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명의 도반들과 함께 1박 2일,길을 나섭니다.경주 남산에 있는 마애불을 탐방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른 새벽에 출발해서 달려오다 보니 무지 배가 고파집니다. 스케줄 짜는 것보다 맛집 찾기가 더 어렵습니다. 고르고 골라예약된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어매~ 어매~상다리 부러지겠네. 소고기 전골에다 청국장까지... 밥 한 공기 더 시켜도 되지? 난 두 그릇 때릴껴. 와~ 맛있겠다."
"여기 마늘이랑 땡고추 좀 주세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주인장이 짧게 대답합니다.
"없어요!"
경주 공식 지정 농가 밥상인데 토종 전라도 입맛엔 심심 삼삼 슴슴, 뭔가 2% 부족해서 밥이 안 넘어갑니다. 순실언니는 몇 숟갈 뜨다가 숟가락을 탁! 내려놓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차려줬다가는 블도저로 밀어버리는 수가 있어. 누구 먹으라고 이런 밥상을 차리나? 엉?"
삼릉계곡을 오르다 귀신에 홀렸는지, 2년 전에 금강경 독송을 했던 장소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19명이 올라가다, 내려가다~다시 올라가다, 내려가다 ~두세 번 반복했지만 도저히 길을 몰라 포기하고 상선암 마애불을 찾아갑니다.
"오매~보살님이 여기 계셨어? 진짜 반가워요. 건강은 어떠셔요?"
암자 앞이 떠들썩합니다. b 도반과 암자 老보살님이 두 손을 맞잡고 크게 반가워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세상에~이런 첩첩산중에서도 만날 사람은 다 만나나 봐. 여기서 아는 사람을 다 만나고ᆢ세상 참 좁네."
친절함과 반가움에 도반님들 주머니가 활짝 열립니다. 바위로 지붕을 삼은 작은 암자엔 tv는 없지만 카드체크기는 설치되어 있네요. 역시 대한민국 통신강국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b 도반님께 물었습니다.
저 老 보살님을 어디서 뵙고 몇 년 만에 다시 만나신 거예요?" " 몰라. 모르는 사람이야. 오늘 처음 만났어. 이런 산골 암자에 혼자 계시니 얼마나 외롭겠어. 그래서 말동무해 준 거야."
"............."
마애불 앞에서 다라니 기도를 올립니다. 기도가 끝난 후 옆에 앉은 c 도반님이 소곤거립니다. "나, 삼매에 들었나 봐. 부처님의 응답이 코로 먼저 온다더만 코끝으로 향냄새가 진동하더라니까.아주 기똥찼어.역시 마애불이 효험 있나 봐." "정말요? 대단해요! 심성이 맑고 깨끗해서 부처님 가피 받으셨나 봐요. 나도 그윽한 향 냄새를 은근히 맡은 것도 같아요. 그럼 나도 삼매! (야나두!) 헐!! "
웅성거리자 누가 내려가며 구시렁거립니다. "우리 앞전에 기도하던 사람들이 향을 한 뭉테기 살라놓더구먼."
..........
먼지 펄펄 날리던 복전함에 모처럼 시줏돈이 쌓입니다.老보살님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지네요.하산하면서 나눠 먹으라고 사탕을 한 아름 안겨 줍니다.
옆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옵니다. 화장실 센서등이 켜졌다 꺼졌다 하면서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층 침대에선 사람이 호박처럼 툭 떨어지는가 싶었는데 d보살님이 용케 받아서 큰 부상을 면합니다.
한참 잠을 자는데 누군가 샤워하는 소리에 노빠꾸 회장이 일어납니다. 세면을 하고 배낭을 메고 일어서려다 시계를 봅니다. 밤, 12시 30분. 아침 기상시간 8시까지는 아직 멀었습니다. 도통 잠이 들지 않아 배낭을 멘 채로 뜬눈으로 날을 샙니다. 모두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해맑은 총무는 코를 골며 잘 잡니다.
토함산 산행 중 갑자기 이교수 님이화들짝 놀랍니다. 주머니도 뒤져보고 가방까지 탈탈 털어봅니다.
"나, 어떡해? 카드 흘렸나 봐. 아무리 찾아도 없어. 석굴암에서 기도비 결제한 게 마지막인데 그 후로 흘린 것 같아. 정신이 없네. 어떡하지?" 총무가 아주 친절하게 조언합니다.
"우선 불안하니까 카드 정지부터 시키세요. 혹시 모르니 재발급도 함께하세요." 강한 산 바람소리에 묻혀상대방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이교수 님이 소리소리를 지르며 통화를 합니다.
어찌나 소리가 크던지, 지나는 관광객들까지 카드잃어버린 사실을 다 알게 되었습니다. 고지가 높은 탓에 통화가자주 끊기네요.간신히 고객센터에 정지를 시켜놓습니다. 총무의 조언을 받들어 재발급까지 미리 신청해 둡니다.
순실언니가 말했던 불국사 현미부처님을 친견하려고일부러 노선을 바꾸어 찾아갑니다. "어때? 꼭 닮았지?"
" 아니, 무슨 현미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전혀 안 닮았구먼."
19명이 일제히 순실언니를 째려봅니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그대로 비로자나 부처님인 것으로 확인되었네요. 경주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하려는 찰나 "아참, 십원빵 사야 하는데? 시내로 다시 들어갈 수 있죠? 경주 십원빵이 아주 맛있고 유명하대요. 저 사실 이것 사 먹고 싶어서 경주 동행했어요. 호호." 사모님이 징징거리자 최장로님이 젊잖게 한마디 하십니다. "그냥 가! 내가 오백 원 줄게."
밤늦은 시간, 총무가 배낭을 정리하다 낯선 카드 한 장을 발견합니다.
'뭣이여?
카드 앞면에 <00 대학교 사범대학 이 00 교수>라고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어디서 많이 본 얼굴입니다.
'야!! 네가 왜 여기서 나왓!'
사실을 알릴까 말까 심히 고민합니다. 석굴암에서 마지막으로 총무와 이교수 님, 둘이 남아서 기도 접수를 했었습니다. 마침 가방을 메고 있던 총무에게 맡겨둔 카드였는데 그걸 모르고 재발급을 신청했네요. 진짜 귀신에 홀렸나 봅니다.
잠이 들 시간에 f 도반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오늘 회비는 인당 2십 만원씩 19명이니까, 380만 원이잖아요. 모두 정산해 보니 907,000원이 남아야 하는데, 딱 2십만 원이 모자라요. 아무리 계산해 봐도 20만 원이 빠져요. 우선 제 돈으로 물어내고 정산 끝낼게요. 그냥 앞으로 재무 시키지 마셔요. 머리 아파서 다시는 안 할래요."
"아니~ 몆천억의 예결산을 주무르는 재무팀장님께서 380만 원을 못 맞추다니? f님이 회비 안 낸 거 아녀요?"
이제 f님까지 홀렸나 봅니다. 총무도 만져 본 적 없는 이십만 원을 찾아내느라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띠링! 문자가 옵니다.
'총무님 찾았어요. 제가 출금한 걸로 착각했어요.저에게 다시는 재무 시키지 마세욧!'
이제 좀 잠을 자나 싶은데 문자가 날아옵니다. 순실언니입니다.
'누가 경주 식당을 예약했냐며, 자기는 막걸리만 먹어서 억울하답니다. 총무는 잘도 먹더라, 나는 그런 밥, 굶어 죽어도 못 먹는다. 배고픈데 라면이 다 떨어졌다. 현미부님이 현미부처님인데 왜, 현미부처님이 아니라고 하느냐면서 총무도 그리 생각하냐'라고
물어보네요. 눈들이 다 삐었다면서 현미 부처님이 백번 맞다 하십니다. 총무는
낮술 먹인 죄로 어르고 달래는 문자를 한시간 내내 보냅니다.
전화기를 끄려는데 문자가 또 들어왔습니다. 펜션 이층에서 떨어진 호박도반입니다. 아무래도 허리가 골절된 것 같다고 하시네요. 단기 일일 여행자 보험을 들었나 물어봅니다. 아니요라고 답하니 총무가 보험은 당연히 챙겼어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허리도 아픈데 돈까지 깨지게 생겼다면서 속상하답니다. 총무한테 매우 실망했다 하십니다.
잠깐 풋잠이 드는가 싶은데 또 문자가 옵니다. 이번엔 이교수 님입니다.
'카드 때문에 스트레스 겁나 받아서 제대로 산행도 못하고 경주 구경도 못했다 하십니다. 가방에 보관하고 있으면서 왜 말을 안 해줬냐며 너무 섭섭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네요. 다시는 총무랑 안 가고 싶다고 하십니다.
싹싹 빌면서 문자를 보내고 나니 날이 새고 있습니다. 쪽잠이라도 자려고 누웠는데 또 문자가 옵니다. 최장로 사모님입니다.
' 경주 여행 너무 재밌었어요. 십원빵 먹으러 다시 경주 갔으면 해요. 총무님이 계획 좀 잡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