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로 숨 쉬는 곳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by 아우름언니

제 첫 해외여행은 1995년 일본 출장이었습니다. 처음 접한 일본 문화는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고, 젊은 사람들은 서로 신경 쓰지 않는 듯 개성 있는 패션을 자유롭게 즐기고 있었으며, 길거리 곳곳에는 화려하고 예쁜 장난감처럼 생긴 음식들이 가득했고, 무엇보다 제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남녀 상관없이 점심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었는데, 그것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딱 한 잔 분량의 조그맣고 앙증맞은 맥주병이어서, 예나 지금이나 맥주를 좋아하는 저는 출장 중 점심 시간에도 식사와 함께 가볍게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일본의 여유로운 문화를 즐기곤 했습니다.


과테말라에서 생활할 당시에는 마치 제 평생 억눌렸던 자유를 한꺼번에 풀어내듯 정말 자유롭게 살아보았고,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과감한 옷차림도 시도해 보고, 저를 가르치던 젊은 스페인어 강사와는 영화 속 장면처럼 프렌치 키스도 해보았으며, 안티과 중앙광장 공원 벤치에 누워 따스한 햇살 아래 책을 읽고 낮잠을 자는 그 모든 순간들이 저에게는 지금도 생생한 해방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가면 저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었고, 마치 ‘무슨 사연이 있어 이렇게 먼, 가난한 나라까지 왔을까’라는 시선 속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게 되었으며, 외국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교회 문화 역시 한국의 1970년대처럼 보수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결국 저는 ‘바른생활 한국 여인’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제가 해외에 나가면 더 자유롭게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제 성격 때문이었던 것 같고, 말이 많은 것은 예의 없고 가벼운 것이라 여겼던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저는 늘 말을 아끼고 조심하는 아이였으며, 오빠의 간섭과 무서움까지 더해져 언제나 제 감정을 억누르고 참는 것이 습관처럼 자리 잡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당시의 한국 사회 역시 상사의 말이 곧 법이었던 시대였기에, 그런 단단한 굴레 속에서 살다가 처음 경험한 외국에서의 자유는 저에게 말 그대로 숨통이 트이는 ‘신세계’였던 것입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의 삶을 어렴풋이 동경하고, 언젠가는 나도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고, 지금도 답답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가고 싶은 여행지를 검색하며 그곳에서 여행하는 상상을 하고, 상상 속에서조차도 마음이 자유로워지고,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으로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합니다.


지금의 저는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고 있고, 어릴 적처럼 누구도 저를 간섭하거나 구속하지 않지만, 여전히 마음 어딘가에는 그런 억눌림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것 같고, ‘이제는 다 벗어났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타인의 시선에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고, 어쩌면 어릴 적부터 가슴속 깊이 남아 있던 압박감이 아직도 제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제 여행을 만들고 싶습니다. 여기에서의 삶도 분명 소중하지만, 여행지에서의 삶 또한 또 다른 제 삶이기 때문이며, 여기에서의 삶이 책임과 의무가 짙게 묻어나는 삶이라면, 여행지에서의 삶은 온전히 저만을 위한 선물 같은 시간이기 때문에, 일도, 가족도, 책임도 없는 그곳,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서의 삶이 언제나 그립고 간절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행복한 여행을 꿈꿉니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내가 나를 바라보느냐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억눌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더라도, 그 마음을 끌어안고 다시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는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누군가의 시선이 아닌 저 자신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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