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사랑이 싹튼 순간
돌이켜보면 저에게도 사랑이 싹트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까지 저는 그저 말수가 적고 수줍음이 많은, 조금은 촌스러운 여중생이었습니다.
1학년 7반이었던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체육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일곱의 남자 선생님이셨고, 키도 작고 외모도 평범하셔서 학생들 사이에선 “쥐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담임선생님의 가정방문이 있었는데, 저희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일하시는 공장으로 선생님이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의례적으로 어머니는 준비해두신 하얀 봉투를 선생님의 손에 조심스럽게 쥐어드렸고, 저는 마치 못 본 척하며 눈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순간, 선생님은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며 제 시선을 피하셨고, 그 손에 들린 하얀 봉투는 찢어질 듯 구겨져 있었습니다. 너무 꽉 쥐고 계셔서 손끝이 떨리고 있었던 걸 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제 부모님께 깊이 고개를 숙이며 “아우름이는 공부를 아주 잘합니다, 반에서도 성적이 우수해요”라고 말씀하시곤 서둘러 발길을 돌리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왜 그토록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제 공부를 칭찬해주셨기 때문인지, 아니면 첫 월급 봉투를 받아든 선생님의 부끄러움이 담긴 그 진심 어린 모습 때문이었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어쩌면 그 모든 것이 함께 저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선생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열심히 하게 되었고, 체육부장을 맡게 되었으며 운동부에도 들어가서 부산 체전 100m 단거리 선수로도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절의 변화를 알게 되었고,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하는 시를 가까이하게 되었으며, 순정만화를 보며 선생님과 저를 비유하면서 설레기도 하고 가끔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저는 제 감정을 작은 노트에 적기 시작했는데, 김소월과 김춘수의 시를 따라 쓰기도 하고 예쁜 그림을 그려 넣거나 짧은 자작시를 적어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던 만화책인 『캔디 캔디』에서 캔디와 테리우스가 숲 속에서 첫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보며 가슴이 쿵쾅거려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결국 저는 만화방에서 주인 아주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그 장면을 살짝 찢어와 가위로 정성껏 오려내어 작은 수첩에 끼워 넣고는 수시로 들여다보며 행복해했습니다. 그게 제 기억 속 가장 첫 번째 나쁜 짓이었고, 아주머니께는 지금도 마음속으로 죄송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제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열네 살에 짝사랑했던 체육 선생님과 그리고 제 눈에만 꼭 닮았던 테리우스와 함께 조심스레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보같이 그 감정을 고백해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모두가 하교한 뒤 저는 혼자 교실에 남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운동장으로 나가 그 비를 맞았습니다.
머리와 어깨를 사정없이 때리는 그 비 속에서 저는 오히려 마음이 후련해졌고, 그 순간 억눌려 있던 감정이 터져 나오듯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몇 방울이 흐르더니 이내 통곡으로 이어졌고, 결국 멀리 있던 친구가 놀라 달려와 저를 데리고 가며 물었습니다.
“왜 그래? 민서야, 왜 그래?”
“몰라, 나도... 사랑에 빠졌나 봐.”
“뭐? 누구한테?”
“우리 체육 선생님... 엉엉... 죽고 싶어.”
며칠 후, 선생님이 저를 조용히 부르셨고 교무실로 들어간 저에게 자상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서야, 네가 아직 몰라서 그렇지, 너는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야. 나중에 대학만 가 봐, 나 같은 사람은 눈에도 안 들어올걸? 지금은 네가 너무 어려서 잘 몰라서 그래.”
선생님은 제가 졸업하기도 전에 무용 선생님과 결혼을 하셨고, 저는 소심한 복수로 축하 인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제가 그렇게 펑펑 울었던 건 단순히 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 마음속 깊이 누적되어 있던 감정의 무게, 그동안 억눌렸던 말 못 할 감정들이 폭우와 함께 터져 나왔던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릴 적,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 미숙했던 저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때의 눈물은 사랑의 눈물만은 아니었겠지요, 그건 자유를 찾아가는 제 마음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