 할 텐데, 하면서도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아 꼼짝도 할 수 없다.

한순간 우산이 논두렁으로 기울면서 아이도 함께 무너지고 만다.


저녁 해 가 기울었다. 파란 들녘이 노을 속에서 붉게 빛났다. 새들이 먼저 손을 털고서 숲 속으로 떠날 즈음에야 무승부의 싸움도 끝이 났다. 

아이만이 농사일을 거드는 건 아니었다.


또래의 아이들은 더 힘든 일을 어른과 함께 하고 있었다.

매운 열기가 후끈한 뙤약볕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를 땄다. 여린 피부가

 빨갛다 못해 새카매졌다. 모자도 없이 맨얼굴로 잡초를 뽑으며 논에서 *피살이 를 했다.


논에 들어가 피살이 를 할라치면 아무렇지도 않게 물뱀이 휙휙 지나다녔다. 쉴 새 없이 거머리가 종아리에 들어붙었다.

그중에서도 말거머리는 어른이 있는 힘껏 잡아떼내야 할 정도로, 한번 종아리에 붙었다 하면 잘 떨어지지 않았으며, 살에 구멍이 뚫려 피가 철철 흘렀다.

보기만 해도 징그럽고 끈질기고 무서운 게 거머리였다.


옆집의 종택이는 거머리가 자꾸 달라붙자, 일하기 싫다며 징징거린 모양이었다. 가뜩이나 땀이 비 오듯 쏟아져서 짜증이 나신 종택이 아버지는 부아를 참다못해 아들을 작신 두들겨 패고서 논바닥에 거꾸로 처박아버렸다.

농사일이 지긋지긋 한 언니 오빠들 중에는 도시로 도망치는 일이 종종 생겨났다.


새들을 감시하는 일이 아이의 몫이라면, 아이를 감시하는 이는 아이의 아버지이셨다.

아이가 새를 잘 보고 있는지, 아니면 비료 포대에 누워서 잠만 퍼 자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버지는 불시에 들이닥쳤다.

목이 잠기도록 총총히 새를 쫓고 있을 적에는 오지도 않던 아버지가, 잠시 짬을 내어 풀무치, 메뚜기, 잠자리를 잡아서 놀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에만 용케 알고서 오시는 거였다.

새들이 쪼아 먹은 빈 쭉정이 이삭을 뽑아 들고서 아이의 볼을 꼬집을 때면 아이는, 가족들이 굶으면 어떡하나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끔 아버지의 순찰만 아니라면 농사일 중에서 새를 보는 것만큼 쉽고 만만한 게 없어 보였다.


 매운 고추와 땀에 절여질 일도 없고,

종아리를 거머리에게 내어줄 필요가 없는, 만고 땡! <새 보기>.

다른 아이들은 새보는 아이를 몹시 부러워했다.

누워서 떡먹기나 다름없다고, 그런 말을 어디에서 배웠는지 ‘부모를 잘 만나서 복이 많다’며 아이를 빗대어 신세한탄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알지 못했다.

가족들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오로지 새 보는 아이만이, 그 아이 혼자만이 알 수 있는,

아니 알아도 말할 수 없는….

눈물 빛깔의 그 무엇….

알싸한 커피 향을 닮은 듯한 그 무엇.   


적막한 들판 한가운데 아이가 앉아 있다.

보이는 것은 온통 푸른 산, 푸른 들판뿐이다. 

그곳에  아이 혼자 오롯이 앉아 있다.

마을과 외떨어진 산기슭 논두렁에 푸른색에 갇힌 한 아이가 혼자서 새를 보고 있다.

어쩌다 지나는 사람조차도 키 작은 아이가 푸른 들판 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는 못한다. 아이 혼자 푸른 우주에 덩그러니 남아 새를 보고 있다.


새들도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삼라만상이 일순간 정지된 듯한 텅. 빈. 요.

아이는 이 세상 모든 생명들이 사라지고 자기 홀로 남은듯했다.

푸른색에 갇힌 아이는 미처 햇볕을 가리지 못하고 자란 콩나물처럼 파랗게 변해갔다.


가난하지만 부지런하고 마음 착한 부모님, 오빠와  언니들, 다정한 친구들,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는 이웃들, 친척들 ….

부러워할 것 없이 다 가졌음에도 하나도 가진 게 없는 것 같은.

진귀한 보물을 가득 채워두었어도 보물과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그 무언가를 영영 잃어버린 듯한. 아이는 그게 뭔지 몰라서 더더욱 애가 탔다.


푸른 들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린 가슴 저 밑바닥에서 까닭 모를 슬픔의 가루가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해질 무렵, 노을이 온 세상 모든 것들을 다 태워버릴 기세로 빨갛게 달아올랐다가 제풀에 까무러쳐서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몸을 식힐 때쯤이면 누군가가 가루를 거칠게 휘저어 풀어놓은 듯 슬픔이 차올라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이는 자기 눈에서 왜 눈물이 떨어지는지, 울면서도 알지 못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로 표현할 길 없는 슬픔의 미세한 분말들.

괜히 슬퍼져서 울었다는 말을 꺼내면 새보는 일 대신 고추 따는 일을 시킬까 봐 어른들에겐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아이는 귀찮더라도 차라리 참새들과 싸우는 편이 더 났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새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래야 '훠워이~ 훠워이~'

소리라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새들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새들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변했다.

새들은 적어도 울게 하지는 않으니까.

 잡아놓은 곤충의 잔해들이 논두렁에 수북이 쌓일 때쯤 방학이 끝났다.


개학 첫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느라 교실이 떠나갈 듯했지만 유독 새보는 아이만이 조용히 앉아 있다. 교실 창문에서도 푸른 벼이삭의 풍경이 가득하다. 습관처럼 창문을 바라본다.

언뜻  철이 든 듯해 보였지만 인생을 다 살아버린 애늙은이의 얼굴이 엿보이기도 한다.


훗날, 아이는 참새를 쫓다가 졸음에 무너졌을 때, 한 개인이나 나라가 무너질 때에는 적의 힘이 강해서라기보다 내부의 반란, 갈등, 배신을 추스르지 못하여 멸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걸 알게 된다.

 또 아이는, 참새들을 향해 짱돌을 던져야만 했을 때에도, 자기 것 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짱돌을 날려서라도 지켜야 하며, 먹고사는 일은 이처럼 매일 싸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집안이 가난하면 철 모르는 아이들까지도 고스란히 가난의 짊을 져야 한다는 것을,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을 기울이는지, 가난한 엄마가 되어서야 알게 된다.


이렇게, 훗날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야 커피 향을 닮은, 눈물 빛 가루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외로움’.


새를 보며 싹 틔워진 외로움의 씨앗은 오십 년이 흐른 지금 까지도 그때나 지금이나 항시 한 뼘의 크기로 남아있다고. 

그 씨앗은 크지도 자라지도 꽃피지도 않으며, 항시 그 자리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종내는 심장 옆에 자리를 내 주어 심장이 뛰는 대로 외로움도 함께 뛰고 있다고.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벼가 익어가는 시골마을을 지날 때면 습관처럼 논두렁에 가만히 앉아 있곤 다.

 처음 외로움을 가르쳐 주었던 참새 한 마리가 그때처럼 전깃줄에  앉아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다시 아이는 푸른 산으로 둘러 쌓인 절간에 오롯이 갇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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