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했던 그날들,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

염리동 산동네의 나의 보금자리

by 아우름언니

미용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난 후, 저는 부산에서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같은 미용학원에 다녔던 20대의 한 친구가 서울의 미용실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저를 좋은 곳에 소개해 주었습니다.


사실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도 걱정이 많았습니다. 나이 많은 제가 과연 어느 미용실에 채용될 수 있을까, 괜한 도전은 아닐까 싶었거든요. 그래서 일단 자격증을 먼저 따고 고민해 보자며 마음을 미뤄두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자격증을 따기 전부터 취업이 먼저 이루어진 것입니다.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서울로 향했지만, 그 이후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빨리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저는 매일같이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총 네 번의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한 번이라도 떨어지면 다시 5개월을 기다려야 했기에 절실했습니다.


그때 스텝의 월급은 60만 원 남짓이었고, 저는 가진 것이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적은 돈이었지만 저는 부지런히 저축했고, 직원 디자이너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전환하면서 수입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드디어 오랫동안 꿈꾸던 기숙사에서 독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동산을 돌며 집을 알아보았지만 가진 돈이 많지 않다 보니 자꾸 산동네 쪽으로 올라가게 되었고, 때론 영화 <기생충>에 나왔던 집보다 더 열악한 곳도 보았습니다.


그런 집들을 마주할 때면 제 모습이 괜히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운 좋게도 언덕에 위치한 작은 빌라 2층의 집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건물은 낡았지만 도배와 장판이 모두 새로 되어 있어 깔끔하고 포근했습니다. 전·월세였지만 제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집을 제 손으로 예쁘게 꾸몄습니다. 시트지를 사서 거실 벽면에 화려한 포인트를 주고, 현관엔 타일 무늬 시트지를 붙여 분위기를 바꾸었죠. 현관문도 나무무늬로 바꿔서 한결 따뜻한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내 집을 마련했다는 기쁨에 부산에 계신 부모님도 초대하고, 서울에 사는 동생 부부도 불렀습니다. 제 모습에 부모님은 마음 아파하셨고, 동생은 조금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괜찮았습니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내 삶, 다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며 하나씩 이뤄낸 이 시간들이 저는 너무도 자랑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예전엔 나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 그 시절보다 더 소중한 건 바로 제가 흘린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낸 지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저는 진심으로 행복했고, 제 자신이 참 대견하게 느껴졌습니다. 법정 스님께서 말씀하신 ‘충만함’이라는 것이 아마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흘린 땀과 애쓴 마음들이 이뤄낸 공간 속에서, 저는 참 충만하고 고요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끔 문득 떠오르는 친구가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윤선이’라는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저보다 열 살이나 어린 22살의 아가씨였지만, 누구보다 저를 이해해주고 곁을 지켜주었습니다. 술 한 잔도 못 마시던 아이가 늘 제 술친구가 되어 주고,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던 그녀는 지금 좋은 사람을 만나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윤선이 덕분에 저는 그 힘든 시절을 더 따뜻하게 버틸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친구가 문득문득 보고 싶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고마운 내 친구, 윤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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