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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음 Jun 21. 2024

계란장사

다신 하나 봐라

퇴근 무렵 노빠꾸 회장전화걸려옵니다. 평소보다 말이 많은 걸 보니 뭔가 꼭 해결하고 싶은 게  있다는 신호입니다. 총무는 평소 노빠꾸 회장의 시큰둥한  단답형을 흉내 내어 대답을 합니다.

"총무님, 우리 심심한데 계란 장사나 할까?"

"무슨?"

"응, 우리 동네 테니스 모임에 공지가 떴는데 계란 4판에  만원이라네. 양계장 폐업한다고 싸게 내놓는 건가 봐."

" 별로...."

"아니. 지금 30구 계란 한 판이 아무리 세일해도 6~7천 원인데 4판에 만원이면 거저지, 거저. 이런 때 우리 회원들도 싸게 사고, 선물도 하면 좋잖아. 지금 기회를 놓치면 사고 싶어도 못 사. 우리가 봉사정신을 발휘해야지.  회원들을 위해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해."

"안 해요"


 총무는 단호하게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저녁에는 천하없어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오만 인간들하고 단내가 풀풀 나도록 시달리는데 집에 와서까지 상대하고 싶지 아서입니다. 파자마 바람으로 편하게 누워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는데, 웬 놈의 전화가 빗발칩니다. 혹시나 싶어 밴드를 살펴보니 짧은 공지가 떴습니다.


<공지>

계란 1세트 4판(120개) 배추 한 장.

 총무님께 접수바람


노빠꾸 회장이 막무가내 글을 올렸네요. 한 마디라도 아끼고 싶어 먼저 문자를 살펴봅니다.


Aㅡ총무님, 바쁘신가 봐요? 마침 우리 집에 계란이 똑 떨어졌는데, 어떻게 우리 살림아셨어요? 저는 두 세트 240개 주세요. 여기저기 계란으로 인심이라도 쓰려고요.


B ㅡ 1인 가족인데 1세트 네 판은 너무 많아요. 1세트 4판 중에 1판만 주시고 나머지 3판은 총무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C진짜 네 판에 만원이라고요? 어디 중국 수입산 폐기 직전의 계란들 아닌가요? 총무님이 한번 살펴봐주시겠어요? 이상 없으면  1세트 주문할게요.


D우리 집에 아직 계란이 있긴 한데 총무님 얼굴 봐서 구매할게요.  1세트 중에서 반판 (60개) 부탁드려요.

Fwxyz ᆢᆢ


계속 전화와 문자가 날라들어 하는 수없이 노빠꾸 회장한테 전화를 겁니다.

"아니, 회장~~ "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어이~총무님, 총무님은 그냥 가만히 계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가만히 있으면 돼. 사무실로 내일 보낸다고 했으니 잘 보관만 했다가 내주기만 하셔. 그리고 총무도 고생하니까 양계장에서 수고비로 계란 1세트(120개) 공짜로 준다고 했어. 우리 둘이 반반씩 나누면 서로 좋잖아. 회원들한텐 비밀이여. 수고!"

뭐라 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뚝 끊어버립니다.


계란을 잠깐 보관만 하고 있으면 공짜로 2판이(60) 생긴 다하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가만 생각하니 총무는 기분이 좋습니다. 남아있던 계란을 마저 다 삶아 먹고, 계란말이로 홀라당 먹어버립니다. 네 판에 만원이라고 하니 이미 알뜰 회원님들이 주문을 끝냈습니다. 계란 사가라고 아쉬운 소리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계란이 떨어질 때쯤 정기적으로 이벤트를 벌이면 평생 계란은 공짜라 생각하니 식판의 노란 단무지만 봐도 계란노른자로 보여 흐뭇합니다.


드디어 계란이 왔습니다. 트럭에 계란이 엄청 실어져 있네요.

? 숫자가 안 맞습니다. 다시 세어봅니다. 80판이 와야 하는데 60판뿐입니다. 한판에 30개 라더니 15개 들어있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수고비 몫으로 1세트가 더 와야 하는데 세 번 네 번을 세어도 딱 떨어지는 60판입니다. 뭐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합니다.  


" 사장님, 계란 네 판에 만원이라고 안 하셨나요? 80판이 와야지, 왜, 60판이에요? 그리고 노끈이나 비닐로 포장해서 가져오셔야지 이렇게 아놓으면 어떻게 가져가요?"


"네 판에 만 원짜리는 다 팔려서 왕란으로 가져왔시유. 이봐봐유, 닭알이 타조알만 하지유? 우리는 손해 보고 던지는 건데 알아서들 가져가셔야지 우리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챙겨유? 얼른 돈부터 주세유?"


마치 계장 폐업이 총무 탓인 양 그놈의 비닐 한 개에도 날카롭습니다.


"알겠어요. 돈은 노빠꾸  회장님이 알아서 하실 거에요. 제가 알기로는 서비스 한 세트 더 준다고 했는데 없네요?"


"아니, 노빠꾸인지 뻐꾸긴지 내가 어떻게 알아유! 서비스 그런 거 없시유. 100세트 정도나 시키면 몰라도 고작 20 세트 가지고 무슨 서비스를 찾아유!  돈은  물건 받은 사람이 내주는 것이 상도덕이쥬! 나 바뻐유! 노빠꾸인지 뻐꾸긴지 그 사람하고 해결하시고 얼른 돈부터 주세유!"


충무는 서비스에 '서' 자도 꺼내지 못하고 더 말씨름했다가는 계란으로 처 맞을까 싶어 탈탈 털어서 2십만 원을 건넵니다. 노빠구 회장한테  바로 전화를 겁니다. 안 받습니다.

총무가 긴급 공지를 보냅니다.


계란도착

네 판 만원(초란 120개)

3판에 만원(왕란 45개) 변경

무더운 날씨에 병아리 깨어날 수 있음

빨리 와서 가져가기 바람.


공지를 띄우자마자 다시 게시판에 불이 붙습니다.

썩을  : 아니, 이거 개사기 아닙니까? 무슨 소리예요? 4판에 만원이라더니 왜, 세 판에 만원이에요. 저희 집은 초란만 먹어요. 취소할게요.

첫 댓글 단 썩은 년이 기분 나쁘다며 취소를 하자  오만년놈들이 한 마디씩 거듭니다.


미친 : 아니, 총무님! 일 을 왜 이렇게 처리하세요? 처음부터 네 판이면 네 판이고, 세 판이면 세 판이지, 네판 준다고 해놓고서는 이게 뭡니까? 저도 취소할게요.


이상한 련 : 저는 그냥 1판만 주세요. (3,000원 입금할게요.)


촉새 놈 : 왕란 세 판이면 시중 마트가격이나 똑같습니다. 그것도 마트에서는 한판(30개)인데 15개라니요! 저도 취소합니다. 수고하십시오^^


소식 련 : 총무님 고 많으세요. 초란 작은 거 기대했는데, 왕란은 너무 커서 한 번에 다 못 먹어요. 배불러요. 취소할게요.

.................

읽어 내려가는 동안 총무는 부들부들 몸을 떱니다. 노빠꾸 회장 놈한테  계속전화를 해도 안 받네요.


총무는 다시 양계장 주인한테 전화를 겁니다. 비닐과 끈이 문제가 아닙니다.

"죄송한데 사장님. 주문하신 분들이 초란만 드신다네요. 초란 네 판인 줄 알고 주문했는데 왕란 세 판 짜리라고 다들 싫어하세요. 죄송한데 다시 가져가시면 안 될까요?"


"뭐라고유? 이상한 사람들 참 많네. 란 4개 합친 거보다 왕 큰 왕란이유! 왕란! 이불속에 덮어두면 병아리가 톡 튀어나오는 유정왕란 이라구유! 촌스런 아줌마들이 왕란을 먹어봤어야 알지. 그리고 아지매요!  이미 내렸는데 어떻게 다시 가져가유! 아지매가 알아서 하셔야쥬!  운전하는데 전화하지 마세유! 조삼모사 같은 원숭이 새끼들도 아니고..."


 하~~~


실내 온도가 30도를 육박합니다. 빨리 팔지 않으면 계란에서 병아리가 깨어나는 역사적 현장을 눈앞에서 보게 생겼습니다. 양계장을 차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미 계란값은 현금으로 줘버렸으니 계란장수가 다시 올 턱이 없습니다. 이래서 현금보다는  취소 가능한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총무는 깨닫습니다. 노빠꾸 회장 놈 거실에 계란을 실어다가 내동댕이 치고 싶지만 무응답입니다(브라질 삼바 축제 갔다고 함)

어쩔 수 없습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눈물의 탄세일에 들어갑니다. 계란 두 판 얻어 먹으려다 총무의 피 같은 생돈이 깨집니다.


정정 긴급공지

왕란 4판 만원

빨리 와서 가져가기 바람

공지가 뜨자 처음 댓글 달아서 초를 친 썩을 련이 답장을 가장 먼저 보내옵니다.

초친 썩은련 : 어머, 총무님 능력 좋으시다. 이렇게 처음 약속대로 하셔야죠. 유정란 왕란이 네 판에 만원이면  엄청  싼 거예요, 왕란 유정란은 귀해서 마트에도 잘 안 나와요. 두 판 가져갈게요.


완전 미친련 : 총무님, 왕해결사! 엄지 척! 받으실 거예요. 저도 한판. 하트 하트^^


 대식으로 바뀐 : 왕란 한 알만 먹어도 든든하죠. 계란말이 할 땐, 왕란이 최쵝오! 저도 두 판 히히


나쁜 촉새 놈 : 마트에서 파는 30구 왕란보다 총무님이 파는 왕란이 진짜 타조알만 하네요. 이런 유정란 보기 힘든데~수고 많으셨어요. 우리 장모님이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2세트 주십시오.

와~~~ 원숭이 같은....


계란장수한테 분명 20만 원을 줬는데, 받은 건 15만 원뿐입니다. 그것도 이체를 해준다 하면서 외상으로 가져가는 바람에 현찰로 남은 건 6만 원입니다. 완전 미친 련한테 입금이 안 됐다 하니, 무슨 개소리냐며 계란 받으면서 분명 만원을 줬답니다. 왜 총무가 사람을 미친련 만드냐며 팔짝 뜁니다. 곧 죽어도 만원을 줬답니다.


! 이, 미친련아! 내가 안 받았다고!! 안 받았어!!  

그 미친 련은 끝까지 줬다면서 배 째라를 시전 합니다. 그년은 줬다 커니, 총무는 안 받았다 커니... 만원 한 장 때문에 경찰 부르기 일보 직전입니다. 돈은 줘야 받는 것입니다.  안 주면 못 받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합니다. 그 미친련이 자기는 분명히 만원을 줬으니 더 이상 이야기는 끝난 거랍니다.


 총무야 말로 미치고 팔딱 뛸 노릇입니다. 당장 쫓아가서 미친 련이 가져간 계란 네 판을 모조리 거실에  던져버리고 만원을 그년 이마에 '강시'처럼 붙여두고 싶습니다. 총무 성질만 더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이게 다 삼바 놈, 노빠꾸 때문입니다.


총무는 떨어진 계란을 사러  마트에 갑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껴먹을걸, 공짜로 60개가 돌아온다 생각하고 미리 다 먹어버린 것을 후회합니다. 왕란 한판을 세일가 7천 원으로 털레털레 사가지고 오는데 빠꾸 뻐꾸새끼 전화가 걸려옵니다.


"어이 총무~ 전화 많이 했네. 계란 잘 팔았는가? 여기 브라질이여, 브라~질!  tv로만 보다가 삼바걸을 직접 보니까 아주 쥑이네~ 브라질 삼바걸 쵝오! 내 계란은 잘 보관해 뒀다가 귀국하면 줘! 수고!"


어째, 이 브라질리언놈의 빠꾸새끼를 브라자로 목을~~ 졸라!!! 말어!!!

빠꾸 뻐꾸 회장 놈의 새끼, 오기만 와봐라!!

배달된 왕란
동네 마트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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