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인간이 되기까지

[애정을 담은 시선과 생각들]

by 쏘이

우리 집은 어느 면에서 미식가 집안이었다.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찾아 먹고, 맛있는 음식을 위해선 먼 곳으로 여행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상의 식탁은 엄마의 몫이었지만 아빠는 특별한 날의 미식과 미식 기행을 주도했다. 아빠는 계절별 제철 생선을 꿰고 있었다. "겨울엔 이시가리, 여름엔 농어, 봄은 도다리, 도다리는 늦겨울에 세꼬시를 해야 고소하고 뼈가 억세지 않다…" 라며. 본가에 내려가 늦잠을 잔 다음날 아침엔 아빠가 사온 시기별 가장 맛있는 제철회가 식탁에 놓여 있었다.


외갓집은 집에서 40분거리였다. 외할머니는 항아리에 된장, 고추장, 조선간장, 막장, 젓국 등 각종 장을 담그셨다. 40분 거리에 있는 직접 담근 장 덕분에, 식탁엔 항상 깊은 감칠맛이 돌았다. 친할머니는 아주 깔끔하고 예민하셨는데, 요리에서도 그 성격이 드러났다. 비싸고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부산의 유명 시장을 도는 것이 일상이셨다. 그러고는 큰 손으로 깔끔하고 깊은 요리를 만들어 냈다. 당시 간호사라는, 주부가 아닌 직업이 있던 엄마는 까다로운 할머니의 취향과 시집살이가 괴로웠다고 회상했다. 결혼 전 제대로 요리한번 해 보지 않았던 엄마는 할머니 의 혹독한 트레이닝 아래에서 그 손맛을 물려받았다.


음식과 요리에 진심인 가풍에 영향을 받아 나도 미식을 즐기고 요리 하는 것을 좋아했다. 음식 중 나의 소울푸드는 김치였다. 배추에 양념이 배어들면서 적절히 익으면 시원하고 상큼한 감칠맛 폭발하는 것이 좋았다. 약간은 시큼한 맛이 침샘을 자극해 입맛을 돌게 하는 과정은 중독적이었다. 나는 우리집 김치 최대 소비자로 낙인이 찍혔다. 그리하여 엄마는 학창시절부터 나를 우리집의 김장 대표로 출전시켰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요리에 참여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나에게 식문화를 제대로 알려주고 음식의 취향에 깊이를 더해 준 건 A라는 친구였다. A는 발효에 관한 서적을 읽고 있었다. A는 책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할 겸 나를 인형처럼 앉혀 두고 발효에 대해 알려주었다. ‘발효는 우리 몸에서 포도당이 호흡 과정에서 들어온 산소와 만나 분해되고 에너지를 내는 반응과 같다. 다만, 음식의 발효는 효모나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 산소역할을 하며 음식물이 분해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발효의 과정을 거친 음식에선 발효 후 생기는 산(acid) 냄새와 맛이 있는데 이것이 미각과 후각을 자극해 맛을 더 풍부하게 해 준다.' 화학반응으로 설명하는 맛이라는 세계가 나에겐 재밌게 다가왔다.


하루는 우리 집에 A가 놀러왔다. 우리집 김치를 맛본 A는 김치에서 깊은 맛이 난다며 맛있어했다. 언젠가 우리집으로 레시피를 배우러 가겠다고 계획을 했으나 그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그런 우리집 냉장고의 김치 가운데 A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있었다. 내가 특히나 좋아했던, 발효가 많이 진행되어 쿰쿰한 냄새가 나던 묵은 열무김치였다. A는 그 쿰쿰함을 즐기면서 김치에 맥주 한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의 루틴을 신기해 했다. 나를 관찰하던 A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대부분 발효된 것들이라고, 난 발효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렸다.


A가 그렇게 정의내린 건, 내가 김치 외에도 술, 치즈, 절임류를 좋아한다는 사례를 수집한 결과였다. 와인, 맥주를 비롯한 술은 효모를 통한 알코올발효를 거친 것이었다. 김치, 치즈 절임류 또한 박테리아로 발효된 대표적인 발효음식 이었다. 나의 취향이었지만 나는 한번도 이것들을 한 카테고리안에 묶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흩어져 있던 나의 취향을 모아 엮어 준 A 덕분에 나는 나의 취향을 정립할 수 있었다.


발효의 세계에 눈을 뜬 나는 내가 좋아할 또다른 발효된 무언가를 찾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머릿속에서 흩날리던 음식이라는 취향의 조각을 모아서, 발효라는 하나의 작은 덩어리로 만든 다음, 덩어리를 살살 굴리면서 몸집을 불려가는 과정과 같았다. 탐구를 통해 얻은 대표적인 것으로는 술의 취향이었다. 와인 중에서 발효 향이 잘 느껴지고 목장의 소똥냄새마저 나는 내츄럴와인을 찾아 마시게 되었다. 맥주는 카스 하이트만 알고있던 나에게 효모 향이 잘 느껴지는 수제맥주라는 새로운 즐길거리가 생겼다. 내가 즐기는 세계는 그렇게 넓어졌고 깊이를 더해 갔다.


A와는 더이상 교류하지 않게 되었지만 A가 찾아준 나의 취향은 여전히 일상을 채우고 있다. 발효음식을 한창 탐구할 당시의 내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턱은 두툼하고 얼굴은 빵빵했지만, 표정은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발효라는 세계를 탐험하던 여정은 단순히 미식을 넘어, 나를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혀에 남은 발효의 풍미와 함께 나의 취향도 함께 발효되어 그 맛은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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