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인
저는 사실, 진정한 자유인은 못 됩니다. 지금의 제 모습을 보면 언뜻 자유로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오랜 시간 저 자신을 설득하고 훈련해 만든 외향적인 겉모습일 뿐, 제 안에는 여전히 내성적인 성향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조용하고 신중하게 자라도록 훈육받았고, 그런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한때는 그런 저의 모습이 답답하게 느껴져 스스로와 싸우며 방황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타협하며 살고 있습니다.
완전한 자유는 아닐지라도, 절반쯤은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 그만큼의 자유라도 저 자신에게 선물이라 여깁니다. 제가 살아오며 만난 사람 중,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을 보여준 이는 제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효선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격도 외모도, 자라온 환경도 부모님과의 관계까지도 저와는 정반대였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저는 그 친구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친구 역시 저를 조금은 닮고 싶었던 걸까요. 서로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끼며, 그렇게 친구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효선이는 늘 저보다 한 걸음 빨랐습니다. 오빠에게 늘 맞고 자란 그 친구는 어느 날,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며 집을 나와 독립했고, 학교에서 두발 자유화가 시행되자마자 가장 먼저 짧은 숏컷을 하고 등교해 선생님과 전교생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자유롭고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눈치도, 두려움도 없이 뭐든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저는 속으로 감탄했고, 또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함께 웃으며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효선이는 시작하자마자 바로 행동하는 사람이고, 나는 '시작합시다~!'라는 말이 끝난 후에야 겨우 시작하는 사람"이라고요.
그 말을 하고 둘이 얼마나 웃었는지, 그 장면은 지금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효선이는 인정도 많았습니다. 뒤통수가 납작한 제 머리를 위해, 새로 나온 볼록한 머리집게핀이 있다며 웃으면서 선물해주던 그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신앙심 깊은 집안에서 자라 신앙이 몸에 배어 있던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헨티나로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그곳에서 마음이 잘 맞는 선교사를 만나 결혼을 했다고 들었고, 그 이후로는 소식이 끊겼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그 친구는 언젠가 ‘반짝’ 하고 제 앞에 다시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건 꼭, 효선이답잖아요.
진정한 자유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릴지라도 누군가가 내 존엄을 짓밟으려 할 때는 단호히 거절할 수 있고, 세상의 시선보다 자기 마음에 따라 외모를 가꾸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도전하고 실패해도 꿋꿋이 다시 일어설 줄 아는 힘. 그리고 자신이 꿈꿔온 길을 향해 주저 없이 걸어갈 수 있는 믿음.
효선이의 꿈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좋은 사람과 함께 선교 활동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 친구를 떠올리면 저는 늘 오드리 헵번이나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떠오릅니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돕고, 뜨거운 땀을 흘리며 환하게 웃고 있지 않을까요.
그 친구의 웃음소리는 참 유난히 컸고, 듣는 사람마저 기분 좋아지게 했으니까요.